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게도 운영 중인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의 전화 응대는 래빗님이 도맡아주고 있다.
그런데 회사에서 일하던 도중 갑자기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고객님의 목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거스름돈 6천 원을 못 받았다는 이야기.
가게에 내 전화번호는 없을 텐데 어떻게 나에게 전화를 한 건가 싶었지만, 일단 상황 파악을 위해 대화를 이어갔다.
우리 가게에는 주인 몰래 선행(?)을 베푸는 키오스크 기계가 있다.
간혹 가다가 거스름돈을 더 주는.. 원치 않는 선행을 저지르는데, 이번에는 거스름돈을 강탈했나 보다.
걸려온 전화 너머로 물어보니 3,900원어치 물품 결제를 위해 1만 원 지폐를 넣었다고 한다.
그런데 잔돈으로 받아야 하는 6,100원이 나오지 않았다고..
키오스크가 잔돈 대신 "교환권"을 바꿔주었다는데, 그 교환권에 내 전화번호가 적혀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네가 왜 거기서 나와�)
전화 덕분에 키오스크에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하고 퇴근 후 바로 가게로 향했다.
가게에 도착하자마자 잔돈이 제대로 나오는지 테스트해 보았다.
역시나 잔돈 대신 "현금 잔액 교환권"만 나온다.
키오스크에서 잔돈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1. 기계 안에 잔돈 지폐나 동전이 없거나
2. 손상된 지폐가 기계에 걸린 경우.
아니나 다를까 키오스크 잔돈 교환기 기계에 1천 원짜리가 걸려있었다.
때문에 거스름돈 대신 영수증 교환권만 나오던 것.
거짓말로 잔돈을 요구하는 경우는 없지만, 정확한 금액 확인을 위해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
전화 통화했을 당시 매출 앱 내역을 보니 3,900원이 보였다.
감자알칩 2개, 델몬트바(망고) 2개, 모구음료(요구르트) 1개였다.
정황상 잔돈 6,100원을 못 받은 게 맞는 듯하여 계좌이체로 돌려드리기로 했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이어졌다.
"제가 계좌가 없는데.."
성인인데 계좌를 안 쓰는 사람도 있나 싶었지만 뭐 그럴 수도 있지.
어떤 방식으로 돈을 드릴지 물으려던 찰나에 또 한마디가 이어졌다.
목소리만 들으면 어른인지 아이인지 전혀 분간이 안 되더라.
학원에 가야 된다는 말과 함께 안절부절못해하는 목소리를 듣고는 깨달았다.
"아 어른이 아니라 초등학생 아이구나.."
학원 때문에 오후 8시에 다시 전화를 하면 안 되냐고 묻길래 괜찮다고 했다.
어차피 키오스크 점검하러 가게에 가야 했기에, 퇴근하자마자 무인 가게로 향했다.
계좌가 없다는 아이의 말에 돈을 전달할 방법을 궁리하다가 키오스크에서 6,100원을 꺼냈다.
"비밀 장소에 숨겨놓아야겠다�"
아무도 찾지 못할 비밀장소(?)에 6,100원을 숨겨 놓은 후, 아이가 학원 끝나고 가게에 돌아왔을 때 직접 찾아가도록 문자를 보냈다.
만나서 거스름돈을 건네주면 제일 좋겠지만, 청담이 육아 출근하러 귀가해야 했기에 어려운 상황.
가게를 빠르게 정리하고 밀회 장소에 약속한 금액을 숨겨놓았다.
아이가 왠지 까먹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비밀 장소 좌표를 찍은 문자를 보내자마자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따라 학원이 늦게 끝나서 이제야 전화했다는 아이.
놀기도 바쁜 나이인데 밤 9시까지 학원 다녀오는 모습이 약간 안쓰럽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의 비밀 거래는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