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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과 잔소리 사이 어디쯤?

모른 척 가만히 있을 것인지, 오지라퍼가 될 것인지(D-72)

'오지랖이 넓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음 사전을 보니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뜻하는데요.

즉, 오지랖이 너무 넓으면 쓸데없이 몸을 너무 많이 휘감게 되는 것처럼, 남의 일에 쓸데없이 간섭이나 참견을 해서 오히려 남을 불편하게 만드는 경우에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굳이 안 해도 되는데 굳이 해서 문제를 만들 경우 사용이 되니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지요.

오지랖.png [다음 사전에서 찾은 오지랖의 뜻과 사용례]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오지랖이 넓은 짓을 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뽑았던 신입사원이 어느덧 대리급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조직의 분위기가 마치 노인정 같은 분위기라, 조금이라도 분위기를 바꿔보자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평가점수가 비슷하다면 이왕이면 밝고 유머러스한 친구를 뽑았습니다. 그렇게 뽑은 신입사원은 당연히 입사 후에 업무도 잘하고 직원들과도 잘 어울리며, 조직을 좀 더 환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뿐 아니라 많은 직원들이 좋아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친구의 주관으로 '팀 조직개선 워크숍' 실시 전에, 워밍업을 위한 간단한 미팅을 진행한다고 하네요. 금요일 오후, 대회의실에서 진행된 미팅은 예상시간 1시간 보다 빠른 20여분 만에 종료가 되었습니다. 다들 "빨리 끝나서 좋다"라고 웃으며 회의실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회의가 진행되는 내내 그리고 회의실을 나오면서도 계속 마음 한편이 휑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슴의 휑.png

퇴근 후 주말에 집에 있으면서도 계속 같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고 맴돌고 있습니다. 쓸까 말까 여러 번 생각하다가, 결국 메일에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생각을 적어서 이 친구에게 보내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문제점이라 생각되는 것은 이렇습니다.

비록 참석자 대부분이 선임이고 선배들이니 부담이 될 수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회의를 위해 열심히 준비했으면, 그 준비한 내용을 모두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제가 몇 가지 사항에 대해 지적을 한 것이지요.

회의의 주관자는 진행에 대한 자신감과 주도권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회의실 시작 전에 좌석 배치도 염두에 두었어야 합니다.
그룹 단위로 토의할 예정이었다면, 미리 그룹을 구성하고 해당 그룹끼리 앉도록 유도했어야 합니다.
분산되어 앉아 있거나 뒤쪽에 몰려서 앉아있다면, 자리 이동을 부탁하고, 설득하고 독려했어야 합니다.
회의 준비 시간이 부족했다면, 다른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해서라도 필요한 준비를 마쳐야 합니다.
본인이 준비한 것은 다 마치고 끝내야 합니다. 그래야 본인도 아쉽지 않습니다.
선배들에 대한 부담이나 쓸데없는 배려로 대충 얼버무리고 끝내면, 다음에도 그럴 것이라 지례 짐작합니다.


이렇게 메일로 제가 생각한 것을 적은 후에도 보내야 할지 말지를 한참 고민했습니다. 곧 정년퇴직할 사람인데 제가 굳이 이런 말을 해야 하는지, 괜히 오지랖을 떠는 것은 아닌 것인지를요.


잠시 후 회신이 왔네요

보내온 메일에는 이렇게 쓰여있네요.

본인이 생각해도 너무 형님들이라,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어려워서 급하게 끝냈습니다. 그리고 제가 시키는 것에 대해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되어서, 토론도 생략하고 최대한 빠르게 끝내는 방향으로 준비를 하였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리며, 향후에는 필요할 때 카리스마 있는 강직함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듣는 사람이 들을 준비가 되어있고, 말하는 목적이 상대방의 성장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라고 하면 조언이 맞다고 봅니다. 하지만 상대방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말하거나, 상대방에 내 생각을 강요하는 것은 잔소리가 아닐까 합니다.

♠ 조언(助言): 도움이 되도록 말로 거들거나 깨우쳐 줌(유의어로는 도움말, 충고).
♠ 잔소리: 듣기 싫게 필요 이상으로 참견하거나 꾸중하며 말함.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말을 늘어놓음(유의어로는 세담, 세설, 잔말 등).
[출처: 다음 한국어사전]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좋은 것만 보고, 더 이상 파고들지 않고 대충 넘어가는 태도를 부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즉, 눈앞의 이익이나 편리함에 만족하고, 따지고 보면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더 이상 파고들지 말자라는 취지로 "무난한 게 좋은 것이다"와 같은 말과도 유사합니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것"은 임시방편을 위한 것이지,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오히려 독이 됩니다. 원칙을 지키기보다는 적당히 무시하고, 이상을 추구하기보다는 경험에 안주하며, 이성보다는 감정, 문제 제기보다는 양해, 철저함보다는 유연함에 가까운 태도입니다. 당장은 서로 편하고 좋을 수 있지만, 결국은 부실한 토대 위에 건물을 올린 것과 같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이번에 조언을 건넨 것이 오지랖이었는지, 진심 어린 조언이었는지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선배로서 잘못된 점을 알고도 "좋은 게 좋은 거다"라며, 그냥 넘어가는 것 또한 옳지 않다고 봅니다. 비록 뒤에서 좋지 못한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지만, 도움이 되는 말이라면 망설이거나 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

달리는 펭귄 1.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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