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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여 Dec 26. 2024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10

떨렸던 첫서리

푸르디푸른 숲 속에는 바람 한 점이 없고, 그나마 그늘이 있어 더위를 조금이나마 식혀주었다.

눈도 못 뜰 쨍쨍한 햇볕이 내리쬐고, 매미가 울어대면 정말이지 귀가 째지는 듯 웅웅거린다.

'여름이닷' 하고 소리 지르는 듯이 울어댄다.

'니가 소리 안 질러도 알아'  아이들은 그러든가 말든가 신이 난다.

더우니까 여름 내도록 개울에서 떠날 줄을 모르고, 첨벙첨벙 물놀이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뽕나무가 많은 물가에는 아이들이 항상 바글바글하다. 까맣게 그을린 애들이 신이 나게 놀고 있다.

놀다가 배고프면 오디를 따먹고 보라색입술로 깔깔 웃으면 그보다 더 기괴한 표정을 보기 어려우리라


뽕나무를 심어 놓으신 아저씨가 멀리서 달려온다.

"이놈들아 그만 따 먹어 나무 망가진다"

아이들은 옷을 들고 벌거숭이로 후다닥 줄행랑을 친다.


아저씨가 가고 나면 다시 슬금슬금 개울로 돌아온다.

아이들은 양쪽으로 손을 잡고 두 팀으로 나눠서 길게 늘어선다.

밀고 당기듯 다 같이 한 발짝 앞으로 다가가며 상대팀에게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꽃을 따러 왔단다 왔단다"

"무슨 꽃을 따겠니 따겠니"

"가위! 바위! 보!" 이긴 아이가 으쓱한다.

진 팀이 제일 강해 보이는 애를 선수로 보낸다.

손을 깍지 끼고 있으면 상대팀에서 잡아당긴다.

끌려가면 뺏기고 당겨서 끌려오면 우리 팀이 되는 것이다.

치열하게 당기고 이기면 '와아~' 하고 손뼉 친다.

그렇게 해가 지는 줄도 배고픈 줄도 모르고 논다.

얼굴이 까매지도록 놀아서 뒤통수와 구분이 안될 지경이다.

물속에서는 물고기가 발을 툭툭 치고, 아이들은 간지러워서 발을 동동 거린다. 물 반 고기반이다.




몇몇 아이들이 모여서 작당을 한다.

"오늘 수박서리하자"

그 아이는 왠지 겁이 났다.

"난 밤에 못 나와"

"바보 몰래 나오면 되지"

"안돼 엄마한테 혼나"


저녁을 먹은 아이들은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자 몰래 집을 빠져나온다.

결국 그 아이는 빠지고 서너 명이 의기투합해서 수박밭으로 간다.

명식이네 수박밭으로 가기로 했다.

다른 수박밭은 성공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인데, 명식이네 집은 이상하리만큼 수월했다.

명식이는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아서 다리가 좀 불편한데, 아이들은 항상 그런 명식이를 잘 챙겨주었다.

체구가 작고 약해서 힘들어하면 가끔 업어서 집에 데려다주기도 했다.

"아이고 얘들아 고맙다"하고 명식이 아버지는 고마워했다.


시절 아이들 늘 배고프고 허기지고 먹을 것을 찾았다.

그런 아이들이 수박이라도 맘껏 먹으라고 명식이 아버지 아이들이 수박서리를 해도 모른 척해 주었다.

아이들은 나중에서야 그런 사실을 알았다.


"수박씨 먹으면 배속에서 싹이 자라서 수박이 열리면 어떡하지"

"우리 배 터지면 어떡해"

"괜찮아~ 씨는 똥 싸면 나와! 아부지가 그러는데, 참외 먹고 밭에서 똥 누면 참외가 노랗게 열린대 그러면 참외를 똥참외라고 하는데 엄청 맛대. 수박도 그럴 거야"

"수박 먹고 밭에서 똥 싸자 깔깔깔"

아이들이 흥겹게 떠든다. 엉뚱한 걱정을 하면서도 턱으로 줄줄 흐르는 수박물을 훔쳐내며 와그작! 와그작! 맛나게도 먹는다.



아이들이 수박서리에 성공했다는 얘기를 듣고 있노라니 그 아이는 몹시 궁금했다.

서리를 하면 기분이 어떨까! 망설이다가 몰래 체험해 보기로 결정했다.

아이들이 물가에서 고구마를 구워 먹는다. 입 주변이 꺼멓게 되도록 허겁지겁 먹고 있을 때

그 아이는 결심한 듯 벌떡 일어선다.

"너 어디 가게"

"나도 서리한번 해보고 싶어"

"이렇게 밝은데 뭘 서리하려고"

"저기 고추밭에 아무도 없어"

"뭐라꼬? 고추를 서리한다고"

"아이고 웃겨라 까르르" 아이들은 배꼽을 움켜잡고 숨이 넘어가도록 깔깔 거린다.

"응 저기는 들키지 않고 할 수 있을 거 같아 흐음"

몹시 진지한 표정이다. 그래서 더 웃긴다고 아이들은 놀렸다.

아이들은 '니 맘대로 해라!'라는 듯이 그 아이를 말리지 않았다. 

고구마 먹기에도 바빴으니까



몰래 밭에 다가가니까 괜히 떨렸다.

평소에는 그냥 잘 지나다니던 곳인데, 막상 서리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괜히 몸을 낮춘다.

살금살금 다가가서 간신 새끼손가락만 한 파란 고추 두 개를 툭 따고, 누가 볼세라 다다닥 줄행랑을 쳐서 물가 아이들이 있는 곳에 왔다.


아이들은 물놀이에 정신이 없었고, 그 아이는 달랑  개의 고추만을 들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따놓은 고추에 살포시 서리한 작은 고추를 올려놓았다.

"왜 이렇게 작은 고추가 섞여있지"

엄마는 아는지 모르는지 중얼거리셨다.

그러곤 밀가루를 입혀서 찌고 양념으로 무쳐주셨다.

그 아이는 자기가 서리한 작은 고추를 한 번에 알아봤다.


떨리는 마음으로 성공한 그 작은 고추를 입에 넣었는데 괜히 기대가 되었다.

"아 맛있다"

평소는 먹지도 않는데 남의 것이라 그런가 맛있어서 눈이 동그레 졌다.


마루에 누워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떨렸던 마음이 가라앉히고, 낮에 서리하던 생각을 떠올렸다.

이제 다시는 서리는 못하겠다 생각했다. 

'난 새가슴이라 또 서리하면 숨이 막혀 죽을지도 몰라' 하고 생각하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하늘의 별들은 유난히 빛났고, 마루 위로 떨어진 별들은 잠든 아이 꿈속으로 살며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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