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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언성을 높였네요

딴지 거는 게 너무 답답해서 그랬지만, 참을 걸 그랬네요(D-314)

모처럼 업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예전에 잠시 근무했던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보통은 저 같은 정년퇴직 대상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데, 입사한 지 4년 차 되는 사원이 혼자 신규 프로젝트를 수행하기가 부담스럽다고 해서 지원차 시작한 일입니다.



회사생활을 돌이켜 보니 이것저것 프로젝트를 많이 수행하기는 했습니다.

잡다한 팀 또는 실 단위의 프로젝트부터, 회장님 지시의 전사 프로젝트도 진행해 봤습니다.

제 업무영역이 기술 관련 정보를 다루는 일이라, 업무 프로세스 개선과 IT업무가 동시에 수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요. 그렇다고 IT 쪽에 대단한 역량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스템 개발은 외부업체에서 하니 우리는 업체가 잘 개발할 수 있도록, 정확하고 명확한 '요건정의'를 하면 되는 것이지요. 물론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수시로 확인하는 것과 최종 테스트를 거쳐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개발이 되었는지도 확인하고요.

'요건정의'를 하다 보면 현재 업무 프로세스에 대한 분석을 먼저 하고, 이를 통해 미진하거나 개선할 부분을 찾아야 합니다. 이렇게 찾아진 개선사항이 맞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개선의 효과가 있을는지를 결정한 후 업체에 '요건정의서'를 제공하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프로젝트 업무를 하다 보면 초기 기획단계에서 충분한 고민과 검토 없이 추진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프로젝트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수정을 겪게 되고, 원래 계획된 기간(M/M)을 훌쩍 넘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개발업체 입장에서는 다른 프로젝트 수행과 겹치는 경우도 생기고, 인건비 부담을 고스란히 떠 앉게 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프로젝트 지원차 회의에 참석해 보니, 제법 규모가 있는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관련된 부문도 제법 있고, 협의하거나 조율할 일도 많더라고요. 다행히 팀원부터 실장 때까지 쭉 관여했었던 일이라 지원하는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프로젝트는 9부 능선을 넘어섰습니다. 이제는 제시한 요건에 맞춰 개발이 되었는지를 최종 확인하고, 미흡한 부분 정도만 수정할 수 있는 단계가 되었습니다.


제가 봐도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개발은 아닙니다만, 나름 최선의 방안으로 개발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개발된 시스템의 근간은 흔히 말하는 '글로벌 표준 시스템'입니다. 국제 표준을 무시하거나 맘대로 변경할 수 없지만, 이를 활용하여 우리가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하는 것이 주목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표준을 준수하면서도, 우리의 요구사항을 잘 반영하였다고 평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돌발 변수가 발생되었습니다.

개발 후 사용해야 하는 팀(정확히는 담당자)에서 사용을 못하겠다는 반발이 나왔습니다.

이전 시스템에 비해 나아진 것도 없고 오히려 불편하며, 다른 경쟁사 시스템에 비해 턱없이 사용자 편의성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사용자 편의성 관련한 사항은 처음 요건정의할 때, 우리 쪽에서 당장 시행할 수 없는 일이니 제외하자고 개발업체에 이야기를 했던 사항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우리 내부의 문제에서 발생된 것이라고 수차례에 걸쳐 설명을 했었던 사항이고요. 그런데 회의에 도통 참석을 안 하다가 수개월이 지난 후 갑자기 나타나서 동일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어느덧 회의시간은 원래 예정되었던 1시간을 훌쩍 넘기고, 2시간도 넘어가고 있습니다. 프로젝트를 주도한 PM(Project Manager), 사내 IT 담당자 그리고 개발업체 모두 나서서 수개월 전에 설명한 이야기를 다시 하고 있습니다.

무슨 다람쥐 쳇바퀴 돌듯 불만과 답변을 동일하게 반복하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본인이 물어봤으면 상대방이 대답할 시간을 주어야 하는데, 무슨 말만 하려고 하면 말 허리를 잘라먹고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있네요. 근래에 보기 드문 '고집불통', '독불장군', '벽창호' 스타일입니다.



뒤에 앉아서 듣고 있는데 점점 속에서 열불이 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정년퇴직도 얼마 안 남았고, 지원하기 위해 왔기 때문에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나설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해도 해도 너무해서 그만 폭주하고 말았습니다.


"왜 우리 쪽 문제를 개발사에게 잘못했다고 하느냐, 우리 문제는 우리끼리 따로 모여서 이야기할 사항이다. 개발사는 우리의 요건정의에 맞춰 개발한 것이고, 요건을 잘못 준 우리의 책임이 크다. 이 문제는 우리 업무 프로세스를 먼저 수정한 후, 향후 예정되어 있는 2차 개발에서 처리하면 된다. 정말로 개발한 시스템을 못 쓰겠다면, 너희 팀장과 실장에게 상황을 보고해라."


이렇게 상황은 종료가 되었지만, 좀 지나고 나니 큰소리를 낸 것이 후회가 되더군요.

불만을 제기한 친구는 저랑 같이 6년간 근무했었기 때문에 더욱 화가 나가도 했습니다. 예전에는 무척 조용하고 합리적인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아마 대리 때는 고양이가 발톱을 숨기 듯 성향을 감추고 있다가, 이제 차장이 되니 본모습을 보인 것 같아서 씁쓸하네요.



회의 후 따로 만나 화를 내서 미안했다고 이야기는 했지만, 아직도 기분은 별로네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유별나게 부정적 의견을 내고, 안 되는 쪽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든 일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최선의 방법이 안 된다면, 차선책이라도 검토하고 받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살아보니 부정보다는 '긍정의 힘'이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긍정은 생각을 바꾸고, 비전을 만들며,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긍정적인 생각만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안전이나 보안, 성희롱, 금전문제와 같이 타협할 수 없는 사항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계속 부정에만 몰입할 경우 일의 진행은 지지부진해지고, 심하면 차라리 안 하는 것보다 못한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기분이 찜찜하네요.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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