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리여 Nov 14. 2024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4

놀이 훼방꾼

'장독대와 어린아이는 얼지 않는다'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손이 트도록 놀아야 건강하게 잘 큰대이"

겨울이 되면 찬바람이 쌩쌩 불고, 땅바닥이 얼어붙는 것처럼 차가워도 아이들은 놀이를 쉬지 않는다

그런 애들을 보고 엄마는 "배 꺼진다" 하신다


가을걷이하고 논에 고여있던 물이 얼면, 아이들의 시간이 온다

앉을 만큼 크기의 나무판자를 사각형으로 만들어 굵은 철사를 바퀴 되는 부분에 박아 넣어서 썰매를 만든다

여유가 있는 집안 아이들은 칼날로 된 썰매를 탄다

굵은 나무에 송곳을 박아 양손에 잡고 콕콕 찍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서로 먼저 가겠다고 야단법석이다

"와아 내가 제일 빨라"

썰매가 씽씽 지나는 옆에선 애들이 긴 줄로 팽이치기 삼매경에 빠져있다

뱅글뱅글 도는 팽이는 휘청휘청 대면서도 넘어지지 않고 잘도 돌아간다


바람 부는 날엔 방패연, 꼬리연이 하늘을 수놓고 아이들은 연줄 끊기 내기를 한다

저마다 끊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끊긴 꼬리연이 하염없이 하늘 저 멀리 날아가면

"어~어 내 연~~"

연줄이 끊긴 아이는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한숨을 쉰다

"니가 졌으니까 내일 연줄 내 거도 감아서 와"

힘없이 "그래" 한다

연도 잃고 실타래 감을 생각에 어깨가 축 처진다

이번에는 좀 더 센 방패연을 만드리라 다짐한다 '엄마한테 밀가루풀 쒀 달라고 해야지!'


구덩이를 큰 대접 크기 정도로 파서 구슬을 던져서 넣는 구슬치기도 아이들에겐 인기다

서로 예쁜 구슬을 따기 위해서 온 신경을 집중하고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눈이 빛난다.

신비한 빛깔의 구슬이 부딪치는 소리가 아이들의 마음을 널뛰게 한다

"제일 예쁜 거 내가 따서 가져야지"

구슬이 빛을 받아 영롱하게 반짝인다


어린 여자아이들이 검정고무줄을 길게 늘어뜨려 양쪽에서 잡고,

한 아이가 줄 옆에 서서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

노래에 맞춰 이쪽저쪽 넘나들며 줄을 타는 발재간이 마치 춤을 추듯 한다

웬만해선 멈출 거 같지 않게 나풀나풀 잘도 뛴다


넓적한 돌을 5발짝쯤 겅중겅중 거리를 재어서 세워두고, 선을 그은 자리에 서서 돌을 가슴 위에 올려 허리를 살짝 뒤로 젖혀 돌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 걸으며 세워 둔 돌 앞에서 살짝 떨어뜨려 세워 둔 돌을 쓰러뜨리는 비석 치기도 아이들의 으뜸 놀이다


공기놀이, 땅따먹기, 자치기, 제기차기, 술래잡기, 고무공치기 놀이, 기타 등등

아이들의 놀이는 무궁무진하다

자연과 더불어 놀면서 자란다



여느 애들이 이렇게 삼삼오오 신나게 놀고 있으면 어김없이 그 아이가 나타난다

고무줄을 끊고 줄행랑을 친다

"야 거기 서~어~"

어찌나 날쌘지 잡을 수가 없다

여자애들이 이내 포기하고 고무줄을 묶어서 다시 신나게 뛰놀면 그 아이는 맥이 빠져 다른 먹잇감을 찾는다


비석 치는 아이들의 돌을 발로 차고 냅다 도망간다

사내애들이 쫓아가다가 이내 포기한다

빨라서 못 잡을 걸 안다

"누가 망봐 그 아이 오면 잡아야 돼"

"내가 볼게" 하고

돌아가며 번을 서고 논다

그 아이는 또 맥이 빠진다


오늘도 잡으려고 쫓아오는 애들이 없다

이번에는 구슬치기 하는 곳에 가서

구덩이에 구슬을 한 움큼 잡고 냅다 도망간다

"야 거기 서"

이번에는 끝까지 쫓아온다

못 이기는 척 속도를 늦춘다

"잡았다아~"

"너 왜 자꾸 훼방이야"

"같이 놀고 싶어서"

"그럼 말하면 되지 왜 심술부려"

"친구가 되는 게 뭔지 몰라서 그랬어"

"그냥 놀자 하면 돼"

"몰랐어"

순수한 아이들은 단순하게 생각할 뿐이다



그 아이는 부모님의 사정이 있어서 동네에서 벗어난 산속의 작은 암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방법을 모른다

"이제 우리가 같이 놀아줄 테니 훼방 놓지 마"

"참말로?"

"그러엄 난 거짓말 안 해"

"근데 넌 왜 이렇게 뜀박질이 빨라?"

"산에서 놀 때 맨날 뛰어서 그래"

"가끔 멧돼지나 뱀이 보이면 도망가느라 뛰다 보니 빨라졌어"

"딱지치기할래?"

"응 좋아~연날기도 해보고 싶어"

아이는 어느 누구보다 밝은 표정으로 펄쩍펄쩍 뛴다


야트막한 울타리가 아름다운 골목에서..

넓게 펼쳐진 논바닥에서..

마을 뒷동산에서..

여기에도 저기에도 아이들이 있다

오늘도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놀이에 빠진 아이들의 조잘대는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진다


아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지치는 줄 모르고 신나게 뛰어놀았다

그 무엇도 부러울 게 없는 표정이다




#놀이훼방꾼

#그아이는어디있을까

#글쓰기




이전 03화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