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나만의 음식을 음미하며 식사하기(D-300)
음식을 '음미(吟味)하다'는 것은 '음식의 맛과 향기를 즐기며 천천히 식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은 같이 점심식사를 하는 동료들의 출장과 회의로 인해, 혼자 식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습니다.
제가 입사했을 때 맨 처음 만난 선배 한 분이 계셨습니다.
모든 환경과 사람이 낯선 상황에서, 저를 찾아와 커피 한잔하자고 하더군요. 저와 다른 부서에 계신 분이라 다소 의아했지만, 그래도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렇게 선배와 인연을 맺었고, 정년퇴직을 제가 맡았던 실에서 맞으셨습니다.
선배는 항상 웃고 썰렁한 농담도 잘하고,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그런 선배가 정년퇴직을 반년 정도 남기셨을 때부터 동료들과 따로 식사를 하시더군요. 일부로 점심시간이 되면 사무실에 남으셨다가, 10여분이 지난 후 식당으로 오셔서 혼자 식사하시는 것을 봤습니다. 왜 따로 드시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실례가 될까 봐 딱히 물어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짐작만 할 뿐이었지요.
시간이 지나 제가 정년퇴직대상자가 되어보니, 이제야 선배의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이제는 업무의 중심이 아니라 변방에서, 조언이나 지원해 주는 정도의 역할만 수행하고 있습니다.
회사 조직 내의 휴먼네트워크에서도 점점 소외되고 멀어짐을 느끼고 있습니다.
점점 업무적으로 대화할 내용은 적어지고, 쓸데없는 이야기만 나누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어느 날 후임 실장과 팀장이 저에게 "오랫동안 고생하셨으니, 이제는 편히 쉬시면서 정년퇴직하세요"라고 하더군요.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제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없구나'하는 생각도 듭니다.
근래에 외부회의가 있어 혼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혼자 밥 먹을 기회가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좀 낯설었지만, 막상 창밖을 내다보며 천천히 식사를 하다 보니 나름 괜찮더라고요.
항상 식사하면서 다른 사람의 식사 속도에 맞춰야 하고, 별 관심없는 이런저런 이야기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혼자 먹으니 조용히 생각할 수도 있고, 천천히 음식의 맛도 음미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전에는 혼자 밥을 먹는 것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아서 몰랐는데, 오늘 주위를 둘러보니 혼밥을 할 수 있는 식탁이 몇 군데 보이더군요. 그리고 그 자리는 거의 차 있었습니다. 의외로 혼자 식사하는 혼밥족이 꽤 되는군요.
제 뒤에서 혼밥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무엇을 하면서 먹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 같네요.
직장생활을 하실 시간이 많이 남으신 분은, 가능하면 동료들과 어울려 식사하기를 권장드립니다.
아직은 동료들과 같이 일해야 할 것도 많고, 나누어야 할 이야기도 많을 것입니다.
식사를 하면서 간단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도 친밀감, 유대감, 동질감을 구축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까요.
그게 올바른 직장생활이고, 슬기로운 사회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회사를 나서면 혼자 밥 먹을 기회가 더욱 많아질 것입니다.
저도 좀 있다가 혼자 밥 먹는 연습을 시작할까 합니다.
이런 사전 적응을 통해 '긍정적인 나만의 고독'을 오롯이 즐길 수 있도록 혼밥 내공을 다져보고자 합니다.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