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차자창!’
폭발 소리에 이어 깨진 스테인드글라스 조각들이 성당 안으로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끼야악!”
동시에, 연단 옆 구석에서 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대사제가 얼른 비명이 들리는 곳을 보니, 기둥 뒤에서 웅크리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원으로 돌아가는 척만 하고 기둥에 숨었던 모양이었다.
“이런!”
놀라는 것도 잠시, 아이들의 머리 위로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유리 조각이 보였다.
커다란 유리 조각은 당장이라도 떨어질 듯 덜렁거렸다.
부리나케 달려가 아이들을 향해 몸을 던지는 대사제.
‘챙!’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유리 조각이 아래로 떨어졌다.
송곳니처럼 뾰족한 날이 햇볕에 번쩍거렸다.
“아악!”
아이들을 손으로 밀쳐내고 그 자리에 엎어지는 대사제.
충격을 각오하고 머리를 감싸 안았다.
“일자시여!”
인상을 쓰며 웅크린 몸에 힘을 주는 대사제.
그렇게 잠시 기다렸나, 떨어질 때가 지난 거 같은데 이상하게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자신을 향해 유리가 떨어지긴커녕, 다른 조각들이 떨어져 부서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뭐?”
의아한 마음에 천천히 고개를 드는 대사제.
대사제에게 밀려난 아이들도 대사제를 좇아 천천히 위를 봤다.
“우와아, 대박!”
위를 보자, 거대한 초록색 구체가 뒤집힌 우산처럼 성당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구체면 곳곳에 깨진 유리 조각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구체의 둥근 면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아래쪽에 리가 서 있었다.
그는 양팔을 위로 치켜든 채, 마치 초록색 구체를 떠받치는 것처럼 보였다.
“오오, 중력구!”
놀란 눈으로 혼잣말하는 대사제.
흘러 내려온 리의 옷자락 위로, 왼쪽 팔뚝에 감긴 회전식 자물쇠가 보였다.
그걸 보고는 대사제의 입이 떡 벌어졌다.
‘크와아아앙!’
‘끼야아아아악!’
안심하는 것도 잠시,
깨진 유리창을 뚫고 알 수 없는 동물의 괴성과 영혼들의 비명 소리가 뒤섞여 들어왔다.
성당 안의 사람들은 누가 시키기라도 한 듯 일제히 창밖을 바라봤다.
커다란 괴물의 실루엣이 깨진 창을 통해 살짝 보였다.
정확히 가늠할 순 없었지만, 붉은 피부나 마치 공룡같이 거대한 몸체가 천계에 속한 짐승은 아닌 게 분명했다.
“오, 일자시여. 이번엔 또 뭡니까.”
젊은 사제가 양손을 가슴 앞에 모은 채 울상을 지었다.
천계병들은 서로를 향해 턱짓을 했다.
‘네가 나가봐라’, ‘아니다 네가 나가봐라’, 서로 미루는 모양새였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리는 중력구를 기울여 벽 쪽으로 붙였다.
중력구를 없애자 일렬로 섰던 유리 조각들이 안전하게 벽 쪽으로 쏟아졌다.
중력구를 없애자마자, 리는 들어왔던 성당 문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아따, 워쩔라고 그라쑈!”
뭉치가 의자 위에 올라서며 리에게 소리쳤다.
“왜? 나가려고? 나가서 뭐 하려고?”
비토가 함께 날며 리에게 소리쳤다.
“비명 소리가 들리잖아. 도와줘야지!”
“미친, 이봐, 정신 차려! 넌 오발탄을 찾으러 왔잖아. 괜히 정체가 탄로 나 천계병에게 붙들리면 어쩌려고 그래!”
문 손잡이를 붙든 채 비토의 흥분한 얼굴을 바라보는 리.
그의 지적이 맞긴 했다.
어떻게든 오발탄의 흔적을 찾아 그를 추적해야 했다.
그를 붙잡아 누명을 벗는 게 먼저였다.
유니 선배를 위해, 일권 선배를 위해, 환생 관리국 14팀을 지켜내기 위해.
“천계 일은 천계에 맡겨야지. 괜히 오지랖 부리지 말아!”
뿅망치를 꺼내서 리의 머리를 콩콩 내리치는 비토.
손잡이를 붙든 리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끼야아아악!’
그때, 다시 영혼들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창문을 뚫고 들어왔다.
‘크와아아앙’
‘살려줘! 제발!’
잠시 뒤, ‘펑’ 소리와 함께 성당 문이 통째로 날아갔다.
리의 손엔 부서진 손잡이만 덜렁 들려 있었다.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리를 바라보는 비토.
리의 눈이 초록빛으로 완전히 변해 있었다.
“몰라, 그냥 도와주고 싶어!”
성당 밖으로 뛰쳐나가는 리.
비토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리를 뒤따라 나갔다.
뛰어나가는 리의 뒷모습을 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대사제.
그의 눈에 익숙한 누군가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오오, 군주님!”
외마디 외침과 함께 대사제도 홀린 듯 성당 밖으로 달려 나갔다.
‘크와아아앙!’
