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인간의 생각은 어떻게 무기가 되는가?
AI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좋은 질문을 던지는 능력을 기를 수 있을까? 거창한 담론 대신, 생각을 깨우는 몇 가지 구체적인 팁을 제안한다.
AI는 자기가 아는 ‘있는 사실’을 기반으로 가장 확률 높은 답을 내놓는다. 이때 인간은 "만약 ~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반사실적 사고(Counterfactual Thinking)를 통해 AI의 프레임을 단숨에 넘어설 수 있다. “만약 바퀴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만약 우리 회사가 전혀 다른 산업의 스타트업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까?”처럼 당연한 전제를 뒤집는 질문은 새로운 관점과 창의적인 해결책의 문을 연다.
반사실적 사고는 실제로 일어난 일과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이다. 과거를 재구성하거나 미래를 예측하는 데 사용하는 인지 능력이며,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유형이 있다.
1) 상향적(Upward) 반사실적 사고
실제보다 더 나은 결과를 상상한다. 후회와 자책을 유발하지만, 미래 행동 개선의 동기가 된다. 예) "만약 30분 일찍 출발했더라면 면접에 늦지 않았을 텐데", "더 열심히 공부했더라면 합격했을 거야" 등
2) 하향적(Downward) 반사실적 사고
실제보다 더 나쁜 결과를 상상한다. 위안과 안도감을 주며, 현재 상황에 감사함을 느끼게 한다. 예) "차가 조금만 더 빨랐으면 큰 사고가 났을 거야", "그때 그 결정을 안 했으면 더 힘들었을 거야" 등
반사실적 사고는 인간의 학습과 적응에 필수적이다. 이는 단순히 상상만 하는 게 아니라, 과거로부터 배우고 미래를 준비하는 인간의 독특한 인지 능력으로, 다음과 같은 효능이 있다.
의사결정 개선: 과거의 선택을 분석하며 "다음번엔 이렇게 해야지"라는 교훈을 얻는다. 실패 후 "왜 그랬을까?"를 반추하며 더 나은 전략을 개발한다.
감정 조절: "그래도 이 정도면 다행이야"라는 생각으로 부정적 감정을 완화한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며 현재 상황을 긍정적으로 재해석한다.
창의성과 문제 해결: "만약 이렇게 하면?"이라는 질문이 새로운 아이디어의 원천이 된다. 과학자들이 가설을 세울 때, 작가가 플롯을 구상할 때 모두 반사실적 사고를 활용한다.
AI는 데이터 기반으로 패턴을 학습하고 추론할 뿐,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감정'을 느끼지는 못한다. "만약 ~했더라면"이라는 생각에 수반되는 후회, 안도, 아쉬움 같은 복합적 감정은 인간 고유의 경험이다.
인간은 전혀 다른 영역의 지식을 연결하여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생물학의 진화론을 비즈니스 전략에 적용하고, 음악의 화성학에서 조직 관리의 힌트를 얻는 식이다. 유추는 그저 비슷한 것을 찾는 행위가 아니라, 한 영역의 근본적인 구조, 원리, 관계를 추출하여 전혀 다른 영역에 의도적으로 적용해 보는 고도의 지적 활동이다.
앞서 살펴본 반사실적 사고가 하나의 시스템 내에서 특정 변수나 조건을 바꾸어 상상하는 방식이라면, 유추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시스템을 연결하고 비교하는 방식이다. 간단히 말해, 반사실적 사고가 '우리 이야기 속 다른 시나리오'를 상상하는 것이라면, 유추는 '남의 이야기에서 교훈을 얻어와 우리 문제에 적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개미 군집의 의사소통 방식을 우리 팀의 프로젝트 협업에 적용해 본다면?”과 같은 질문은 전혀 다른 차원의 해답을 가져다줄 수 있다.
이 같은 역량의 증진을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다른 분야의 책을 읽고,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대화하며 생각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유추적 사고는 단순 아이디어 발상을 넘어, 복잡한 문제를 재정의하고, 대중을 설득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문제의 재정의: 풀리지 않는 문제를 전혀 다른 렌즈로 보게 만든다. 예를 들어, ‘고객 이탈 문제’를 ‘연인과의 이별 과정’에 유추해 본다면, 단순히 할인 쿠폰을 제공하는 차원을 넘어 고객과의 감정적 관계, 소통 방식, 신뢰 회복의 단계 등 새로운 해결책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효과적인 설득: 낯설고 복잡한 개념을 청중에게 친숙한 모델을 통해 쉽게 설명할 수 있다. 과학자들이 원자의 구조를 ‘태양계 모델’에 비유하여 설명했던 것처럼, 비즈니스 리더는 새로운 시장 전략을 ‘상륙 작전’에 비유하여 팀원들의 이해와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다.
AI는 표면적인 문제에 대해 놀랍도록 빠르고 그럴듯한 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 즉각적인 답변에 만족하는 대신,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갈 필요가 있다. 이때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바로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을 때까지 ‘왜?’라는 질문을 반복하는 ‘5가지 이유(5 Whys)’ 기법이다. 이는 도요타에서 일하던 오노 다이이치(Taiichi Ohno)가 도요타 생산 시스템에서 불량의 근본 원인을 찾아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체계화한 방법론으로, 이제는 모든 종류의 문제 해결에 널리 쓰인다.
