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근무지에 가보니 옛 생각이 떠오릅니다(D-142)
근무하던 사무실 건물이 노후화되어, 전기시설에 대한 대대적으로 보수공사가 필요하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에 따라 공사 기간인 일주일 동안은 전원 공급이 완전히 차단되어, 부득이하게 다른 사무공간으로 이동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동 가능한 장소로는 본사와 연수원뿐인데...
본사는 후배들과 마주치는 게 부담스러워서, 연수원은 너무 멀어서 가기가 꺼려지더군요.
그래서 수원사업장으로 고고~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떠올린 사무실이 바로 이곳 수원사업장인데, 무려 30년 만의 방문이 되네요.
첫 회사를 퇴직하고 지금 회사에 입사하면서, 처음 발령받은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신입사원 시절을 이곳에서 보내고, 대리로 진급한 후 연수원과 본사로 이동하면서 직무도 변경되다 보니, 다시 이곳에서 근무할 기회는 없는 곳이었습니다.
30년 만에 다시 찾은 이곳은 건물 외관뿐 아니라, 주변 도로와 인근 풍경까지 몰라보게 변해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주변이 산과 미개발 지역이었는데, 지금 보니 완전히 신도시로 탈바꿈했더군요. 땅값과 집값도 엄청 올랐답니다. 그때 선배가 돈 있으면 땅을 조금 사놓으라고 했는데, 돈 못 버는 사람의 특징이 뒷북이라고 제가 그렇네요.
예정보다 일찍 도착한 탓에 사무실에는 아직 아무도 없습니다. 잠시 사업장을 둘러봤는데 낯선 듯 하지만, 그 안에 익숙한 느낌도 어렴풋이 남아 있네요. 3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지만, 이곳의 분위기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인지 아련한 옛 추억이 스쳐 지나갑니다.
당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정신적 소모가 심한 일인지 절실히 깨달았던 시절이었습니다.
모든 일이 다 좋은 것도, 모든 일이 다 나쁜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좋은 일 속에서도, 나쁜 일 속에서도 언제나 배울 것은 있기 마련입니다. 돌이켜보면 힘든 일 속에서도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고, 당시 경험이 저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합니다.
옛사람들과 추억 나누기
센터장을 만나 자리를 제공하여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제공된(?) 저만의 사무공간에 앉아 창문 밖을 바라보니, 기존 근무하던 사무실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바로 앞 왕복 8차선 도로는 수많은 차량들로 가득 차 있었고, 맞은편에는 대형 서비스센터가 한창 신축 중입니다. 왠지 세상은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저만 그 흐름에서 잠시 벗어나 있는 듯한 기분이네요.
어느새 시간이 흘러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식당은 여전히 4층에 자리하고 있더군요. 식당은 단순히 식사를 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과 마주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예전 동료들을 만났습니다.
무려 30년 만의 재회였지만, 놀랍게도 서로를 바로 알아볼 수 있더군요. 비록 머리는 희끗희끗해지고 얼굴에는 주름이 깊게 자리했지만, 그 속엔 여전히 예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다만 얼굴은 익숙한데 이름이 떠오르지 않으니, 순간 당황스럽기도 하더군요. 세월이 흐른 만큼 많은 것이 변했지만, 사람 사이의 정은 그대로인 듯해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제가 일주일 동안 이곳에서 근무한다는 소문이 퍼졌는지, 몇몇 옛 동료들이 제가 있는 회의실로 찾아왔습니다. 30년 만에 만남은 조금 어색합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마치 얼마 전까지 함께 일했던 사람들처럼 느껴졌습니다. 특히 예전 근무 시절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마치 방금 겪은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강산이 3번 변한다'라는, 30년의 세월이 이렇게 쉽게 좁혀질 줄은 몰랐습니다. 시간은 흘렀지만, 사람 사이의 정은 여전히 그대로였습니다.
그 시절엔 일이 서툴러서, 성격이 맞지 않아서, 혹은 나와 잘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편하게 느꼈던 동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기억들은 거의 잊히거나 희미해진 모양입니다. 저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때 싫었던 사람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제가 기억을 못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건물은 리모델링으로 더 젊고 현대적으로 변화된 것에 비해, 유리창에 비친 제 모습은 나이 든 쪽으로 많이 변해 있습니다.
고려시대 야은 길재의 시조 한 구절인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가 떠오릅니다.
저 역시 정년퇴직을 하면, 이곳에 다시 올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제가 알고 있는 동료들도 머지않아 이곳을 떠날 것입니다. 그래도 이 건물은 앞으로도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고객을 위해, 굳건히 이 자리를 지킬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