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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여 Nov 21. 2024

그 아이는 어디 갔을까 5

산양


15정도의 각도로  단단하고 매끈하게 휘어진 뿔, 가지런한 수염, 무얼 보는지 알 수 없는 회색빛이 감도는 눈빛,

털에 윤기가 좔좔 흐르고 등짝이 곧고 평평한 게 위풍당당 잘생긴 산양이다

이 동네에서 산양은 딱 두 집이 키운다

최 씨 영감네 산양은 숫놈이고

그 아이네와 비교하면 자태부터 차이 난다

관리가 잘 안 됐는지 털은 거칠고, 수염은 두 쪽으로 벌어진 볼품없는 녀석이다

반면에 그 아이네 산양은 인근 동네에서도 소문난 멋진 녀석이다


아이는 산양을 지극정성으로 돌본다

산양이 먹기 좋은 풀이 많이 자란 곳에 아침 일찍 데리고 가서 줄을 길게 늘어 뜨리고 행동반경을 넓게 쓰게 한 후 말뚝으로 줄을 고정해 둔다

산양은 하루 종일 풀을 뜯어먹으면서 줄이 허락하는 길이까지 자유롭게 노닌다


산양유가 소주병으로 일곱 병 정도 나온다

이렇게 많이 나오는 건 그 아이가 잘 돌보기 때문이리라


산양은 산양유를 짤 수 있는 권한을  사람에게만 준다

아이와 그 아이 엄마

"엄마~ 산양이 나랑 엄마만 좋아해"

"밥 먹여주고 이뻐하는 사람을 아는 게지"

다른 사람이 산양유를 짤라 치면 뒷발로 대차게 차기 때문에 위험하다

산양유를 짤 때는 기술이 필요하다

새끼손가락부터 한 손가락씩 천천히 순차적으로 접으면서 포시 주먹 쥐듯 잡고, 밑으로 살짝 당기면 산양유가 쭈욱 나온다

뽀얗고 살짝 김이 오르는 듯하더니 이내 시원스레 나오면서 양동이에 부딪히며 촥촥 소리를 내며 고인다.


산양유를 끓이면 얇게 막이 끼는데 그걸 걷어내고 소금을 조금 타서 먹으면 고소하고 영양이 좋다

맛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배앓이하는 사람이 먹어도 아무 문제없다


동네 사람들은 서로 자기한테 산양유를 팔라고 한다. 

그 아이 엄마는 몇몇 집에 팔고, 한 병은 애들에게 먹이신다

그 아이 집에서 산양은 여러모로 소중한 존재다


아이에게 산양은 둘도 없는 친구고 가족이다

새끼를 낳으면 하루 종일 놀아주고 돌본다. 까불이 새끼양과 팔짝팔짝 뛰노는 모습이 정겹다

"메에 메에"

새끼양이 앞장서서 팔짝팔짝 뛴다

"같이 가"

아이도 뛰고 새끼양도 뛰고 어미 산양은 질겅질겅 되새김질하며 앉아서 보고 있다


어느 날인가 풀을 먹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새끼가 재래식 화장실 똥통에 빠진 적이 있다

그 아이는 새끼양의 귀를 잡고 기를 쓰고 꺼냈다

"안돼 가만히 있어 더 빠지면 죽어"

아이는 엉엉 울면서 겨우 새끼양을 잡아 올렸다


새끼양이 죽을까 봐 집에 와서 계속 씻겼다

"큰일이다 똥독 오르면 죽는단다"

냄새가 잘 빠지진 않는다

어른들은 아이가 빨리 꺼내서 다행히 똥독이 오르진

않은듯하다고 하신다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쉬고 털썩 주저앉는다

새끼양이 애처롭게 운다

어미양도 옆에서 같이 운다

"메에에 메에에 에"

그 아이도 덩달아 운다


어느 날인가 그 아이가 많이 아팠다

열이 많이 나서 잠이 들었다가, 화들짝 놀라서 일어났다

산양을 데리러 가야 한다

해거름이 다 되어서야 산양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바닥은 어제 온 비로 인해 질퍽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빨리 데리고 가려고 줄을 잡아끈다

어찌 된 일인지 산양이 꿈도 안 한다

맘이 초조해진 아이는 산양의 얼굴을 쓰담쓰담한다

"늦게 와서 화났어? 빨리 가자 더 어두워지기 전에"

산양은 앞발을 굽히고 발을 내리면서 등짝을 아이에게 들이민다

"타라고?"

아이가 눈이 휘둥그레진다

"안돼 너 힘들어"

그래도 꿈쩍하지 않는다

"그럼 올라탄다 힘들면 서야 돼"

아이는 어깨를 낮추고 산양의 목을 끌어안는다

그제야 산양이 아이를 태우고 천천히 집으로 향한다

"아이고 어두운데 고생했네! 기특하다 네가 아픈 줄 알고 태우고 왔네"

일갔다가 늦게 들어오신 엄마 아빠가 그 모습을 보고 신기해하신다



그 아이네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서 할 수 없이 산양을 팔기로 했다

눈물을 머금고 파시는 엄마도 애처롭고

슬픈 눈을 한 산양도 가엽다

정든 그 아이와의 이별을 아는 듯하다

산양은 10리 밖의 동네로 맘씨 좋아 보이는 아저씨가 비싼 값에 사 갔다

그 아이가 없는 틈에 산양을 데리고 갔다

뒤늦게 산양이 팔려간 사실을 알게 된 아이는 밤새 이불속에서 울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밖에서 산양 소리가 난다

"어 팔려갔는데? 왜 산양 울음소리가 들리지"

아이가 의아해서 문을 열었다

밖에 그토록 보고 싶던 산양이 서 있었다

아이는 반가움에 뛰쳐나가서 목을 끌어안았다

"보고 싶었어"


어른들이 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고 며칠을 먹지도 않고 있더구먼"

"줄을 잘근잘근 씹어서 끊었지 뭐야"

"밤새 십리길을 걸어서 집을 찾아온 모양이네"

"어메 영특하네"

"내 돈은 안 받으려오 잘 키우소"

"영물이네 영물이여"

그러 아저씨가 양을 한번 보시더니 "잘 살거라" 하고 그냥 돌아가셨다

아이와 산양은 부둥켜안고 울다 웃다 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산양은 자기랑 똑같은 새끼를 또 낳았다

아이는 추운 날 새끼를 부둥켜안고, 아궁이 앞에서 웅크리고 앉아 한참 동안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산양은 그런 아이 옆에서 되새김질을 하고 있다

장작불이 빨갛게 투덕투덕 타오른다


그해 겨울은 몹시도 추웠다

아무리 감싸도 매서운 바람은 아랑곳없이 주변을 꽁꽁 얼렸다

아이는 새끼가 걱정되어 바람이 새어 들어가지 않게 짚과 이불로 감싸고 또 감싸 두었다

그런 아이의 정성도 어쩌지 못했다


방에 있는 사람도 추워서 발발 떠는 추위에 견디지 못하고, 밤새 새끼양이 얼어 죽었다


산양은 죽은 새끼를 핥고 있고

아이는 서러움에 꺼이꺼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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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아이는어디있을까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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