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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자리가 아니라 무서운 자리

초보 아들 운전연수시켰더니 온몸이 노곤하네요(D-178)

참 불편하다고 생각하거나 느꼈던 자리가 있습니다.


회식 때 사장님 또는 고위 임원의 바로 옆자리

처음 뵙는 사돈댁과의 상견례 자리

팀장이나 실장 자리에서 모니터 화면이 바로 보이는 자리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출입문 바로 앞자리

침 튀기시면서 열강 하시는 교수님 바로 앞자리

장거리 해외 출장 시 모르는 사람 사이의 중간 좌석 등등...


오늘은 무서운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생 초보 아들의 운전 연습을 도와주기로 한 날입니다. 그래서 어저께 아들을 위해 하루짜리 운전자 보험도 들었습니다. 이왕 주말에 하는 운전 연습이니 가까운 곳에 가서 식사도 할 겸하여 움직일 예정인데, 정작 당일이 되니 아내는 아들이 운전하는 차 타기가 무섭다고 저하고 둘이 갔다 오라고 하네요.


저는 첨단 안전장치와 편의장치가 있는 제 차를 갖고 운전 연습을 할까 했는데, 아내는 혹시나 사고가 발생하면 안 되니 오래된 차로 연습을 하라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번에 아들이 타고 나갔다가 주차 중 나무에 부딪쳐서 뒷 범퍼가 손상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차이기도 하고 손상 부위가 크지 않아, 떨어진 부분을 케이블 타이로 묶어서 일단 고정을 시킨 상태입니다.


어디로 운전 연습 코스를 잡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래도 제가 아는 길을 가는 것이 안전할 것 같아서, 화성 융건릉 인근의 식당으로 스마트폰 네비를 설정하였습니다. 아내는 뒷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자기는 아무런 말도 안 할 테니 조심해서 운전하라고 합니다. 아들이 시동을 걸고 차가 움직이자마자 "너무 핸들(스티어링 휠)을 빨리 꺾었다", "속도가 빠른 것 같다. 천천히 가라"하면 잔소리를 쏟아 냅니다. 아무 말도 안 한다고 하더니 불과 10초도 못 참네요.


이제 아파트 주차장을 벋어나 큰길로 나가니 점점 긴장이 되기 시작합니다. 차라리 차선이 적은 곳에서는 앞차를 따라가면 그만인데, 1번 국도로 접어들면서 4차선으로 넓어지니 전후좌우 차량을 모두 신경 써야 합니다. 녀석도 긴장했는지 간간히 한숨을 쉬고 있네요.


누구나 처음은 초보입니다.

저는 1992년부터 운전을 시작했으니 벌써 33년 차 베테랑 운전자입니다. 그렇지만 저 역시 처음 차를 뽑고 운전을 시작할 때를 생각해 보면 아직도 그 당시의 두려웠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저의 첫차는 국민차로 불리던 '기아 프라이드'였는데 오토밋션이 비싸서, 스틱(매뉴얼) 차량으로 뽑았습니다.

집은 서울인데 직장이 수원이라 편도로 대략 50㎞ 정도는 되었던 것으로 기억이 나네요. 차를 처음 가지고 출근하기 전 날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더군요. 여전히 변속을 할 때 가끔씩 시동을 꺼트리고 있으니, 과연 이런 실력으로 회사까지 갈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차가 한가한 시간에 가기로 마음먹고, 새벽 5시에 집에서 출발을 했습니다.


겨울이라 온 사방은 캄캄한데 길거리에 차가 별로 없으니 마음은 오히려 편해지더군요. 가면서 몇 차례 시동이 꺼지기는 했지만, 민폐 없이 회사에 도착하니 새벽 6시가 좀 넘었더군요. 회사 정문에 계신 경비아저씨께서 깜짝 놀라시면서 왜 이렇게 일찍 출근하냐고 물어보시는데, 사실을 말씀드리기가 창피해서 그냥 일이 많아서 일찍 나왔다고 했습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출근은 했는데 이제 슬슬 퇴근이 걱정됩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차가 한가해지는 시간에 올라가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저녁식사 후 8시가 넘어서 퇴근하시던 대리님이 왜 아직도 안 가고 있냐고 물어보길래 일이 좀 남았다고 말했지요. 이제 9시가 넘어 퇴근을 해보니 길거리에 제법 차량은 있지만, 그래도 나만의 길로 천천히 가기에는 문제가 없더군요. 이렇게 약 2주 정도가 지나니 어느 정도 운전할 수 있겠더라고요. 이때 이른 새벽 출근과 저녁 늦게 퇴근하면서 열심히 일한다는 말은 덤으로 들었습니다.


