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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여 Nov 07. 2024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3

고래등 같은 기와집

실개천을 징검다리 밟고 겅중겅중 건넌다

두 갈래의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왼쪽은 음산하고 숲이 우거지고 습한 곳이라

호랑이가 늘 숨어서 기다린다는 전설이 있어서 등골이 오싹하다

오른쪽으로 꺾어서 오르락내리락 20여 분을 가면 작은 동네가 나온다


이 동네로 들어오는 또 다른 길이 하나 더 있다.

그 길 초입에는 커다란 나무가 있는데 옛날에 호되게 시집살이하던 며느리가 목메서 죽은 나무라 밤마다 귀신이 나온다는 길이다

그 길은 심한 내리막이라 사람이 다치는 일도 허다하다

원한을 품고 죽은 며느리가 심술이 나서 한 번씩 사람들을 골탕 먹인다고도 한다

물론 믿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그 길로 다니는 걸 꺼린다

그 길 안쪽에는 동네 상여를 모셔놓은 곳이 있어서 등골이 오싹한 서늘함에 해가 지면 왕래하기를 더욱더 꺼린다 이상하게도 그 나무엔 항상 하얀 비닐이 걸려있다

바람이 불면 펄럭펄럭 날려서 더 을씨년스럽다

밤에 그 비닐을 보면 정말로 귀신이 흔들흔들 손짓하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동네는 김 씨 집성촌이다

동네에서 가장 터가 좋아 보이는 곳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있는데 그 아이의 집이다

마당으로 들어서면 방이 여러 채 있고 이방 저 방을 연결해 주는 반질반질한 툇마루가 길게 놓여있다

어찌나 닦았는지 빛이 반사되어 반짝일 정도로 윤이 난다

마당엔 커다란 향나무가 멋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아버지가 출세해서 잘 산다고 하는데 뭘 하시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저 큰 사업을 하여 돈을 잘 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추석이 되면 마당에 솥뚜껑을 걸쳐 놓고 전을 부치고 음식을 한다

송편을 만들어서 찌기 위한 솥단지에는 물이 끓고 있다

아이는 아침 일찍 일어나 형들과 앞산에 올라가서 여린 소나무잎을 따온다

송편 찔 때 켜켜이 깔 거라서 깨끗한 것으로 신중히 골라서 따오는 게 아이의 임무이다

명절엔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고 음식은 온 동네사람들에게 나눠줄 정도로 푸짐했다

그날은 지나가는 거지에게도 넉넉하게 음식을 주었으니 굶는 사람은 없었으리라


아버지보다는 그 아이 엄마가 더 많이 알려졌다

호리호리한 키에 머리를 깔끔하게 빗어 말아 올리고 항상 단정하게 하고 계셔서 흐트러진 자태를 본 적이 없다

시골 동네에서는 보기 드물게 곱게 생기신 엄마는 늘 홈드레스를 입고 계셨다

그 시절 시골에서 그런 분을 보기란 쉬운 게 아니다

아이가 친구를 데리고 오면 도넛을 만들어 주시곤 했다  다른 아이들 집에선 기껏해야 감자 삶은 거나 개떡을 내어 준다 그나마도 못 먹는 애들이 태반인 빡빡한 시골살림들이 대부분이니 꿈도 꿀 수 없었다

시골에서 도넛을 구경하리라곤 생각해 본 적도 없었을 터

도넛을 간식으로 해주시는 분도 그 아이 엄마밖에 없었다


그 아이는 조용한 성격인지라 거친 사내애들하곤 잘 안 어울렸다

그나마 그런 사내애들도 몇 없고 거의 형들이었다

얼굴이 뽀얗고 말끔하게 생긴 그 아이는 누가 봐도 부잣집 아들처럼 보였다



유일하게 같이 노는 소꿉친구가 있다

그 동네에서 20여 분 거리에 사는 선이라는 아이랑 곧잘 놀았다

선이는 몸이 허약해서 늘 아파 보였다

그래도 그 아이와 놀 때는 여느 아이들처럼 기운이 펄펄 나는 듯 신나게 놀았다

동네 뒷산에 올라 같이 진달래도 따먹고 소리도 질러보고 내일은 다시 안 놀 것처럼 즐겁게 논다

그 아이는 가끔 선이의 입술이 파리해지면 겁이 났다

"뛰지 마 아~"

"괜찮아 건강해지려면 뛰어놀아야 된대"

"실개천에 자라 보러 가자"

"물리면 아프다고 엄마가 잡지 말라 캤어"

"보기만 하자 빨라서 못 잡는대이"

"가보자~자라가 물가에 올라와 있으면 좋겠다"

물이 조금 깊은 곳에선 작은 고기가 펄쩍펄쩍 튀어 오르는데 빛을 받아 반짝인다

별들이 반짝이듯 여기저기서 튀어 올라 예쁘다

물결은 왁자지껄 떠드는 듯 산산이 흩어진다


어둑어둑해지면 집집마다 굴뚝에선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난다

"명식아 밥 먹으러 온내이~ 근수야 밥 먹으래이~"

"좀만 더 놀고 갈게요"

"늦게 오면 밥 안 준대이~"

"마카 다 들어가래이"

이 집 저 집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부르느라 야단법석이다

그 아이는 서둘러 집에 와서 엄마가 언성 높여 부를 일이 없다

그 아이 엄마가 큰소리를 내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평화로운 시골의 정경이 아이를 행복하게 했다

사람들은 그런 아이 엄마를 보고 쑥덕쑥덕한다

"아이고 양반댁 마나님은 뭐가 달라도 달라"



소쩍새가 소쩍소쩍 울던 즈음에

여느 때처럼 선이와 놀기 위해 나가던 아이를 아버지가 불러 세운다

"얼른 타라 급히 가야 한다"

그 아이 집엔 그 시절 정말 보기 드물게 승용차가 있었다

그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하얀 승용차에 올라타고 길을 나섰다

동구 밖을 지나며 흙먼지가 날리는데 선이는 폴짝폴짝 그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문득 뒤돌아보던 선이가 그 아이를 발견했는지 뭐라 뭐라 하는데 들리지 않는다


선이가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뽀얀 흙먼지가 일어서 더는 보이지도 않는다


"어디 가아~?"

선이의 물음이 차소리에 묻힌다

선이는 이유는 모르겠는데 괜히 슬퍼지고 눈물이 흘렀다




"아버지가 일 때문에 이사를 가야 한단다"

"어디로 가요?"

"서울로 간단다"

멀어지는 선이를 보며 작별 인사도 못하고 떠나는 게 서운해서 눈물을 질금질금 훔쳤다


야속한 자동차는 그 아이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굽이굽이 산길을 하염없이 돌아간다

서울이 어딘지 가늠도 안되지만 소꿉친구 선이를 이제 다시는 못 볼 것이란 걸 알았다


선이와 실개천에서 첨벙첨벙 물놀이하고 둘이 신나게 뛰놀던 뒷산이 벌써 그리워진다



#고래등같은기와집

#그아이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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