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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여 Oct 31. 2024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2

장터

윗마을에서 아랫마을 사이를 개천이 혈관처럼 유유히 흐르지


장터에 하나밖에 없는 약국엔 후덕게 생긴 약사님이 수년 동안 자리 잡고 있고,

엿 만드는 공장도 개천가에 자리 잡고 있어

엿 공장으로 건너가는 작은 다리 밑엔 빨래터가 있고, 물이 모여 웅덩이가 생 곳엔 미꾸라지가 바글바글했지 돌멩이마다 거머리는 어찌나 많은지 빨래하러 왔다가 안 물려본 사람이 없을 정도였지

찰거머리는 수건으로 잡아서 당겨야 겨우 떼어낼 수 있었어

고약한 놈이다. 피가 줄줄 흐르지만 이내 곧 멈추지


옥진이 엄마가 운영한다고 '옥진이네'라고 하는 구멍가게에선 생필품과 먹거리를 판매하지

이른 아침 두부공장에서 배달된 두부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면 침이 절로 넘어갔어

호미와 칼, 그 외 농기구들을 만드는 대장간에선 시뻘건 쇳덩이를 담금질하고,

연신 챙챙 쳐대는 아저씨의 온몸이 땀범벅이지

작은 의원에는 머리가 하얀 의사 선생님이 안경너머로 환자를 관찰하며 진료를 하신다

장터에만 있는 의원은 장날만 되면 환자들이 몰려와서 문 앞이 왁자지껄하지

양장점에는 솜씨 좋은 아주머니가 어떤 옷이든 맵씨나게 수선하시고, 몸에 딱맞게 옷도 잘 만드신다 인상 좋던 아주머니는 목욕탕에 들어가시다가 쓰러져서 돌아가셨다 저혈압이 있었다고 한다

더 이상 아주머니의 재봉틀 소리가 나지 않고,

그 자리엔 신발점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지


철물점 아저씨는 말수가 적고 키가 크고 깡마른 사람이지 잘 돌아다니지도 않고 집에만 계신다

그런 아저씨가 술만 드시면 완전히 딴 사람이 되곤하지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욕을 하신다 아저씨의 딸은 그런 아버지가 무서워 대문 앞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고, 새엄마도 지지 않고 악악 거리신다

밤새도록 아수라장이다

그랬던 집이 이튿날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요하다 못해 적막감만이 감돈다

어쩌다 한번 집안을 뒤집어놓는 아저씨가 참 이상하다

사람들이 수군거린다 귀신 들렸다고..


소면을 뽑아서 주욱 걸어서 말리는 국숫집에는 억척스럽고 덩치가 크고 어찌 보면 남자같이 생기신 아주머니가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신다

반면 아저씨는 훤칠하시

다만 생활력이 부족하고 몸이 허약해서 어쩌다 가끔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닐 뿐 게으르기 그지없다


엄마가 애들만 두고 나가서 홀아비 혼자 남매를 키우는 장의사도 있다

아저씨는 말을 거의 하지 않으신다

고독함이 어깨를 누르고 늘 남매에겐 무심했다

남매는 그런 아버지가 자기들을 버릴까 봐 불안해했다

가게 옆에서 꾀죄죄한 남매는 아버지의 대패질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주변에서 잘도 논다


장터엔 여기저기서 온 뜨내기들이 많아서 시골의 정스런 모습을 찾기는 힘들다

다만 열심히 장사하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쳐나는 곳이다

없는 거 빼고 다 있다



야트막한 산이 동네를 포근히 감싸고, 5일에 한 번 장돌뱅이들이 주축이 되어 장이 선다

기둥을 세워서 지붕만 올려놓은 장터엔 칸칸이 저마다의 자리가 있어서 가마니를 둘둘 말아서 세워 두고,

장이 설 때마다 펼쳐서 물건들을 진열해서 판다

"떨이 떨이"

야채 파는 아줌마의 우렁찬 목소리에 지나가는 똥개가 놀라서 왈왈!! 짖는다


"골라 골라"

장단 치는 옷 가게 아저씨는 흥이 넘친다

"입으면 10년은 젊어 보여 안 사면 손해여"

그에 질세라 옆에선 엿장수 아저씨가 엿가락을 치면서 가위로 장단 맞추는 게 예사 음감이 아니다

"어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저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엿장수가 잊지도 못하고 또 왔네~ 어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장터엔 거지도 많다

장이 파하고 둘둘 말아둔 가마니를 밤새도록 거지들은 이부자리로 활용한다

아침 일찍 가마니를 어깨에 두르고 동냥을 다니는 걸인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찬밥 한 덩이만 주소~ 이 거지 불쌍히 여겨 조금만이라도 주소"

