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얼인의 Mar 25. 2024

정신병이지만 정신과 안 가는 미국 ADHD

영유아건강검진 (Well Child Visit) 6년 차


천방지축(天方地丑). 하늘의 방향과 땅의 축을 모른다는 뜻입니다. [짱구는 못 말려]의 가사에" 천방지축 얼렁뚱땅 앞뒤짱구"라고 나오듯, 유치원생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단어이죠. 예전에는 아이가 천방지축이어도 나이가 나이인 만큼 그러려니 했다면, 지난 몇 년간 오은영 선생님이 TV에 나오며 ADHD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져 많은 부모님들이 소아정신과를 찾고 있습니다. 다만 한국은 소아정신과 전문의가 전국에 400명이 채 안되는데, 갑자기 ADHD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다 보니 소아정신과에 예약을 잡으려면 수개월은 기본이라 부모님이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 같습니다 [1].


이렇게 대기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 ADHD는 천식과 더불어 어린이와 청소년의 만성질환 중 가장 흔한 질환 중 하나입니다. 한국의 초등학생 중 5%가 ADHD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제대로 진단이 되지 않은 아이들을 포함하면 이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ADHD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에는 어릴 때 진단을 받지 못해 성인이 되어서야 진단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죠. ADHD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져있고 적극적으로 검사하는 미국에선 어린이와 청소년 10명 중에 1명은 ADHD가 있다고 하니, 한국도 더욱 인식이 널리 퍼질수록 진단율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2].


미국에서 ADHD의 진단과 치료는 소아과에서 시작


이렇게 ADHD 환자가 많다 보니, 미국이나 한국이나 소아정신과에서 모든 ADHD 환자들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특히나 ADHD는 진단을 하기 위해 학교 선생님이 작성한 설문지가 필요해 번거로운 부분이 있고, 약물 용량을 매주 혹은 매 2주마다 미세하게 조절을 해야 돼서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선 ADHD 진단과 1차적인 약물 치료를 소아과에서 담당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ADHD 약이 여러 개가 있지만 약 한두 개만 써도 증상이 훌륭하게 조절되는 경우가 90%이기 때문입니다 [3]. 미국 소아과 전공의인 저도 이미 수련 중 ADHD 환자를 많이 보고 있습니다. 약이 잘 들지 않거나 ADHD를 동반하는 더 심각한 질환 (반항성행동장애, 품행장애, 학습장애, 불안장애)이 의심이 돼야지만 소아정신과로 의뢰를 하게 되죠. 




6살 영유아건강검진의 핵심: ADHD 검사해야 하나?


미국 소아과에선 6살 검진부터 적극적으로 ADHD에 대한 질문을 물어보기 시작합니다. ADHD는 이론적으로 4세부터 진단이 가능하지만, 실제로 증상이 주로 발견되는 시기는 아이가 5세부터 유치원이라는 정식 교육과정에 적응하기 어려워할 때입니다. 또한 ADHD를 진단하기 위해서 부모와 선생님 둘 다 작성한 설문지가 필요한데, 유치원을 다니고 있지 않으면 설문지를 작성할 선생님이 없이 진단하기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6살 이전에는 ADHD 치료의 주축인 약물치료가 근거가 부족하고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아 권장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6살 검진부터는 학교에서 선생님 말은 잘 따르는지, 숙제는 잘 하는지 등 질문을 물어 1차 스크리닝을 하고, 여기서 ADHD가 의심이 되면 정식 진단을 내리기 위해 설문지를 작성하게 됩니다. 


한국은 아이가 6살이 되기 전에 8차 영유아건강검진(66개월-71개월)이 있는데, 여기에도 ADHD에 대한 문항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가 보니 문항 40여개가 있는데 그 중 다음 질문 3개가 해당할 것 같네요.

아이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수업시간 동안 한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습니까?
아이가 어른의 지시를 따르고 부모 또는 양육자나 선생님이 정해준 규칙을 지킵니까?
아이가 산만하거나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십니까?

따라서 한국에서도 영유아건강검진을 위해 아이를 소아과에 꾸준히 데려간다면 ADHD에 대한 조기 발견 및 진단 절차를 밟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ADHD를 정식으로 진단하기 위해선 부모와 선생님 둘 다 설문지를 작성해야 합니다, 부모님이야 진료를 받으면서 바로 설문지를 작성할 수 있지만, 선생님의 설문지를 받는 것이 번거로운 부분이죠. 미국은 이런 진단과정이 물 흐르듯 이어질 수 있도록 전산 시스템을 구축해 놓은 곳들이 있습니다. 제가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수련을 받을 때에는, 아이가 ADHD이 의심될 때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번거로움 없이 진단을 할 수 있었습니다.

