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비가 지나간 자리에 시간을 묻었다

야들아 이제 고마 날 놔라

by 그리여

하얀 나비가 지나간 자리 마지막 인사. 한 마리 나비가 말없이 이별을 전하고 홀가분하게 훨훨 날아올랐다.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오지 않았으면 했던 그날 앞에 마주 서게 되었다.


11년 전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꿈에 오셨다.

의식이 없어서 그런가 꿈에서도 말을 하지 못하시고 현관 입구에서 가만히 덤덤하게 쳐다보시다가 천천히 멀어지셨다. 나는 엄마를 들어오시게 하려고 현관으로 가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답답함에 화들짝 놀라서 일어났는데 너무 생생하여 가슴이 턱 하고 막혔다.


종일 뭔가 불안하고 마음이 잡히지 않더니 퇴근 무렵에 연락이 왔다.


엄마는 힘겹게 지탱하던 삶의 끈을 놓으셨다.


현실 같지가 않았기에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고 그저 생각 없는 생각이 계속 귓가에서 맴맴 거린다.

3년여 동안 푸석푸석하게 윤기 없던 머리칼을 짧게 자르고 온몸에는 물기가 하나도 없는 마른 장작처럼 말라서 한 움큼도 안 되는 팔다리로 의식 없이 누워계셨지만, 그래도 볼 수 있었기에 희망이라도 품을 수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조차도 허락되지 않는다고 한다.


엄마가 이제는 더는 우리 곁에 있을 수 없는 순간은 예외 없이 왔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내내 막막함에 목이 메었다. 임종을 지키지도 못했다. 눈을 가늘게 뜨시고 오빠를 힘겹게 보고 눈물을 한번 흘리고 조용히 가셨다고 한다.


어젯밤에 이별하러 오셨나 보다 힘겹게 버티시던 엄마는 이제야 홀가분해졌으리라


우리를 얼마나 원망했을까

‘야들아 이제 고마 날 놔라 이만 하면 됐다’라고 얼마나 말하시고 싶었을까


끝끝내 한마디도 못하고 요양원에서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셨다. 그저 이별을 말하고 싶었는데 결국 우린 한마디도 나누지 못하, 엄마의 초점 없는 흐릿한 눈에서 흐르던 눈물이 건조하게 말라 흔적만 있고, 남아있는 온기만 간신히 느낄 뿐이었다. 장례식을 치르는 내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실감을 하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있었다.


‘아이고 형님 형님’ 하고 대성통곡을 하는 소리에 목이 메었다. 어렵던 시절 엄마가 챙겨주시던 아주머니가 그 누구보다도 서럽게 우셨다.


귀에서는 웅웅 거리는 소리만 들리고 어쩐지 눈물도 흐르지 않았다. 차라리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 순간이 올까 봐 거부하면서도 마음속으로 조용히 연습하여 보았지만 적응이 되지 않았다. 나 또한 그 순간은 핏기 없이 엄마처럼 영혼 없는 푸석한 모습으로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만 봤다.


일이 고되어 보여 좀 쉬라고 하면 늘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죽으면 썩어질 몸이다. 뭐 하러 놀리노.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난 복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 남보다 더 열심히 움직여야 한다”


그 어떤 말보다 아팠던 말이 내 가슴에 남아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사셨지만 어떠한 욕심이나 미련이 없어 보였던 엄마는 고단한 삶을 놓으시고 원하시던 대로 흙이 되려 누우셨다.


영정사진을 찾는데 변변한 독사진 하나가 없어 가슴이 미어졌다. 뭐가 그리 바빠서 사진 한 장 못 찍고 살으셨을까. 겨우 작은 사진 하나를 확대하여 제단에 놓았다. 떠나는 마지막 그 순간에 남은 사람이 봐야 할 엄마의 작은 사진은 확대되어 흐릿하고 슬프게 놓여서 내려다보고 계신다.


어디선가 하얀 나비가 나풀나풀 날아와 우리가 가는 곳을 내내 따라다니며 장례식을 같이 했다. 엄마가 그렇게 사랑했던 자식을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나비로 온 건가


티브이에서 그런 걸 보면 설정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직접 겪어보니 정말로 엄마의 영혼이 같이 한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영정을 들고 집을 한 바퀴 돌고 제일 좋은 옷을 골라 태우고 나니, 타고 재만 남은 그곳을 한 바퀴 휘이 돌더니 하얀 나비는 저 멀리 날아갔다. 나비가 지나가고 침묵이 남았다.


하지만 나는 엄마를 보내드리지 못하였다.


탈관을 한다. 염을 해서 꽁꽁 묶인 엄마를 관에서 꺼내는 걸 보는데 차마 바로 볼 수가 없었지만 마지막이라도 보려고 눈을 돌리지 못하였고, 그 모습이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깊이 파인 구덩이에 삼베수의를 입혀서 눕혀놓은 엄마는 아주 조그맣게 보였다


‘저 흙바닥에 어떻게 누워계시게 하지!’라는 생각이 내내 떠나지 않았다.


그날은 비가 왔다. 하지만 엄마를 땅속에 눕히는 그 순간에는 비가 그치고 햇살이 비쳤다. 6월 장마철. 습하고 더운 날이었지만 그 햇살은 덥다기보다 신기하게 생각되었다.


이 무슨 조화던가! 하얀 나비가 어디선가 또 날아와 묘 주변을 휘이 둘러보고 사람들 사이로 조용히 날아다녔다. 그리곤 한참을 떠나지 않고 주변에 있었다.


봉분을 만들고 난 뒤 인부는 "지금부터 묘 앞에서 소리 내어 울어야 망자가 홀가분히 떠나신다"라며 소리 내어 울라고 한다. 믿고 싶지 않은 현실에 울지도 못하고 있다가 나는 조용히 묘 앞에 앉았다. 아무도 가까이 오지 않았고 혼자 덩그러니 울음을 삼키다가 처음으로 소리 내어 울었다.


장례식 내내 흐르지 않던 눈물이 그제야 쏟아지고 아무도 저지하지 않았던 그날의 그 시간 안에서 그렇게 혼자 한참을 울었다. 한동안 일어나지 못하고 엎드려서 울고 또 울었다.

그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울음을 그치고 고개를 드니 하얀 나비는 끝을 모르고 날아오르고 있었다.

하얀 나비가 마중물이 되어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둔 눈물샘을 끌어올렸다.


#이별 #하얀나비

#삶 #지나간시간

#엄마와딸

#엄마의부고

#가족 #감성글

keyword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