그래도 곧 잘 운전을 하네요

옆에 앉아서 지켜보니 이전에 비해 한결 나아진 수준입니다. 약간씩 좌우로 움직이기는 하지만 차선의 중앙도 잘 유지하고, 앞차와의 거리도 적당하게 조절하고, 어려워하지만 끼어들기도 곧 잘하고, 고속도로에서 100㎞/h 정도까지 속도를 냅니다. 하지만 가끔씩 자기 차선을 놓쳐서 남의 차선으로 넘어가고, 끼어들 타이밍을 놓치는 등 실수는 있습니다. 그래도 생각보다 안정적으로 융건릉 인근의 목표한 식당에 잘 도착을 했네요. 뭐 이 정도면 다소나마 교통흐름에 방해는 될 수 있겠지만, 민폐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저희가 도착한 식당은 불고기 전문점인데 저희는 그냥 쌈밥집이라 부릅니다. 메인 음식인 불고기도 괜찮지만, 신선하고 다양한 쌈을 무제한으로 주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고 있지요. 이번까지 모두 4번 정도 왔는데, 한 번도 시들거나 상태가 안 좋은 쌈은 본 적이 없을 정도입니다. 배부르고 기분 좋게 식사를 한 후, 봉담 인근에 있는 유명한 베이커리 집에 가서 후식으로 빵과 커피도 한잔 했습니다.

쌈밥집.png
반월호수.png
[왼쪽-불고기집, 오른쪽-반월호수]

벌써 4시가 되어 가는데 아들이 바로 집에 가기가 아쉽다며, 반월호수로 가서 산책을 하고 가면 어떻겠냐고 하더군요. 요즘 해가 길어져서 아직도 환하기도 하고, 배부르니 호수변을 걷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내비게이션을 반월호수로 찍은 후 출발했습니다. 이번에는 큰길이 아니라 매우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알려주네요. 차는 많지 않은데 길이 좁고, 길가에 세운 차들로 인해 운전하기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오히려 이런 길을 좀 더 어려워하는 것 같더군요. 이제 호수 인근에 도착하니 주차할 수 있는 빈 공간이 몇 군데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평행주차를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직각주차도 어려워하는데 평행주차는 거의 감을 못 잡더군요. 같다나 차선이 좁아 뒤차에 민폐를 끼칠 것이 걱정되어, 일단은 제가 대신 주차를 했습니다. 가고 서기는 얼추 하는데 주차는 좀 더 연습이 필요할 것 같네요.



오늘 운전 연습을 시켜보니 아직은 맘 편하게 운전을 맡기기에는 다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도 운전은 자주 그리고 많이 해봐야 실력이 늘어나니, 쉬는 날에 계속 운전 연습을 시키면 금방 실력이 향상될 것 같습니다.


요즘은 대중교통이 잘 발달되어 있어, 굳이 차를 이용하여 출퇴근할 필요가 없기는 합니다. 그러다 보니 아들 녀석의 운전 실력이 빠르게 늘지 않는 이유가 되기도 하고요.


간혹 외식을 하러 가면 맥주라도 한 잔 마시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 더운 여름의 경우 시원한 맥주 한 잔이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데, 운전을 해야 하니 그냥 그림의 떡이지요. 아들의 운전 실력이 좀 더 나아지면 차를 아들에게 맡기고, 간혹 술 한 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다행히 아들은 술을 못 마십니다). 아마 곧 그럴 때가 오겠지요.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

달리는 펭귄 1.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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