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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공사장

18코스(제주관덕정분식←조천만세동산, 20.1Km) 3

by 커피소년

중간 스탬프를 찍고 정자에 잠시 쉬며 삼양해수욕장을 봤다. 다른 해수욕장과 뭔가가 달랐다. 해수욕장은 검었다. 올레를 걸으며 보았던 해수욕장들은 하얬다. 검은 것은 화산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특히 검은 화산재.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 보면 화산재는 가벼워서 바닷물에 씻겨 내려갈 것 같았다. 그럼, 무엇 때문일까? 화산 때문이었으나 화산재는 아니었다.


삼양해수욕장이 검은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모래색이 어둡기 때문이다.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현무암이 오랜 시간 동안 파도에 침식되면서 만들어낸 아주 작은 알갱이들이 무거워서 파도에 씻겨 내려가지 않고 해변을 채워 모래사장이 되었다. 현무암 알갱이기 때문에 어두웠다. 모래 알갱이에도 제주도의 긴 지질학적 역사가 스며있었다. 생각해 보니 우도에도 검은 해변이 있었다. 검멀레 해변(검멀레의 '검'은 '검다', '멀레'는 '모래'라는 뜻으로, 검은 모래라는 의미)이었다. 우도 쇠오름 절벽 밑에 있어 우도 등대로 오를 때 볼 수는 없었다.


삼양해수욕장을 좀 더 검색해 보니 ‘모살뜸’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모살’은 모래를 뜻(우도의 ‘멀레’도 모래를 의미한다. 제주도 내에서도 모래는 지역마다 다르게 부르는 것 같다)하고, ‘모살뜸’은 여름날 따뜻한 햇볕 아래 검은 모래에 몸을 파묻는 모래찜질을 말한다. 화산으로 생성된 검은 모래에는 다양한 미네랄 성분이 있어 관절염, 신경통 그리고 피부에도 좋기 때문이다. 이런 효과 때문인지 해변을 맨발로 걷는 이들이 종종 보였다. 맨발로 땅을 밟으며 걷는 행위를 어싱(Earthing)이라 하는데 땅(Earth)과 현재진행형(ing)의 합성어이다.

<삼양해수욕장에 있는 중간스탬프와 정자>
<검은 삼양해수욕장과 맨발로 걷고 있는 사람들>

나도 맨발로 해변을 한번 걸어볼까? 하다 가야 할 길로 갔다. 약간 시내로 돈 길은 다시 삼양해수욕장을 거쳐 해안 길로 이어지며 삼양동을 벗어났다. 1년 내내 파도가 높고 거칠다는 벌낭 포구에서 길은 내륙으로 방향을 틀었다. 화북동으로 넘어가는 길은 얕은 언덕이었다. 커다란 건물을 짓기 위한 터 파기 공사가 언덕, 길옆에서 한창 진행 중이었다. 여기서 제주도의 단단한 속살을 봤다.


4월 올레에서 가장 많이 본 것은 검은 현무암이었다. 해변에도, 집과 밭의 담에도, 환해장성과 연대에도 돌은 현무암이었다. 제주도에는 현무암만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한번 추측해 봤다. 현무암만 있다면 제주도는 화산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의 거대한 현무암 돌덩어리가 아닌가 하고. 또한 밭을 고를 때 돌들이 많이 나온다는, 성산에서 묵었던 게스트하우스 주인의 말에서 지표의 흙은 그리 깊지 않을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흙의 깊이가 깊다면 돌들이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주도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알아봤다.


제주도는 신생대(약 6,600만 년 전 이후 지질시대의 최근 시대) 시기에 110여 차례에 걸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다. 첫 번째 분출기 때 제주도의 기반이 다져졌고, 두 번째 분출기에 원시 제주도가 형성되었다. 이 시기에 최초로 용암대지가 만들어졌고, 화산 쇄설물들이 쌓여 성산 일출봉, 산방산, 고산봉 등이 형성되었다. 세 번째 분출기에 비로소 제주도가 해수면 위로 드러났다. 이때 높이가 1,000m가 채 되지 않았던 한라산체가 네 번째 분출기에 현재의 높이 1,950m에 이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분출기, 제5 분출기에 한라산 정상을 비롯해 제주도 곳곳에 동시다발적으로 화산활동이 일어났다. 그로 인해 현재의 백록담, 오름이 만들어져 현재의 제주 모습이 완성되었다. (VISIT JEJU 참조)


제주도는 다섯 차례의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었다. 그리고 화산에서 흘러나온 용암이 굳는 과정에서 용암 내부의 가스가 터지며 구멍이 많은 현무암이 형성되었다. 이 현무암은 오랜 시간의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인해 흙으로 만들어져 현무암 표면을 덮었다.

