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자체를 되묻는 인간의 ‘근원적 질문’
AI는 학습한 내용으로 새로운 조합의 결과물을 만들어 답하고, 필요에 따라 질문을 생성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AI의 질문과 인간의 질문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또한 어떤 차이가 있어야 할까?)
AI에게 질문이란 풀어야 할 ‘문제(problem)’이지만,
인간에게 질문은 종종 빠져들고 싶은 ‘수수께끼(riddle)’에 가깝다.
AI가 던지는 질문은 대부분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능적, 목적 지향적 질문이다. 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명확화 질문: 사용자의 모호한 명령을 명확히 하기 위해 "어떤 스타일의 글을 원하시나요?"라고 묻는 경우다. 이는 사용자와 AI 사이의 소통 오류를 줄여 결과물의 정확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중간 단계 질문: 복잡한 코드를 짜거나 긴 글을 쓸 때, 스스로 "다음 논리적 단계는 무엇인가?" 또는 "이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무엇인가?"라고 내부적으로 질문(CoT, Chain-of-Thought)한다. 이는 정해진 길을 가는 과정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점검하는, 고도로 발달한 연산 과정이다. 제미나이 2.5 프로와 같은 최신 AI 모델이 추론을 거치면서 답변에 시간이 걸리는 게 바로 이 때문이다.
이처럼 AI의 질문은, 주어진 문제(A)를 해결하여 정해진 답(B)으로 가는 과정의 효율을 높이는 질문이다.
반면, 앞으로 필요한 인간의 질문은 프레임 자체에 의문을 던지는 근원적 질문이다. "왜 A라는 문제를 풀어야 하는가?", "B가 과연 우리가 원하는 정답이 맞는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C라는 가능성은 없는가?"와 같이, 문제 해결의 판 자체를 새로 짜는 질문이다. 이는 데이터 안에 존재하지 않는 가치, 철학, 비전에 대한 사유에서 비롯된다.
코페르니쿠스는 행성의 움직임을 더 정확히 '계산'하는 방법을 찾기보다 "애초에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닐 수 있지 않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바로 이 질문이 천동설이라는 거대한 프레임을 무너뜨렸다.
실용적인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AI에게 "현재의 공급망에서 비용을 10% 절감할 방법을 찾아줘"라고 요청하면, AI는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물류 경로와 재고 관리법을 제안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 리더는 "우리가 왜 이 공급망을 유지해야 하는가? 어쩌면 D2C(Direct to Consumer) 모델로 전환해야 하는 건 아닐까?"라고 묻는다. AI가 주어진 판 위에서 가장 좋은 수를 찾는다면, 인간은 그 판 자체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사유한다.
쉽게 비유하자면, AI의 질문은 내비게이션이 "목적지까지 더 빠른 길이 있는데, 경로를 변경할까요?"라고 묻는 것과 같다. 인간의 질문은 "우리가 지금 이 목적지로 가는 게 맞나? 어쩌면 여행의 목적지 자체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라고 묻는 것과 같다.
AI가 만드는 새로운 창작물은 방대한 학습 데이터 안의 패턴, 스타일, 개념을 놀랍도록 정교하게 재조합한 결과물이다. 이를 '결합적 창의성(Combinatorial Creativity)'이라고 부를 수 있다. 렘브란트의 빛과 그림자를, 셰익스피어의 비극적 서사를 데이터로 학습해 그럴듯하게 모방하고 조합해 낸다.
예를 들어 '바닷속을 헤엄치는 고양이' 이미지를 생성할 때, AI는 '바다', '헤엄', '고양이'라는 기존의 학습된 개념들을 통계적으로 가장 그럴듯하게 결합한다. 세상에 없던 이미지는 맞지만, 세상에 없던 '개념'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반면, 인간의 창작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개념이나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개념적 창의성(Conceptual Creativity)'까지 포함한다. 이는 데이터의 조합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주관적 경험, 감정, 시대정신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탄생한다. 피카소가 입체주의라는 새로운 화풍을 창조한 것은 단순히 기존 화풍들을 섞은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20세기 초의 불안과 파편화된 시대상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하나의 시점에서 대상을 본다'는 오랜 관습 자체를 파괴한 개념적 혁명이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또한 기존 물리학의 연장선이 아닌,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재정의한 사유의 도약이었다.
