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자리에 그대로 놓인 마음
이승에서의 마지막 시간 49일.
문화재로 인정받기까지 인고의 세월을 견딘 게 엄마를 닮은 듯한 적조암에서 하기로 했다.
암자는 오랫동안 비어 있었고, 엄마는 그곳을 아버지와 같이 정성껏 지키셨다. 도둑맞은 물건들을 채워 놓으시고 청소를 하며 오랫동안 암자의 주인이 오시길 기다렸다고 한다. 오랫동안 비어있던 절에 비구니 스님이 오시면서 엄마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엄마의 공덕을 높이 사서 정성껏 백중 천도재를 준비해 주셨다.
평소에 엄마가 좋아했다면서 보리떡을 한 상자나 해 두셨다. 나는 내가 왜 그렇게 보리떡을 좋아하나 했더니 엄마를 닮아서 그랬나 보다. 한 번도 말씀하시지 않아서 몰랐다. 늘 자식들 입에 넣을 것만 생각하셨지 당신이 드시는 것은 소홀히 하셨다. 그저 바쁘면 밥 한 그릇 물에 훌훌 말아 드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눈물이 흐른다. 보리떡 한번 제대로 드시게 해 드릴 걸 왜 좋아하는 것도 몰랐을까
밝음을 몰아내고 서서히 붉은빛으로 물드는 노을 지는 고즈넉한 들판에 홀로 선 듯 쓸쓸함이 가슴에 헤집는다
천도재를 시작하고 스님이 염불을 시작하고 목탁소리가 잔잔히 번지니 어디선가 작은 새가 날아들었다. 그러더니 나와 가족들이 보이는 곳에 앉아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새가 법당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이었다. 왠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동생이 손을 가만히 대니 살포시 손위로 올라와 앉았다. 이런 신비한 일이 눈앞에서 펼쳐지다니! 이번에는 작은 새로 오신 것인가. 주변 지인들에게 손 위에 앉은 작은 새의 사진을 보여주니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천도재를 지내는 내내 같이 했다.
천도재 며칠 전에 엄마의 옷가지를 정리했지만 애써 엄마의 흔적을 지우지는 않았다.
엄마가 계시던 거실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우리 주겠다고 모아둔 그릇이 뜯지도 않은 상태로 남아있고, 우리가 어버이날이나 생일에 선물하였던 것들이 장식으로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다. 엄마가 자랑스러워하던 자식들의 사진들이 문 위에 걸려있고, 박학다식(博學多識)이라는 말을 좋아하셔서 붓글씨로 써서 드렸던 것이 커다랗게 걸려있다.
안방으로 들어가는 것도 힘이 들만큼 엄마의 흔적이 많았다. 숨을 들이켜고 용기를 내어 한 발짝 들이고 장롱 문을 열었다. 또다시 목이 메고 눈앞이 탁해진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내가 그동안 월급 받을 때마다 시시때때로 해드린 내복이 그대로 서랍에 들어있었다. 여러 벌의 새 내복을 보는데 뭔지 말로 못할 답답함이 가슴을 짓누른다. 그동안 떨어진 내복만 입어서 내가 얼마나 잔소리를 했던가
집이 추워 겨울마다 새 내복으로 입으라고 사 주었는데 "이게 뭐냐고 새것은 어쩌고 해진 것을 입고 있어?"라고 속상해하면 엄마는 항상 말씀하셨다.
“괴안타 아까버 난중에 천천히 입으께”라고만 하셨다.
옷장 안에는 변변한 옷 한 벌이 제대로 없고, 그동안 입었던 옷들은 해어질 대로 해어져서 색깔이 바래있었다. 생전에 속이 상해서 옷 사드리면 ‘쓸데없는데 돈 쓴다’고 역정을 내시고, ‘내 옷은 내가 산다’라고 하셨다. 낡은 옷을 버리려고 하면 ‘장사할 때 입는 작업복이라 그렇다 괜찮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버리지도 못하게 하고 늘 허름한 옷을 입으셨다.
나 또한 엄마 딸이라 고집이 있어 옷을 사겠다고 하면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500만 원을 돈으로 줘라 그러면 받으마"
"당장 그리 큰 목돈이 어딨어 나중에 많이 드리께 지금은 애들 키워야지"
"그러니까 쓸데없는데 돈 쓰지 마래이"
엄마의 고집은 아무도 못 말렸다. 몇 벌 없는 이 옷도 다 못 입어 보시고 가셨다.
목탁 소리를 듣고 있는데 장롱 안에 있던 깨끗한 내복이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저 물건 같지만 그 안에 남겨진 흔적은 입지 못한 내복처럼 그 서랍에 아직 꺼내지 못한 감정과 슬픔으로 고스란히 머물러 있다.
나의 이런 마음을 알았는가
작은 새는 손바닥 위에서 꼼짝도 안 하고 가만히 쳐다보며 위로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또 엄마를 보내야 했지만, 보낼 수가 없어 한참을 일어날 수가 없었다.
천도재가 끝나고 작은 새는 법당 천장을 날아올라 둘러보고 머리 위를 천천히 한 바퀴 돌더니 홀연히 밖으로 나가서 산으로 날아오른다.
엄마가 밤을 새워 기도를 드리던 산신각의 촘촘한 계단을 스쳐 지나가고 더운 여름 시원한 그늘을 내어 주던 커다란 나무옆을 지나고 딱딱한 돌배나무옆을 지나서 소나무가 빽빽한 좁은 길을 따라 천천히 날아가던 작은 새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잘 다녀가셨나요. 엄마의 흔적은 조금씩 옅어지고 있지만 사라지지 않은 사랑만이 진하게 남았다.
하찮은 작은 것에도 기대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 슬픔을 애써 숨기려 함이다. 그래야 숨을 쉴 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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