워드에세이: open, confine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오고 싶어서 큰길 대신 좁고 한적한 도로로 차를 몰았다. 여유 있는 사람에겐 자주 등장하는 횡단보도와 신호등은 오히려 좋다. 사람들은 내가 듣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길을 건너고 있는 것만 같다. 그렇게 집으로 오는 길,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어깨 위로 손을 흔들며 함박웃음을 지어 보이는 두 사람이 눈에 띄었다. 자연스럽게 웃는 얼굴은 억지로 웃는 얼굴과는 그 모양새가 다르다. 진심으로 웃으면 얼굴에 있는 모든 근육이 웃을 테니 누가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분들은 생기 돋는 입술 사이로 하얀 이를 드러내고 불꽃놀이 하듯 행복한 기운을 터트리고 있었다. 최근 본 얼굴 중에 가장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다.
안 좋은 일이 연속해서 일어나는 현상을 머피의 법칙이라고 한다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유래한 샐리의 법칙이다. 우연히 뉴욕으로 가는 차를 같이 타게 된 두 사람,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 맞는 구석이란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나 이런저런 우연으로 만남은 지속되고, 결국 영화는 두 주인공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그렇게 거부하고 싶어도 거부할 수 없게 좋은 일이 생기는 걸 두고 사람들은 샐리의 법칙이라고 불렀다. 그날 아침 차창 밖으로 본 얼굴은 종일 내게 샐리의 법칙을 선물했다. 같은 날 해 질 무렵, 아파트 단지를 걷고 있던 내게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또 다른 웃음소리도 그런 선물이었다.
“호호호. 너무 좋아요.”
“괜찮아요. 잘 할 수 있어요.”
“우리 모두 파이팅해요. 파이팅!”
맞은 편에서 전화하며 걸어오는 사람의 웃음소리는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에서 공명하듯 울리며 청명하게 하늘로 퍼져갔다. 마치 전화기 너머 그 사람이라도 된 듯, 나도 조용히 파이팅을 외쳤다. 발걸음은 가을 하늘 뭉게구름을 타듯 가벼웠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그들의 웃음을 떠올리면 마음에 잔물결이 일어난다. 잔잔한 호수 위, 동심원을 그리며 퍼지는 물결처럼, 웃는 얼굴도 그렇게 멀리멀리 하늘로 퍼져간다.
얼굴에 피어난 웃음, 그것이 그토록 아름답다는 걸 깨닫는 계기가 최근에 있었다. 도예 공방을 드나들며 취미 삼아 그릇을 만들면서 너무나 당연하여 보지 못했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흙을 물레 위에 얹고, 초벌구이, 유약 바르기, 재벌구이, 그리고 그 사이사이 잔손 가는 일거리를 하고 나서 마지막 순간, 가마에서 그릇을 꺼내고 나면 마음은 클라이맥스를 찍고 급격히 하강하고 만다. 그러니 사진을 찍겠다고 그릇을 향해 렌즈를 이렇게 저렇게 돌려봐야 무뎌진 감각은 되돌아오지 않고, 사진은 사진대로 어느 폴더에 들어가 먼지만 쌓일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잠자리에서 눈을 떠보니 책장 밖으로 삐쳐 나온 도자기 접시가 다르게 보였다. 언제 나는 그릇을 아래에서 바라본 적이 있었을까? 접시는 양쪽 끝이 올라간 곡선의 모습을 하고 아침 태양이 던지는 빛을 담아내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에 정신을 놓고 누워있다가, 지금껏 저 모습을 담은 사진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벌떡 일어나 카메라 렌즈를 그릇 아래에서 위쪽으로 향했다. 음식 담긴 그릇을 위에서 아래로만 봤지, 이렇게 반대로 올려다보는 건 처음이다. 양쪽 입꼬리를 올리고 하늘을 향해 열려있는 그릇은 사람의 미소를 닮아 있었다. 그렇게 웃는 얼굴은 하늘을 담아내고 있었다.
영어 단어 open은 ‘열린’ 혹은 ‘열다’라는 뜻으로 단순하게 쓰고 있지만, 그 어원을 살펴보면 놀랍게도 내가 아래에서 올려다봤던 접시를 연상시킨다. 이 단어는 고대영어 ‘upo’에서 유래되었다. 그런데 이 고대어의 의미가 바로 ‘밑에서 위로’의 뜻이다. 오늘날 ‘위쪽’을 뜻하는 단어 up도 바로 ‘upo’에서 나왔으니, open과 up은 형제지간인 셈이다. 그 옛날, 하늘이 우주를 향해 무한히 열려있다는 걸 상상하지도 못했을 때, 어떻게 이리도 지혜롭고 절묘하게 open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쓸 수 있었는지 소름이 돋는다.
open과 대조되는 단어는 confine이다. 어떤 것을 가두고, 제한한다는 뜻이다. 앞에 있는 ‘con-’은 ‘모두, 함께’의 뜻을 가진 접두사이고, 뒤쪽에 있는 ‘-fine’은 테두리나 끝을 뜻하는 라틴어 ‘finis’에서 왔다. 그러니 이 단어는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도록 테두리를 두른다는 속뜻이 있다. finish(끝내다), final(마지막의), finite(유한한) 등의 단어가 모두 이 라틴어에서 생겼다. confine은 마당을 둥글게 감싸고 있는 울타리를 연상하면 된다. 마당에 서서 이 울타리를 바라본다면 양 끝이 아래쪽으로 쳐진 곡선 모양이 떠오르는데, 이것은 밑에서 보면 지붕처럼 위가 닫혀있다. open과는 이미지가 반대이다.
대학 졸업한 후, 나의 모난 곳이 세상과 부딪치며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직장 선배님이 내게 “자네는 자기 세계가 분명한 것 같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개성이 있다는 말인가?’ 하며 넘겨 버렸다. 그런데 내가 그 선배의 나이가 되어 그 말을 되새겨 보니,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자기 세계에 갇혀 있다는 말을 그렇게 에둘러 말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좁은 식견으로 울타리 밖을 보지 못했으니, 늘 입꼬리를 아래로 늘어뜨리고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리라. 나의 닫힌 얼굴을 보듬고 품어주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늦게나마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나도 적극적으로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와! 이 비스킷, 제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어제, 작은 행사에 참석하면서 출입구 앞에 마련된 과자를 보고 안내하시는 분께 웃음을 건넸다. 느닷없는 나의 과장된 웃음에 그분도 활짝 웃고 좋아해 주신다. 그렇게, 그렇게, 하늘을 담은 얼굴, 하늘을 닮은 얼굴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