밖으로 나오자마자 낯선 광경에 입이 떡 벌어지고 마는 대사제.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오, 어찌 천계에 이런 일이...”
성당 위 하늘에는 커다랗게 ‘검은색 포털’이 뚫려 일렁이고 있었고,
성당 앞쪽 지붕은 철퇴라도 맞은 듯 한쪽이 움푹 찌그러져 있었다.
“아, 아, 아모툼! 암형계의 대괴수가 어찌...”
대사제를 뒤쫓아 온 젊은 사제가 얼굴이 하얗게 사색이 된 채 소리쳤다.
‘크아아아앙’
성당 앞 광장 한가운데에, 온몸이 용암처럼 새빨간 거대 괴수가 광장이 떠나가라 울부짖고 있었다.
익룡처럼 커다란 날개를 가진 근육질의 오랑우탄이었는데,
입엔 표범처럼 긴 송곳니가 튀어나왔고,
머리 뒤에서부터 꼬리까지 육각형의 뾰족한 가시가 어지럽게 꽂혀있었다.
괴수는 커다란 날개를 펄럭거리며 광장의 영혼들을 향해 꼬리를 세차게 휘둘렀다.
꼬리에 맞은 영혼들이 속절없이 날아가 쓰러졌는데,
어느 정도 영혼들이 쌓이자, 괴수는 입을 벌려 쓰러진 영혼들을 ‘후욱’ 빨아들였다.
영혼들이 입안 가득 차자 우걱거리며 씹어대는 괴수.
꿀꺽 삼키고는 만족스럽다는 듯 ‘크아아아앙’ 고함을 질렀다. 행여 빨려갈까, 영혼들은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달아났다.
“그만두지 못해!”
리가 고함을 지르자, 순간 공기가 ‘꿀렁’하며 리 쪽으로 움츠러들었다가 폭발하듯 퍼져 나갔다.
그 충격에 훅 뒤로 밀려나는 아모툼.
짐짓 놀란 표정으로 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리가 광장으로 뛰어나오자, 괴수는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러다 아래턱을 두꺼비처럼 부풀리더니, ‘퉤’하고 리를 향해 초록색 액체를 뱉었다.
얼른 팔을 뻗어 초록색 액체를 공중에서 멈추는 리.
영혼들이 닿지 않게 한쪽으로 치우려는 순간, 액체 뒤로 날카로운 뭔가가 번쩍거리는 게 보였다.
괴수가 벌처럼 꼬리 끝에서 작살을 쏜 것이었다.
붙잡기엔 늦었다 싶었던 리는, 얼른 한쪽으로 굴러 몸을 피했다.
작살이 맨바닥을 찌르고는 빠르게 되돌아갔다.
리가 바닥을 구르며 손을 풀자, 공중에 멈췄던 초록색 액체가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액체에 닿은 땅바닥이 ‘치이익’ 소리를 내며 녹아들어 갔다.
‘퇫, 퇫, 퇫, 퇫.’
갑자기 고개를 돌려가며 사방에 초록색 액체를 뱉어대는 괴수. ‘끼야아악’ 액체를 피하려 영혼들이 이리저리 뛰며 비명을 질렀다.
“이 자식이!”
얼른 일어나 자세를 고쳐 잡은 리는 양팔을 하늘로 뻗어 액체들을 모두 멈춰 세웠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괴수가 뒤로 돌면서 리를 향해 작살을 쐈다.
액체를 영혼들의 머리 위로 떨어뜨릴 수 없었던 리는, 팔을 뻗은 채 뒤로 폴짝 뛰었다.
‘파박!’
아슬아슬하게 리의 발 앞에 꽂히는 작살.
이제 반격하리라 고개를 드는 순간, 갑자기 괴수가 리의 바로 앞까지 ‘훅’ 다가왔다.
작살을 고리처럼 사용해, 리에게 달려든 것이었다.
‘슈우욱!’
그 자세로 리를 빨아들이는 괴수.
엄청난 압력이 리의 몸을 끌어당겼다.
“이익!”
땅바닥에 발을 박고 버티는 리.
강력한 흡입력에 입었던 흰색 로브가 주욱 찢어지며 괴수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리의 머리카락이며 스카프가 바람에 거세게 흔들렸다.
“리! 어떻게 좀 해봐!”
비토가 리의 스카프 끝에 매달린 채 고함을 질렀다.
‘화르륵!’
리가 쉬 끌려오지 않자, 괴수가 에테르를 끌어올리며 더 빠르게 리를 빨아 당겼다.
괴수의 몸에서 화염이 거세게 타올랐다.
“이, 이익!”
더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인상을 쓰며 눈을 감는 리.
“달라다라 워제아니, 달라다라 워제아니, 달라다라 워제아니!”
천둥의 눈이 알려줬던 주문을 큰소리로 되뇌이는 리.
3번째 되뇌이는 순간,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훅 끓어올랐다.
눈을 번쩍 뜨는 리.
순간, 리의 눈이 샛노랗게 변해있었다.