먼동이 트기도전에 그들은 부지런히 움직인다

부지런한데 왜 거지로 사는지는 도통 모를 일이었다


장이 서는 날엔 약장수 아저씨가 약을 팔기 위해 작은북을 치는 원숭이를 데리고 온다

사람들이 빙 둘러서 모여들면 차력사들이 쇼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우고 약을 판다

"단돈 십 원! 이 약 한번 잡숴 봐~ 회충이 쑤욱 빠져"

약장수는 언변이 좋아서 사람들을 홀리는 데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터였다

원숭이는 약장수의 신호에 따라 바구니를 들고 사람들 앞을 지나가면 사람들은 거기에 동전을 툭 던진다


어쩌다 한 번씩 천막극장도 온다

어둑어둑해지면 요란하고 흥겨운 음악을 틀어놓고, 온 동네 사람들에게 마이크로 홍보를 한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녀 눈물 없인 볼 수 없어"

영화 한번 보겠다고 천막 밑으로 기어들어가려고 숨어서 기회를 노리는 애들이 있다

그런 애들을 잡으려고 암행 나온 선생님은 눈에 불을 켜고 지킨다

거의 다 들어갈 때쯤 끌려 나오는 애들이 대부분이라 성공하는 애들은 몇 명 없다

영화를 본 애들은 다음 날 학교에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깔깔거린다



그 장터를 둘러싸고 집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대부분이 가게를 하는 집이다

집은 보통 가정집과는 달랐다

점방에는 물건들은 진열해 두고, 장이 서지 않는 날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팔았다

점방 뒤로 작은 방이 있어 거기에 가족들이 쓰는 방이 있다


그 아이도 점방 딸린 집에서 살았다

아이의 부모님은 숟가락 한 세트만 가지고 신접살림을 꾸몄다고 한다

엄마는 살 길이 막막하여 리어카에 과일과 야채를 싣고 다니면서 장터 한켠에 장사를 시작하셨다고 한다

그 아이에겐 남동생이 한 명 있다

용한 점쟁이가 애를 집안에서 낳으면 앞길에 안 좋다고 밖에서 낳아서 집에 들어가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집 앞 마루에서 애를 받아서 힘들어서 엉금엉금 기어서 들어가셨다고 한다


이른 새벽 이상한 소리에 잠이 깬 아이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에 이불을 돌돌 말아서 눕혀놓은 머리가 길쭉한 갓난아기를 봤다

"엄마 이 애기 어디서 났어? 머리가 이상해"

"주워왔다 니 동생이다! 머리는 눌려서 그래 크면 괜찮아 질기다"

"의원 좀 불러온나"

엄마는 힘겹게 아이에게 얘기하셨다


이른 새벽에 눈을 비비며 안개가 자욱한 적막한 의원 집 마당에 들어서서 모기만한 소리로 의원을 불렀다

"엄마가 우리 집에 오래요 아기를 주워왔대요"

인기척이 없는 마당에 한참을 아이는 쭈뼛쭈뼛 있다가 그냥 집에 왔다

집에 오니 이웃집 아지매가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물을 데워서 아기를 씻기고 계셨다

"니 인제 왔나 의원은 뭐라 카드노 온다카나?"

"문을 안 열어줘서 혼자 왔어요"

"아이구마 내가 가 봐야겠네"


깨끗하게 씻겨놓은 아기에게선 젖냄새가 났다

쌔근쌔근 잠든 아기를 보니 조그맣고 신기했다

그 아인 동생이 생긴 게 좋았다

점방 앞 마루에서 낳아서 데리고 들어왔다고 '마루'라고 불린 남동생은 참 순한 아이였다

바쁜 엄마를 대신해서 아이가 거의 돌봤다.

아이는 마루를 세상 누구보다도 예뻐했다. 태어나서 처음 본 작은 아기다


친구들이 놀자고 부르면 아이는 아기를 재우고 나가다가 돌아서서 문구멍 사이로 깼나 안 깼나 보고,

또 한 발짝 가다가 다시 들여다보고 아기가 확실히 잠든 걸 확인하고서야 친구들과 놀았다

잠잘 때도 그 작은 손을 꼬옥 잡고 잤다

"자장자장 우리 아기~ 자장자장 잘도 잔다"

밤은 깊어가고, 멀리서 가끔 '컹컹!'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어느 사인엔가 까무룩이 아이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이 현실처럼 느껴져서 자다 말고 화들짝 놀라며 '엉엉' 목놓아 운다

엄마는 아이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키가 크려고 그러나" 속삭이신다

그러면 뚝 그치고 또다시 스르르르 꿈속으로 빠져든다


단칸방에 온 가족이 얽히고설켜서 잠을 자도 아인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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