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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여 Dec 05. 2024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7

엉뚱해

'절대 어른이 되지 않겠어'

사뭇 진지한 표정이다

아이가 이런 결심을 할 만한 구실을 준 자매가 있다 자매가 사는 집은 높은 담벼락에 가려 집안이 아예 보이지가 않는다

시골 집들이 다소 개방적인 것에 비하면 그 집은 어쩌면 비밀스럽기까지 하다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는 데다 도통 안에서 뭘 하는지 알 수가 없지만, 가끔은 그 집 자매가 외출한다

자매는 다른 사람과 있으면 눈에 확 띈다

체구는 어린애처럼 작은데 얼굴이 유난히 크다

그런 자매를 보면서 아이는 어른이 되면 얼굴이 다 저렇게 크게 자랄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자매는 밖에 잘 나오지 않는다

사실 표정은 밝고 웃음 진 얼굴인데 애들의 관심이 싫었던 것일까 아니면 집안에서 일을 하는 것일까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르는 게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우게 된 건지도 모른다


그 아이 또한 온갖 상상을 다한다

가령 밤이면 자매가 빨간 풍선을 타고 어디론가 날아갔다가 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얼굴만 클지도 모른다는 얼토당토 안 한 상상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동네에서 가장 큰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

빛을 받아 윤슬이 눈부시게 부서지면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해거름이 되면 나뭇잎을 타고 노는 아주 작은 사람들이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사람들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순수한 아이들 눈에는 보이기 때문에 착하게 살면 그들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때때로 그 호수에서 종일 기다리고 있기도 했다


아이 얘기를 친구들은 재미있게 듣는다

뭔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서일까

숨바꼭질하다가 아이들이 마룻바닥 밑에 숨으려고 하면 놀라서 손사래를 친다

그 밑으로 들어가면 다른 세상이 나온다고 극구 말린다 들어갈 수는 있지만 나오는 문을 몰라서 갇힌다며 아무도 못 들어가게 했다


또 어떤 날은 장롱 안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알지 못하는 어떤 세계로 통하는 통로라서 기다리면 열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한동안 웅크리고 있기도 한다

가끔 동네에서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 있으면 그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때로는 배낭을 멘 작은 고양이가 담을 넘나들며 아이들의 꿈을 담아서 배달한다는 상상을 한다

푸른 눈빛의 고양이는 가르랑 거리며 하늘로 높이 높이 올라간다고 한다 

마치 본 듯이 자세하게 이야기하니까 친구들은 그 아이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빠져든다



집에는 그 아이 엄마가 애지중지하는 라디오가 딱 하나 있는데 거기서 소리가 나오는 게 신기해서 뜯어보기도 한다 궁금한 건 알아봐야 직성이 풀린다 별다른 건 없어 보이는 부속품이 들어있는데, 소리가 나는 게 신기해서 한참을 보기도 한다

궁금해서 뜯긴 했는데 들키기 전에 얼른 조립해 둔다 언젠가는 다시 뜯어보리라 생각한다 어쩌면 저 안에 커다란 비밀이 있을지도 모른다 꼭 알아내야지 결심한다


그 아이네 집은 누에를 키우는데 한 번은 할머니가 누에를 먹으면 몸에 좋다 하시면서 입에 넣으셨다

아이는 깜짝 놀라서 진저리 치며 도망갔다

할머니가 어쩌면 우리 할머니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난 거다

할머니가 저런 걸 먹다니 있을 수 없어 구미호가 둔갑했을지도 몰라 혼자 오만가지 생각을 한다


"니 어디 가노 이거 봐라"할머니가 부른다

할머니의 부름에 주춤 멈추고 이내 궁금증이 생겨서 뒤돌아갔다

"할무이 이거 맛이 어때?"

"기가 막히게 맛있지 왜 먹어볼라카나?"

"먹어볼까요 으~ 근데 징그러버"

그러곤 한 마리를 잡아서 입을 크게 벌린다 자기가 이걸 먹어야 할머니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입안에 넣으려고 하는데 "아이고 안돼 먹지 마래이" 할머니가 다급하게 말리신다

"왜요 할무이"

"할미가 너 놀리려고 장난쳤대이"

애들 앞에선 찬물도 함부로 못 마신다고 할머니는 허허 웃으시며 고개를 저으셨다

다행이다 할머니는 구미호가 아니었어 아이는 안도한다


때로는 담벼락에 올라가서 잠자리를 잡아서 꼬리 끝에 실을 묶어 날려버리고 한참을 쳐다본다

언젠가는 자기도 저렇게 훨훨 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날은 나무 위에 올라가 동네 애들에게 나뭇잎을 떨어뜨려 나뭇잎 잡기 놀이를 한다

높은 곳에 올라가길 좋아하던 아이는 친구들에게 항상 즐거운 놀 거리를 만들어준다

아이의 눈은 항상 무언가를 바라보는 듯 빛이 났다

그 아이의 상상력은 재밌는 놀이로 이어져 아이들과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논다


동네 뒷산에 늑대가 산다고 어른들이 못 가게 하니까, 늑대를 보겠다고 친구들과 먹을 거를 싸서 몰래 올라가서 커다란 돌 뒤에 한참을 숨어서 기다렸다

지루해서 하품만 하다가 늑대는 못 보고 토끼똥만 잔뜩 보고 산을 내려왔다

진달래가 곱던 뒷산엔 그 아이와 친구들의 웃음만이 메아리칠 뿐, 늑대 울음은 한 번도 들린 적이 없다


엉뚱하지만 재미있던 그 아이는 친구들과 어린 날의 추억을 하나씩 하나씩 쌓았다



#그아이는어디있을까

#엉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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