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해 Apr 01. 2024

撒狗糧(sā gǒuliáng)

  사꺼우량(撒狗糧)은 '뿌릴 살()', '개 구()', '양식 량()'의 한자를 써서, 직역하자면 '개 사료를 뿌리다'가 되겠다. 그런데 이게 인터넷 유행어로 쓰이면서 한자만 봐서는 짐작도 안 되는 재미있는 뜻으로 사용된다. 이 단어가 뭘 표현하는지 설명하자면, 먼저 이 단어가 파생되어 나온 딴션꺼우(單身狗, dānshēn gǒu)라는 단어를 좀 알아야 한다. 

 

  딴션꺼우(單身狗)는 자신이 싱글인 것을 스스로 자조하는 의미로 단신(單身) 뒤에 개()를 붙여 만든 인터넷 유행어다. ‘워쓰딴썬꺼우(我是單身狗)'라고 하면 간단히 '나는 싱글이다'이 아니라, '나는 처량한, 불쌍한, 외로운, 고독한 싱글이다'가 되는 것이다. 싱글을 수식하는 이런저런 형용사를 쓰지 않았더라도, 꺼우(狗)가 그 뜻을 대신해 준다.

  

  사꺼우량(撒狗糧)은 바로 이 딴션꺼우(單身狗)에서 파생되어 나왔는데, 싱글 앞에서 '공개적으로 애정행각을 벌이는 행위'를 뜻한다. '애정행각'을 개 사료에, '싱글에게 보여주는 행위'를 던져주는 것에 비유해서 표현한 말이다. 


  딴션꺼우(單身狗)에서 파생된 또 다른 단어로는 뉘에꺼우(虐狗, nüègǒu)가 있는데, 뉘에꺼우(虐狗)의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개를 학대하다'이다. 그렇지만 이것도 사꺼우량(撒狗糧)과 마찬가지로 '공개적으로 애정행각을 펼치다'의 뜻으로 쓰인다. 외로운 싱글이 공개적 애정행각을 벌이는 커플들을 지켜보자면, 자신의 처지와 대비되어 얼마나 질투가 일고 마음이 쓰린가 말이지. 이게 개(=싱글) 학대가 아니면 뭐냔 말이지. 


  그러니까, 사꺼우량(撒狗糧)과 뉘에꺼우(虐狗)는 같은 뜻이. 하지만, 말하는 사람의 심사는 다르다. "우리 부모님은 자녀들 앞에서 사꺼우량(撒狗糧) 하셔."처럼, 상대의 달콤한 애정행각을 비교적 유쾌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표현할 때는 사꺼우량(撒狗糧)을 쓰지만, 여기저기 열애를 과시하고 다니는 커플이 눈꼴셔서 못 봐주겠어서 투덜대며, 질투와 반감을 표현할 때는 뉘에꺼우(虐狗)를 쓴다. 


  외로운 싱글을 왜 고양이라고 안 하고 개라고 했을까? 여러 가지 답들이 있었는데, 나는 대체로 다음 두 가지 견해에 설득이 되어졌다.   

  하나는, 중국 전통문화가 사람을 개에 비유하는 것에 대해 모욕과 폄하의 뜻을 담고 있었는데, lucky dog(행운)이나 top dog(최고 권력을 가진 사람)처럼 개를 좋은 뜻으로 쓰는 영어권의 영향을 받아 현대에는 개에 대한 이미지가 향상되어 젊은이들이 자신을 개라고 부르는 것을 꺼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개는 전통적으로 조락, 비참, 불쌍, 고생, 비천함의 상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싱글의 외롭고 처량한 면모와 일치해서 싱글들이 스스로를 비꼬는데 '개'로 비유하는 것이 딱 적합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견해는, 현대 인터넷 세상에서 개가 사람들에게 주는 느낌은 고독을 두려워하고, 사람에게 의지하고, 충성스럽고, 거기다가 조금은 영리하기도 하면서 바보스럽기도 한 면이, 반쪽이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싱글을 형용하는데 참 적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딴션꺼우(單身狗), 싸꺼우량(撒狗糧), 뉘에꺼우(虐狗) 같은 용어가 중국에서 널리 유행하는 것은 결혼적령기가 되면 마땅히 결혼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와도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중국 사회는 남자 나이가 30살만 넘어가면 벌써 썽난(剩男, shèngnán)이라고 해서 노총각으로 취급한다. 그러다 보니 독신자들을 좋지 않게 보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하지만, 중국은 한 자녀 정책으로 남녀 비율의 불균형이 심하고(미국 정치경제학자는 2030년에 이르면 30살이 넘는 중국남자의 4분의 1이 짝을 못 찾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거기에 더해서 현대사회의 과도한 경제적 압박으로 싱글 비율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싱글의 수가 많아져서 하나의 집단을 형성할 정도가 되면서, 독신에게 따라붙던 사회 압력이 다소 감소하게 되면서, 독신을 수치로 여기기보다는 이런 유행어를 쓰면서 심리적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 아닐까? 누가 나를 썽난(剩男, 노총각)으로 규정하기 전에, 나 스스로 '나, 딴션꺼우(單身狗)거든' 해버린다는 거지. 



참고 : 

1. https://www.bbc.com/ukchina/trad/vert-cap-39217767

2. https://zh.wikipedia.org/zh-tw/单身狗

3. 

이전 17화 馬虎(mǎ hū)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