등 뒤로 주먹 만한 태양이 생겨나 빛을 뿜어댔고, 머리카락은 노랗게 변해 너울거렸다.
“섬뢰(纖雷)!”
‘쩌저적!’ 앞으로 내민 리의 손끝에서 번개들이 뻗어 나와 괴수에게 날아갔다.
‘크아앙!’
번개에 몸이 관통되자 고통스럽게 몸을 비틀어대는 괴수.
빨아들이기를 멈추고는 뒤로 훅 날아올랐다.
“다중 천압(天壓)”
이때를 놓치지 않고 리가 괴수를 향해 천압을 쏘았다.
허공에 정육면체의 투명한 공기덩어리 여섯 개가 만들어지더니, 상하, 전후좌우에서 괴수를 동시에 둘러쌌다.
리가 주먹을 움켜쥐자, 정육면체들을 마치 자석처럼 괴수를 짓이기며 가운데로 모여들었다.
‘키야악, 캬악!’
천압에 짓눌리며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러대는 괴수.
“오오오, 작긴 하지만 천압까지!”
그 모습을 지켜보던 대사제가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거 봐요, 제가 뭐라 했어요, 저 아저씨 대박이라 했잖아요!”
어느새 달려온 꼬마가 대사제의 옆에서 폴짝폴짝 뛰며 소리쳤다.
허공에 멈춰 세웠던 초록 액체를 괴수를 향해 던진 뒤, 리는 권총을 쏘듯 한 손으로 괴수를 겨냥했다.
리의 검지손가락 끝으로 구슬 같은 불빛이 점점 모여들며 번개를 지직거렸다.
“이제 죽어라, 이 괴물!”
리가 손가락을 튕기려는 순간, ‘펑’ 갑자기 커다란 화염구가 리의 등 뒤로 날아들었다.
‘펑! 펑! 펑!’
연속으로 네 개의 화염구를 맞고 주르륵 밀려나는 리.
얼른 자세를 고쳐 잡고 화염구가 날아온 쪽을 돌아봤다.
“리, 저기, 포탈!”
성당 위, 검은 포탈을 가리키며 비토가 소리쳤다.
그리곤 뭐가 무서웠는지 리의 스카프 속으로 잽싸게 몸을 숨겼다.
얼른 포털을 바라보는 리.
포털 근처에 핏빛 갑옷을 입은 병사가 굵직한 장검을 어깨에 걸친 채 한 손을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아마 그가 리에게 화염구를 쏜 모양이었다.
기사의 온몸에는 뾰족한 가시들이 마치 덩굴처럼 칭칭 감겨 있었고, 가시 여기저기엔 갈색 핏자국 묻어 있었다.
가시 덩굴이 듬성듬성 감긴 얼굴은 마치 없는 것처럼 텅 비어 새까맸는데,
놀랍게도 그의 몸 전체에서 노란색 에테르가 아지랑이 일듯 일렁거리고 있었다.
“리도 보이지? 저 노란색 에테르?”
스카프에서 눈만 빼꼼히 내민 채 비토가 속삭였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는 리.
두 번째 자물쇠가 사라진 후론 굳이 고글이 아니어도 상대방의 에테르쯤은 느낄 수 있었다.
저 자는 A급 마물임이 틀림없었다.
“상관없어. A급이든 뭐든.”
인상을 쓰며 에테르를 끌어올리는 리.
‘지지직’ 그의 몸에서 번개가 번쩍 거렸다.
그때, 포털에서 쑤욱 발이 빠져나오더니 핏빛 갑옷을 입은 병사가 더 등장했다.
한 명이 아니었다.
두 명이었다.
하나는 칼날이 외곽선을 따라 촘촘히 박힌 방패를,
다른 하나는 자기 키만 한 반달 모양의 낫을 가슴 앞에 들고 있었다.
그들의 몸에서도 노란색 에테르가 은은하게 풍겨 나왔다.
“우왁, 3명이다. 난 모르겠다, 리.”
리의 스카프 속으로 고개를 파묻는 비토.
‘후우우’ 숨을 내쉬며 호흡을 고르는 리.
세 명의 마병(魔兵)은 허공에서 고개를 좌우로 꺾으며 리를 내려다봤다.
얼굴이 없으니 정확히 리를 보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거지!”
이를 깨물며 한번 더 에테르를 끌어올리는 리.
리의 머리카락이 마치 화염처럼 치솟아 흐느적거렸다.
리는 팔을 앞으로 뻗으며 손바닥에 에테르를 모았다.
“뭐 하는 거냐!”
그때, 낮고 굵직한 목소리가 공간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며 퍼져나갔다.
그리곤 또 한 명의 마병이 포털에서 쑤욱 빠져나왔다.
핏빛 마병들보다 2배는 큰 육중한 체구의 마병은, 곰 형상의 은빛 중 갑옷으로 온몸을 단단하게 감싸고 있었다.
그의 등 뒤에 X자로 매어진 두 개의 장검에선 화염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오, 마, 마, 마장군...”
대사제가 자기도 모르게 떡 벌린 입을 가린 채 혼잣말을 했다.
그랬다, 그는 제2마장군 마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