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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눈물이 나지 않는다

엄마를 보낸 슬픔보다 더한 슬픔은 없었다

by 그리여
흐르는 눈물은 괴로우나 그보다 더욱
괴로운 것은 흐르지 않는 눈물이다
아일랜드 속담

스마트폰 캘린더의 알림 기능이 잘 되어있어 사용하면 간편하지만 중요한 일정은 달력에 표시하는 걸 선호한다. 한 해 계획을 달력에 표시하면서 날짜를 한 번 더 기억해 보는 시간이다.


엄마 기일을 체크하다가 잠시 머엉 멍 때린다.


나는 눈물이 많았었다. 근데 소리 내어 크게 울어본 적은 열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거의 없다. 그냥 훌쩍훌쩍 흑흑하는 정도. 우는 것도 소극적으로 울었는데 그것조차도 몰래 혼자 우는 적이 많았다. 드라마보다 울고, 불쌍한 거 보면 그렁그렁하고, 누가 뭐라면 괜히 눈물부터 나오고, 억울하면 말해야 하는데 눈물이 흘러 망쳐버리고, 아무튼 눈물이 먼저 앞서 낭패인 경우가 많았다. 울지 않고 말하는 연습을 혼자 해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고 그렇게 나는 항상 눈물에게 져버렸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웬만해선 눈물이 나지 않는다. 말라붙은 우물처럼 마음에 물기가 없다.


엄마를 관에서 꺼내서 차디찬 바닥에 누이는 것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더랬다. 탈관을 하는지는 모르고 있었고 그때까지 본 적도 없었다. 구덩이는 깊었고 그 안에 홀로 누워 계신 엄마를 보니 서러움이 복받쳤다.

뭐를 그렇게 잘못하여 저렇게 꽁꽁 묶여서 차디찬 바닥에 누워야만 하는가! 사람의 삶이 영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보내는 그 순간만큼은 영원히 남는다. 돌아가셔도 보내지 못해서 가슴 깊은 곳에 묻었다.


사람들은 명당이라고 좋은 데 가실 거라고 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봉분을 만들고 이런저런 의식과 실랑이를 하고 한 사람의 일생이 그렇게 묻혔다.


엄마는 고향에 묻히기 싫다고 항상 말씀하셨는데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을 찾을 수가 없어서 결국은 선산에 모실 수밖에 없었다.


이제 어떡하지! 이제는 정말 못 보는 것인가! 말로 다할 수 없는 감정이 일렁이고 눈물이 끝없이 쏟아졌다. ‘곡소리 내고 크게 울어야 어무이가 편히 간다’는 인부의 말이 계속해서 귓가에 맴돌았다. 아마도 지금 이 자리에서 슬픔을 여한 없이 놓고 가라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엄마를 보내드렸지만 결국은 또 보내 드리지 못하였다. 마음을 비운 다는 건 무엇일까 과연 비워지기는 하는 것일까 시시때때로 우후죽순처럼 솟아오르는데 어찌 막을 수가 있는가


분노할 때 나오는 눈물은 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수분이 적고 염화나트륨이 많기 때문에 더 짜고 쓴맛이 난다고 하고, 슬플 때 나오는 눈물은 산성 성분이 많아서 신맛이 난다고 한다. 기쁠 때 흘리는 눈물은 염분 대신 포도당이 들어있어 단맛이 난단다. 때론 눈물을 흘려야 정신건강에 좋단다. 단맛 나는 눈물을 많이 흘리는 시간들이 많기를 바라고 바랬었다.


눈물이 흐르지 않음으로 해서 마음과 눈은 건조해져서 거칠어졌다. 거칠음 위에 시간이라는 보습제를 바르며 조금씩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퍼석퍼석 갈라졌겠지. 시간은 그렇게 약이 되었다.


아직도 어제 일 같은 그 일이 나에게는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고 받아들이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별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기에 나의 감정이 추스러지길 기다려야 한다.


그날 이후로 나는 어떠한 일에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잘 울던 내가 눈물이 말라버린 것처럼 눈물이 나지 않았다. 한 방울의 눈물도 흐르지 않고 촉촉해지지도 않았다. 눈물이 흐르지 않으니까 마음이 젖지 않아서 덜 아픈 거 같은 착각 속에서 살았다.


무슨 일이든 엄마가 돌아가신 것만큼 큰일은 없었고, 그보다 더 슬픈 일도 없었다.

아직도 못 보내고 있는 것인가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 무뎌질까


그렇게 눈물이 말라버리고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절대로 나지 않던 눈물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이별하기 위하여 글을 쓰기로 결심한 그날 자판기를 두드리며 11년 만에 맑은 눈물이 주르륵 하염없이 흐른다. 그렇게 많이 울었음에도 묘하게 눈이 붓지 않았다.


엄마가 울 일 있으면 울고, 웃을 일 있으면 웃으라고 하는 것 같았다. 덧없이 스쳐 지나가는 게 인생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기억 속에 남겨진 추억이 있어 붙들고 살 수 있는 것 같다.


엄마와 함께했던 그 시절 그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건강한 엄마의 환한 웃음이 있는 그 시간 안으로 내 안에 숨어있던 타임머신이 가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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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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