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술에 관하여
시들어가는 꽃을 보면,
놀라지 않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입술에 닿은 깃털의 촉감같은 목소리로
“아직 햇빛이 반할 만하오”라고 속삭여주어야지.
- 황선하, <시든 꽃에 반하다>
봄을 마주할 때마다 늘 다짐하곤 한다. 벚꽃만 편애하지 않고 이름 모를 들꽃도 사랑하며 비워냄으로 나무를 살리는 앙상한 가지도 사랑하자고, 한철만 사랑하지 않고 꽃들의 무지갯빛 절정에 감탄하면서도 봄이 지난 날들에도 힘껏 예쁘다고 말해주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봄마다 식물의 생애 구석구석을 사랑하자는 봄의 의례는 이내 확장되어 봄에서 사계절로, 식물에서 사람으로 잇닿는다. 그때마다 신은 내가 드리는 작은 다짐에도 계절을 이해하는 넉넉함을 선사해 주신다. 말하자면 봄의 세례인 것이다.
한 해가 가기 전에 사랑이 시들어 버린다는 호르몬의 저주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어쩌면 의외로 간단한지도 모른다. 바로 봄을 사유하는 것이다. 봄을 사유하되 깊이 사유하는 것이다. 봄이란 무엇이며 그 주변에는 무엇이 있는지, 봄은 어떻게 오고 봄은 어떻게 떠나는지 생각하노라면 겨울에 의연해지고 여름을 귀여워하게 된다. 그렇게 황선하 시인이 말하듯이, 시든 꽃은 여전히 햇빛이 반할 만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철의 절정만 사랑하지 않으며 봄 너머의 날들에도 여전한, 아니 더 깊은 사랑을 고백하는 것은 그렇게 봄으로부터 당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