'매출이 떨어진 상황'을 예로 들어보자. 이 현상에 대해 “왜 떨어졌는가?”부터 시작해 다섯 단계만 파고들어도, 단기적인 해결책을 넘어 시스템 전체를 개선할 근본적인 통찰에 도달할 수 있다. 처음의 '왜?'는 현상을 묻지만, 마지막 '왜?'는 문제의 본질과 시스템의 근원에 닿아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피상적인 답변 너머의 진짜 문제를 발견하는 단순하고 강력한 방법이다.
어린아이들은 끊임없이 '왜?'라고 묻는다. 하늘은 왜 파란지, 비는 왜 오는지, 어른들은 왜 일을 하는지. 이런 순수한 호기심이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라는 사실을 우리는 자라면서 잊어버린다.
표면 아래를 들여다보다
대부분의 문제는 겉으로 드러난 증상과 진짜 원인이 다르다. 기계가 멈췄다고 해서 기계 자체가 문제의 본질이 아닐 수 있다. 직원이 실수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능력 부족이 근본 원인이 아닐 수 있다. 5가지 이유 기법은 이처럼 표면적인 문제에서 시작해 다섯 번의 '왜?'를 반복하며 진짜 원인에 도달하는 방법이다.
도요타의 유명한 사례를 보자. 기계가 작동을 멈췄다. 왜? 과부하로 퓨즈가 끊어졌다. 왜 과부하가 걸렸나? 베어링의 윤활이 충분하지 않았다. 왜 윤활이 충분하지 않았나? 윤활 펌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왜 펌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나? 펌프 축이 마모되었다. 왜 축이 마모되었나? 여과기가 없어서 금속 조각이 들어갔다. 결국 해결책은 기계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여과기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단순함 속의 깊이
이 기법의 매력은 특별한 도구나 복잡한 통계가 필요 없다는 점이다. 종이 한 장과 펜, 그리고 진지하게 질문할 의지만 있으면 된다. 문제를 명확히 정의하고, "왜 이런 일이 발생했나?"라고 물은 뒤, 그 답에 대해 다시 '왜?'를 묻는다. 이를 다섯 번 정도 반복하면 대부분의 경우 근본 원인에 도달할 수 있다.
물론 꼭 다섯 번일 필요는 없다. 세 번 만에 답을 찾을 수도 있고, 일곱 번이 필요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의미 있는 답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파고드는 자세다. 표면적인 해결책에 만족하지 않고, 시스템과 프로세스의 결함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핵심이다.
사람이 아닌 시스템을 보다
5가지 이유 기법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한 가지 중요한 원칙이 있다. 사람을 탓하지 말고 시스템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왜 김 과장이 실수했나?"라는 질문에 "부주의해서"라고 답한다면 그건 근본 원인이 아니다. 올바른 질문은 "실수가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이었나?"가 되어야 한다.
교육이 부족했나? 업무 절차가 모호했나? 확인 시스템이 없었나? 과도한 업무량이 문제였나? 이렇게 파고들면 개인의 실수가 사실은 조직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되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야 재발을 막을 수 있는 진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일상에서 만나는 5가지 이유
이 기법은 우리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될 수 있다. 프로젝트가 지연되었다면, 왜 지연되었는지 다섯 번 물어보자. 고객 불만이 늘어났다면, 그 이면의 근본 원인을 찾아보자. 심지어 개인적인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도 이 방법을 쓸 수 있다.
운동을 계속하지 못한다면 왜일까? 시간이 없어서? 왜 시간이 없나? 퇴근이 늦어서? 왜 퇴근이 늦나? 업무가 비효율적이어서? 왜 비효율적인가? 우선순위가 불명확해서... 이렇게 파고들면 단순히 "의지가 약해서"라는 피상적인 결론이 아니라, 실제로 개선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질문하는 용기
5가지 이유 기법이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아마도 이것일 것이다. 질문을 멈추지 말라는 것. 첫 번째 답에 만족하지 말고, 편안한 설명에 안주하지 말고, 계속 파고들라는 것. 때로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할 수도 있다. 조직이나 스스로의 고질적인 문제나, 오랫동안 방치된 결함이 드러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개선의 시작점이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호기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용기. 그것이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는 첫걸음이다.
AI가 파놓은 얕은 우물에 만족하지 않고, 끈질긴 질문을 통해 문제의 근원이라는 심층수를 길어 올리는 것, 이것이 바로 AI 시대에 더욱 빛을 발하는 인간의 사유 방식이다.
질문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AI 시대에 필요한 역량은, 단순히 AI를 잘 다루는 기술적 능력이 아니다. 그것은 AI가 제공하는 무한한 답변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우리만의 질문을 던져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능력에 가깝다.
AI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세계를 더욱 빠르고 효율적으로 만들어 줄 강력한 도구다. 하지만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떤 세상이 더 나은 세상인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그리고 그 위대한 여정에 나서는 힘은 결국, 세상을 바꿀 질문을 찾아내려는 용기와 지혜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 이 글은 연재의 일부입니다. 앞선 내용을 확인하시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