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르네상스
왜 인간 지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가
AI가 써준 글, AI가 그려준 그림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고 있을까요? 우리는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려다,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기계가 '생각'을 흉내 낼수록, '인간의 생각은 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더욱 선명해집니다.
앞으로 연재할 브런치북에서, AI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더욱 또렷해져야 할 우리 각자의 목소리를 발견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곳에서는 AI 사용법이 아닌, AI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생각법’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본격적인 내용에 앞서, 자기소개가 부담스럽지만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를 돕고 앞으로의 여정에 신뢰를 더하기 위해 제 소개를 잠시 덧붙이는 것을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33년차 IT 경력을 가진 사람이면서, 독서와 글쓰기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지난 8월 출간한 서적은 국내도서 70위(예스24 기준), IT 분야 1위를 기록한 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습니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50566390
또한, 본명이나 필명으로 문학 및 다양한 글쓰기 분야에서 창작 활동도 하고 있는데, 일부 수상 이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김장생 신인문학상 대상 (수필)
사하모래톱문학상 대상 (시)
코스미안상 대상 (칼럼)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에세이)
인터넷상에 공개적으로 IT와 문학 이력을 동시에 밝히는 것은 브런치가 처음입니다. 오해가 없도록 부연하자면, 문학 활동은 글쓰기를 좋아해서 하는 것인지라 의식적으로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잠시 내려놓습니다. 언어와 씨름하고 문장을 다듬는 그 과정 자체가 창작의 본질이며 곧 창작자로서의 고통이자 기쁨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훈련을 통해 갖추게 된 '읽기, 쓰기, 비판적 사고' 역량이 AI를 업무나 다른 연구에 활용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번 브런치북에서는 이에 대해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현재까지 문인으로 출간한 작품은 다음의 그림책 하나입니다만(2025 신춘문예 당선시집은 모음집이라 제외), 내년부터 좀 더 활발한 활동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35743535
최근작 <AI 시대의 질문력,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서적이 AI를 잘 다루기 위한 기술적인 내용이었다면, 새롭게 계획하는 콘텐츠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사고력 극대화’에 대한 내용입니다. 디지털 기술의 최첨단과 아날로그의 정수를 동시에 탐구하는 사람으로서, 그동안 고민하고 연구한 내용을 나누고자 합니다.
앞으로의 글에서는 경어체 대신 평어체로 이야기하겠습니다. 기술의 파도 위에서 가장 인간적인 사유의 닻을 내리는 시간, 함께 시작해 볼까요?
AI는 답하고, 인간은 질문한다
우리는 즉각적인 해답을 얻는 데 익숙해진 나머지, 좋은 질문을 던지는 능력을 잃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켜고 몇 번의 터치만으로 세상의 모든 지식을 순식간에 불러올 수 있다. 그리고 이제 거대한 패턴 인식 엔진, AI는 기존 데이터로부터 그럴듯한 답을 생성하는 탁월한 능력까지 보여준다. 마치 세상 모든 질문에 답하기 위해 태어난 완벽한 지적 기계와도 같다.
하지만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과학, 비즈니스, 예술 분야에서 인류의 위대한 진보는 과연 기존의 질문에 대한 더 나은 ‘답’을 찾는 과정에서만 이루어졌을까? 그렇지 않다. 진정한 도약은 언제나 문제의 틀 자체를 재정의하는, 누구도 던지지 않았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이야말로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적의 경로를 탐색하는 AI와 달리, 미지의 영역을 사유하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다.
AI는 자신이 학습한 데이터가 세상의 전부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 인지할 수 있다. 역사 기록의 공백, 과학적 사실 사이의 단절, 데이터의 부재와 불확실성을 발견하고 그 간극을 파고들며 탐구의 동력을 얻는다.
확실성에 대한 갈망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진정한 앎은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는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의 위대한 지적 능력, 바로 ‘생산적 무지(Productive Ignorance)’다. 이는 단순히 ‘모른다’는 상태를 넘어서, 좋은 질문을 만들어내는 무지를 의미한다. 컬럼비아 대학의 스튜어트 파이어스타인(Stuart Firestein) 교수가 제시한 ‘양질의 무지(High Quality Ignorance)’와 유사한 개념으로, 과학과 창의성의 진정한 원동력이다.
양질의 무지란 현재의 지식을 바탕으로 더 좋은 질문을 만들어낼 수 있는 무지를 뜻한다. 파이어스타인은 "지식을 사용하여 높은 질의 무지를 만들어낸다"고 설명했으며, 낮은 질의 무지와 높은 질의 무지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지식이 쌓이면 쌓일수록 우리가 모르는 영역도 함께 확장되는데, 이는 연못에 던진 돌의 파문과 같다. 파문이 퍼질수록 면적이 넓어지듯, 지식이 늘어날수록 무지의 경계도 함께 넓어진다.
파이어스타인은 "지식은 우리가 무엇을 아느냐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지식을 바탕으로 얼마나 좋은 질문을 할 수 있느냐로 측정된다"고 설명했다. 즉, 조금 알게 되면 그것을 통해 앞으로 탐구해야 할 무지를 더 잘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고를 멈추게 하는 무지가 아니라, 더 많은 질문과 더 나은 질문으로 이끄는 무지를 말한다.
무지의 두 얼굴
대부분의 사람은 무지를 부끄러운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생산적 무지는 정반대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이 "내가 빛과 같은 속도로 날아가면 빛이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일까?"라는 의문을 가졌을 때, 이는 그가 무언가를 몰랐기 때문에 나온 질문이다. 바로 이 질문이 상대성 이론의 출발점이 되었다.
일상 속 생산적 무지
요리를 하는 어떤 사람이 "왜 파스타를 삶을 때 소금을 넣을까?"라는 의문을 가지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이 질문을 파고들면 삼투압 현상(면 속 수분 함량이 줄어들어 면이 더 단단하고 쫄깃해짐), 맛의 과학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면 "그냥 레시피대로 하면 돼"라고 생각하는 순간, 질문은 사라지고 새로운 배움도 멈춘다.
AI와 인간의 차이
최신 LLM(대형언어모델)은 주어진 데이터의 한계를 분석하고 논리적 공백을 찾아냄으로써, 인간 연구자가 미처 생각지 못한 질문을 생성해 내기도 한다. 이처럼 AI가 지식의 경계선을 탐색하는 강력한 조수가 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근본적인 차이는 질문의 동기에 있다. AI의 질문 생성이 데이터의 통계적 패턴과 확률에 기반한 '추론'의 영역이라면, 인간의 '생산적 무지'는 개인적 경험, 사회적 맥락, 순수한 지적 호기심에서 비롯되는 '발견'의 영역이다.
AI가 우리의 길(목표)을 더 빨리 탐색하도록 돕는 강력한 도구라면, 왜 그 길을 가야 하는지, 혹은 완전히 새로운 목적지, 즉 ‘알려지지 않은 미지(unknown unknowns)’를 상상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AI 시대에 우리가 연마해야 할 지성은 바로 이 탐구의 방향키를 쥐는 능력이다.
* 다음 글에서는 '질문하는 인간을 위한 생각법 3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