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곱슬머리 까무잡잡한 피부
웃으면 반달이 되는 작은 눈
활짝 웃으면 유난히 치아가 하얗게 빛났다
언제나 웃는 얼굴에 장난기가 넘쳐흐른다
그 아이는 15리쯤 되는 길을 지치지도 않고
걸어서 학교 올 만큼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다
"손바닥 펴봐 선물 줄게"
"뭔데?"
"이거야"
"으악~~ 이게 뭐로 이 문디야~"
냅다 도망치는 그 아이의 뒤통수를 노려본다
손바닥을 펼치니 청개구리가 팔짝 뛰어내린다
"너 또 이러면 가만 안둔대이"
"헤헤 장난인데 뭘 그러노 화내지 마라카이~"
그러고 웃으면 하얀 치아가 반짝인다
밉지 않은 장난꾸러기다
"이거 먹을래?"
입안에 뭔가를 넣고 질겅질겅 씹는다
어제 학교 끝나고 집에 가면서 캐서 온 거라고 한다
"칠기는 계속 씹으면 단맛이 난대이"
맛도 없는 칠기를 껌처럼 맛있게도 씹다가 뱉는다
나무토막 같은 칡을 캐서 들고 와서 애들에게도 먹으라고 권한다
항상 활기차고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웬일인지 오늘은 교실이 너무 조용하다
늘 시끌시끌하던 개구쟁이 그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선생님은 그 아이가 아파서 며칠 학교 못 나온다고 하셨다
친구들이 걱정한다. 왁자지껄하던 교실이 왠지 적막하고 허전한듯하다
그렇게 그 아이는 며칠 동안 결석했다
"얘들아 식이 엄마가 식이가 너희들이 보고 싶다고 집에 놀러 와 줄 수 있냐고 한다"
그러시면서 친하게 지내던 몇 명의 친구들을 호명한다
"학교 끝나고 갈게요. 갈 사람은 이따 운동장에 모이래이" 친구들이 대답한다
6명 정도의 친구들이 길을 나선다
그 아이네 집 가는 길은 동네 하나를 지나고 긴 개여울을 따라가다가 야트막한 산이 나오면 거길 넘어서 굽이굽이 걸어가다 보면 작은 동네가 나온다
그 아이네 집은 산 바로 밑이라 언덕을 조금 더 올라가야 한다
친구들이 집 앞마당에 들어서며 저마다 그 아이를 부른다. "식아~"
엄마가 문을 열어주신다
"아이고 니들 왔나 이 먼 데까지 오니라고 애 먹었대이 얼른 들어온나"
"식아 니 친구들 왔대이"
방안에 들어서니 그 아이가 흰 치아를 빛내며 환하게 웃으며 힘겹게 앉는다
반갑게 웃긴 하는데 뭔지 낯설다
늘 밝던 그 아이의 웃음은 힘이 없고, 핏기 없는 입술에 눈동자만 까맣게 빛나고 있었다
"보고 싶었대이 보러 와줘서 고맙대이"
그 아이가 반갑게 친구들의 손을 잡는다
"니 와이리 말랐노"
어쩔 줄 몰라하던 친구들은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그 아이와 그동안 못다 나눈 이야기꽃을 피운다
오랜만에 집이 시끌시끌하고 웃음이 담장을 넘는다.
"니가 없으니 교실이 너무 조용하다 얼른 나온나"
"그래애 내 밥 마이 묵고 얼른 나아서 학교 갈게 나도 얼른 가고 싶대이"
아이들이 장난치며 오랜만에 크게 웃으며 조잘조잘 떠든다
시끄러운 소리에 마루 밑에 숨어 있던 고양이가 놀라서 후다닥 도망간다
그날이 그 아이와의 마지막 시간이었다
며칠 뒤 선생님은 그 아이가 하늘의 별이 됐다고 했다. 그 아이 엄마는 친구들이 온 그날 식이가 몹시 기뻐하고 떠났다고 하면서 장례는 치르지 않으니 오지 말라고 하셨다고 한다
친구들은 슬프고 놀라서 울다가 그 아이의 마지막을 보겠다고 그 먼 길을 나섰다
마당에 들어서는데 그 아이 형이 가마니로 둘둘 말아서 꽁꽁 묶은 기다란 걸 지게에 지고 나오신다
애들은 그냥 알았다 무엇인지..
형은 숨죽여 울면서 목이 메는 목소리로 말한다
"아이고 니들이 왜 와서 이 험한 꼴을 보노"
"어려서 죽어서 무덤도 안 만들낀데"
그 아이 엄마가 친구들 볼까 몰래 눈물을 훔치고
"식이는 잘 갔다 니들이 온 그날 저녁에 많이 웃었다 행복했다고.. 고맙대이"
친구들이 형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아이고 지가 왜 죽는지도 모르고 갔다 불쌍한 거 친구들이 이렇게 왔는데.."
그 아이 엄마의 애끓는 소리가 들린다
형이 지게 지고 산등성이를 올라가는 걸 하염없이 바라보며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 아이는 어린 나이에 백혈병으로 저 하늘의 별이 되었다
친구들의 가슴은 슬픔과 그리움으로 아려온다
눈웃음에 짓던 그 아이의 하얀 웃음은 어디에도 없고 추억만이 친구들 가슴 한편에 남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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