1. 부모에게 학교 이름과 선생님 이름을 물어본다.

2. 위 내용을 전산 시스템에 검색해 나오는 선생님 이메일 주소로 설문지를 보낸다.

3. 선생님이 온라인으로 설문지를 작성하고 업로드한다. 

4. 1-2주 후에 재진일정을 잡아 검사결과를 검토하고 진단을 내린다.


진단에 필요한 이 설문지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보통 Vanderbilt라고 불리는 설문지를 사용합니다. 부모는 55개, 선생님은 43개의 문항을 답해야 하는데, 모두 답하는데 약 10분 정도 걸린다고 하니 은근 시간이 소요되는 설문지이죠. 설문지에는 ADHD에 대한 문항만 있을 뿐 아니라, 반항성행동장애, 품행장애, 불안장애, 우울장애, 학습장애 같은 타 정신과 질환에 대한 문항도 있습니다. 이런 질환들은 ADHD와 같이 발병하기도 하나, ADHD가 없이 따로 발병하기도 합니다. 이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면 ADHD가 없는 아이에게 불필요한 약물을 주게 되기 때문에 정확하게 진단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학습장애가 있어 수업내용을 따라가지 못하면 집중을 하지 않거나 딴짓을 해 ADHD로 오진단을 하게 되는 경우이죠.  ADHD 약물의 대표적인 부작용인 식욕 저하는 아이의 성장을 방해할뿐더러,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ADHD 약을 오래 복용할 경우 어른이 되어 고혈압이나 동맥이 막히고 찢어지는 심각한 질환(동맥경화, 대동맥박리, 동맥색전증 및 혈전증)이 생길 수 있다고 알려져 약물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더욱 주의해야 합니다 [4].




이처럼 ADHD의 치료의 중심은 약물치료지만, 약물치료를 행동치료와 같이 병행할 경우 치료가 더욱 효과적입니다. 미국에선 아이가 ADHD로 진단이 되면 장애가 있다고 판단이 되어, 학교에서 IEP(Individualized Education Plan)이라는 특수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IEP란 선생님과 교내 심리학자가 회의를 통해 아이의 현재 학습역량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계획, 달성할 목표를  정하고 문서화하는 것을 뜻합니다. ADHD 학생을 위해 흔히 포함되는 내용으로는 긍정적인 행동을 칭찬해 주고 보상해 주는 행동치료를 비롯해, 시험 칠 때 추가시간 주기,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시간 주기, 집중력을 해치는 환경적인 요소 제거하기 등 교육적인 지원이 있습니다. 다만 미국도 시스템이 완벽하지 못해 학생 10명 중 6명만 교육지원을 받고, 3명만 행동치료를 받는다고 하네요 [5].


그나마 미국은 대부분의 학교에 심리상담사와 심리학자가 있어 이렇게 IEP를 제공할 수 있는데, 한국은 인력이 활성화되지 않아 개선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6]. 그런 와중 최근 한국에서 ADHD에 대한 황당한 뉴스를 봤는데, ADHD 약이 "공부 잘하는 약"으로 소문이 나 강남 3구에서 10대에게 처방된 ADHD 약이 부쩍 늘었다는 뉴스였습니다 [7]. ADHD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아 참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한국에서 ADHD에 대한 인프라와 올바른 인식이 바로잡혀 아이들이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image credit: Hotpot


references:

1. http://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20482

2. doi.org/10.1542/pir.2020-000612

3. Nelson Textbook of Pediatrics. 20e.

4. Zhang L, Li L, Andell P, Garcia-Argibay M, Quinn PD, D’Onofrio BM, Brikell I, Kuja-Halkola R, Lichtenstein P, Johnell K, Larsson H. Attention-deficit/hyperactivity disorder medications and long-term risk of cardiovascular diseases. JAMA psychiatry. 2024 Feb 1;81(2):178-87

5. doi.org/10.1177/1087054718816169

6. http://www.mo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5524

7. https://view.asiae.co.kr/article/2024010814414946393

이전 02화 아이 키가 작으면 위험한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