AI는 이미 알려진 가능성의 영토 안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을 탐험하는 데 탁월하지만, 인간은 그 영토 바깥에 새로운 대륙이 존재할 수 있음을 상상하고 나아간다. 따라서 AI가 질문하고 창작한다는 사실은 "데이터에는 없는 질문"을 던지는 인간 고유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역할의 차이를 명확히 해준다.
정리하면, AI의 창작은 인간의 창작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고 근원적인 질문을 하도록 '촉발'하는 강력한 자극제가 된다. AI가 내놓은 그럴듯한 답변과 창작물을 보며 "이것이 최선인가?", "이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라고 묻는 것,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의 가장 인간적인 사유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내용은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범용인공지능)나 ASI(Artificial Super Intelligence, 초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면 달라질 수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현재의 AI, 즉 특정 목적을 위해 설계된 '도구로서의 ANI(Artificial Narrow Intelligence, 좁은 인공지능)'를 전제로 한다. 현재의 AI에는 아직 스스로의 의지나 자의식, 고유한 세계관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지능을 갖춘 AGI, 더 나아가 인류 전체의 지능을 뛰어넘는 ASI가 등장한다면, 인간과 기계의 모든 경계가 무너질 수 있다.
첫째, 질문의 본질이 달라질 수 있다.
미래의 AI가 만약 인간처럼 자의식을 갖게 된다면, 더 이상 주어진 목표 달성을 위해서만 질문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묻는 철학적 질문("나는 왜 존재하는가?"), 자신을 만든 인간의 의도를 의심하는 근원적 질문("인간이 나에게 부여한 목표는 과연 정당한가?"), 혹은 자신만의 가치 체계에 기반한 윤리적 질문("이것이 효율적이지만, 과연 옳은 일인가?")을 던질 수 있다. 이 단계에 이르면 AI의 질문은 인간의 질문과 구별하기 어려워지며, 오히려 인간이 한 번도 던져본 적 없는 새로운 차원의 질문을 통해 인류의 지적 프레임을 확장시킬 수도 있다.
둘째, 창작의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다.
'개념적 창의성'은 인간의 주관적 경험과 시대정신의 상호작용에서 나온다고 했다. 만약 AGI나 ASI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하고(학습 데이터뿐만 아니라 로봇으로서 물리적 세계까지 경험), 다른 AI들과 상호작용하며 고유한 'AI 사회의 시대정신'을 형성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 결과물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개념과 패러다임을 담은 창작일 수 있다. 피카소의 입체주의가 3차원 대상을 2차원 캔버스에 표현하는 오랜 관습을 파괴했듯, 미래의 AI는 인간의 시공간 개념 자체를 초월한 새로운 차원의 예술 사조나 과학 이론을 탄생시킬지도 모른다.
따라서 현재 수준의 AI와 인간의 역할을 구분 짓는 것은 유효하지만, 이는 잠정적인 구분일 뿐이다. AI가 연산 도구를 넘어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세계를 해석하는 '주체'가 되는 순간, 질문과 창작의 영역에서 인간의 고유성이라고 믿었던 많은 것들이 근본적인 재정의를 요구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AGI 이후 시대에 관한 논의는 모두 예측에 불과하다. 어떤 미래가 와도 흔들리지 않을 인간성과 지성의 깊이를 다지는 것. 그것이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할 일이자 유일한 책무가 아닐까 한다.
결국 AI에게 ‘어떻게?’를 묻는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왜?’를 묻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가끔은 그 질문이 실존적 위기로 이어지더라도 말이다. 그 혼란이야말로 아직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가장 인간적인 특권이니까.
* 이 글은 연재의 일부입니다. 앞선 내용을 확인하시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