<터 파기 공사에서 제주의 땅 속을 보았다>

공사장에는 많은 돌이 쌓여있었다. 한쪽에서는 굴착기에 달린 착암기가 딱딱 딱딱 일정한 리듬으로 돌을 깨고 있었다. 먼지 방지 때문인지, 마찰에 의한 열 방지 때문인지 지상에서 인부 한 명이 돌 깨는 현장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다른 굴착기가 버킷으로 부서진 돌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터 파기 공사장의 벽면에 지층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예상대로 흙은 깊지 않았다. 얕은 흙 밑은 온통 암석층이었다. 솔직히 이 암석층이 현무암인지는 모르겠다. 구멍이 많은 현무암과는 달리 구멍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공기와 접촉하는 용암의 표면에는 구멍이 생기고, 공기와 접촉이 없는 용암의 내부는 구멍이 생기지 않아 다른 것일지 모른다. 어쨌든 공사 현장을 보고 제주도의 고층 건물을 다시 보게 되었다. 정말 힘들게 지어진 건물들이었다.

<전날 20코스를 걸을 때 정비하기 위해 고르고 있던 길에 놓인 돌덩이들>

공사장을 지난 길은 다시 해안을 향해 내려갔다. 안벽과 바깥벽을 갖춘, 2 중성의 별도환해장성과 만났다. 안벽에 별도연대가 있었다. 올라가서 풍경을 봤다. 안벽과 바깥벽 사이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갈대들은 거친 바람에 몸을 뉘고 있었다. 파도는 어제보단 약했지만, 여전히 거칠었다. 왼쪽으로 화북포구가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다. 여긴 별도환해장성이다. 보통은 환해장성이 위치한 지명을 환해장성에 붙인다. 별도환해장성이면 여기는 별도라는 지역인데 옆의 포구는 화북이다. 찾아보니 별도는 화북의 옛 지명(연대를 알리는 작은 간세에는 연대를 화북별도연대로 표기하고 있다)이었다. 그리고 화북포구는 조천포구와 함께 조선 시대 육지를 오가던 2대 관문이었다. 당시 지방관과 유배인들이 빈번히 드나들었다고 한다. 추사 김정희도 이곳을 통해 제주도로 들어와 유배 생활을 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이곳은 모두가 오기 싫어하는 유배지였다. 기피 지역이었다. 지금은 관광지이고 그래서 자신들의 돈을 드려서 이곳에 온다. 이 때문인지 유배지로서의 제주가 실감 나지 않았다. 과거 제주도의 얼굴이 그려지지 않았다. 천천히 알아가야겠다. 공사장 옆길에도 돌들이 흩어져 있었다. 전날 20코스를 걸을 때 길을 정비하기 위해 땅을 고른 곳이 생각났다. 거기도 길 전체가 현무암 돌덩어리들로 가득해서 그 돌들 위로 걸었다. 정말 제주도는 거대한 하나의 돌덩어리일지 모른다.

<별도연대와 별도환해장성 그리고 화북방파제>

별도환해장성의 길이 화북포구와 그림이 그려진 긴 화북 방파제를 지나자 바다에 떠 있는 작은 배 한 척이 보였다. 무척 위험해 보였다. 바람은 거칠었고 파도도 심했다. 파도에 따라 뱃머리는 하늘로 솟았다 바닷속으로 곤두박질쳤다. 바닷물에 거의 잠길 듯 내려갔다. 그 멀미 나는 풍경에 새삼 바다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날 세화에서 본 성난 파도도 무서웠지만, 그것은 조금 추상적인 느낌이었다. 그러나 지금 바로 앞에서 배를 가지고 노는 바다를 보니 그 두려움이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저런 바다는 과거, 유배 온 이들에게 육지와의 잔인한 단절을 의미했다. 단절이 주는 절망감 때문인지 그 회복을 위해 조천포구에 있는 연북정에서 그렇게 자신의 충심을 보이며 무죄를 주장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에 위험하게 떠 있는 배>

배는 여전히 위험하게 바다에 떠 있었다. 그러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벌써 몸에서 무리하고 있다는 신호가 왔다. 그러나 무시하고 해안 길을 따라 걸었다.

(2024. 10. 21)


연휴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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