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이 딱 트인 동네 중앙에 나지막한 담벼락에는 키 큰 해바라기가 해 바라기를 하고 있어
운동장 한편엔 세월을 가늠할 수 없는 은행나무가 황금빛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지
찬란한 5월! 온 동네잔치인 학교 운동회가 열린다
청군 백군 나누고,
애들의 든든한 지원군인 부모님은 천막을 치고 커다란 가마솥을 걸고 동네 구역을 나눠서 잔치를 벌이지
먹음직스러운 닭개장, 육개장 냄새와 맛있는 전 부치는 냄새가 잔칫날 분위기를 한껏 돋우지
운동장 한가운데 커다란 박을 걸어두고 콩주머니를 아이들이 힘껏 던진다
백군, 청군 나눠서 열심히 던지다 보면
어느새 팍! 터지고
알록달록 종이 눈이 날리면서 운동회의 개막을 알리지
탕!~
화약 냄새와 깜짝 놀랄 큰 총소리에 아이들이 움찔하면서 후다닥 내달린다
1등 한 아이는 손목에 1이라 새긴 도장을 받고 우쭐하게 앉아서 다음 달리는 애들을 여유롭게 보고 있어
1등 상품으로 노트를 받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한편에선 응원 열기에 조그만 시골 동네가 용광로 불길처럼 뜨겁지
어른들도 아이들과 같이 동심으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응원상도 받자 싶어 북을 둥둥둥 치고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른다
우리 팀 이겨라!!! 청군은 청군을 백군은 백군을 서로 지지 않으려고 응원에 열을 올린다
동네별로 편을 갈라서 운동장 중간에서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힘 좀 쓰는 분들은 다 참여한다
밀고 당기고 호흡을 맞춰 '으쌰' 하고 안간힘을 쓴다
한쪽에서 힘을 받고 확 당기니 상대팀이 우르르 무너진다
기쁨의 환성과 안타까운 탄성이 오간다. 열기가 조그만 동네를 달군다
"아이고 아깝다 이길 수 있었는데 아! 자네가 넘어지면서 중심을 잃었구먼"
넘어진 아저씨는 얼굴이 벌게져서 미안해하신다
운동회의 꽃은 유일무이한 밴드부다
20여 명의 아이들이 앞에서 지휘봉을 휘두르는 지휘자의 지시대로
일사불란하게 모양을 만들고 악기를 연주하면서 운동장을 한 바퀴 돈다
그 아이는 멜로디언을 연주한다
입으로 호스에 바람을 불면서 한 손으론 건반을 외운 악보대로 능숙하게 연주하지
큰 북 치는 아이는 맨 뒤에서 둥둥! 작은북을 치는 아이들의 양손 북채가 현란하게 움직이고
그렇게 한차례 연주가 끝나면 아이들의 무용이 운동장을 수놓는다
부채꽃이 운동장에 폈다 접혔다 하지
이토록 아름다운 아이들이 수놓는 찬란한 한순간이 새겨지지
선생님은 그 아이가 한 번도 무용을 한 적이 없는 걸 아시고, 운동회가 열리기 한 달 전에 연습을 시키셨다
"동이야~ 니도 함 해봐라 한복 입은 친구들 이쁘제? 부채는 또 얼마나 화려하노 그자?"
"한 번도 안 해봐서 자신이 없어요"
"니도 할 수 있대이 해보자"
그냥 밴드만 하고 싶은데 굳이 선생님이 시키시니까 내키지는 않지만, 고운 한복을 입고 부채를 들어본다
옆에 애들은 예쁘게 잘하는데 그 아이는 영 어색하니 뻣뻣하다
며칠을 연습해도 나아질 기색이 없다 아이는 잘 안되니까 재미도 없고 왜 해야 하는지 입이 댓 발로 나왔다
며칠 지켜보시던 선생님은 싱긋 웃으시며
"그래도 이쁜 거 한번 입어 봤으면 됐대이 운동회 꽃은 밴드부 아이겠나"
하시며 부채춤에서 해방시켜 주셨지
친구들이 예쁘게 부채춤을 추는 걸 보면서 아이는 더 신나게 연주했다
선생님이 만들어 주신 추억이 하나 더 생겼다
부채춤을 끝까지 추지는 못했지만 따뜻한 사랑은 내내 남아 있어
운동회의 열기가 풀풀 날리는 먼지와 함께 무르익어 갈 즈음에
운동회의 하이라이트 계주 달리기가 시작된다
이건 동네 자존심 싸움이기도 했다
엎치락뒤치락 이어 달리다가 긴장하여 바통을 놓치면 여기저기서 흥분해서 괴성이 오간다
"안돼 안돼 더 뛰어 아이고 우짜노 어어어"
"우리 팀 힘내라"
그러다가 정말 발 빠른 아이가 마지막 주자로 나선다
날쌔게 바통을 받고 총알처럼 튀어나가면서 내달린다
"와아~와아~ 앞지른다"
흥분해서 소리치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흰 끈을 휘리릭 날리면서 총성이 터진다
"역전이닷~~"
계주의 우승자는 어른들의 이쁨을 한껏 차지한다
먹을 것을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주신다
작은 영웅의 탄생이다 두고두고 어른들의 이야기에 출현할 예정이다
운동회의 마지막은 밴드부의 연주로 장식되지
아름답게 모양을 만들면서 큰북 작은북 치고,
아카디온, 멜로디언, 캐스터네츠, 트라이앵글..
여러 가지 악기가 조화롭게 연주되면서 어른들의 탄성과 박수를 한껏 받는다
"아이고마 최고대이 얼라들이 잘하네 하하하"
신이나신 부모님들은 얼씨구나 같이 춤을 추신다
그 아이는 연주 내내 우스꽝스럽게 부채춤을 추던 자신을 떠올려보니 웃음이 절로 났다
예쁜 한복을 입혀 주시던 선생님의 미소를 생각하니 마음이 간질간질 해진다
사랑이었어
제자를 향한 선생님의 한없는..
살랑살랑 바람이 불고 머릿결이 샤라락 휘날린다
고개 들어 바라본 하늘은 어찌나 푸르른지 구름은 또 왜 저렇게 몽글몽글할까
그저 벅차게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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