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장난꾸러기 엄마와 자매

니들 둘이 왜 같은 집에 들어가?

by 그리여

나는 늘 핏기 없고 눈은 땡그마니 캥하여 보는 사람마다 어디 아프냐고 물었다. 아마 태어나서 제일 많이 들은 말이 어디 아프냐는 것이었으리라

뒤통수도 남보다 동그랗게 뛰어나와서 납작하지 않은 게 비정상인줄 알고 벽에다 뒤통수를 툭툭 치며 납작해지길 바라기도 했다. 팔은 길고 허리는 가늘어 팔을 맞추면 허리가 빌빌 돌아가고 허리를 맞추면 팔이 짧았다. 그렇다 보니 맞는 옷이 없다고 옷 살 때마다 핀잔을 받았고, 동생은 뭘 입혀도 옷태가 좋다고 이쁘다고 했다.

엄마는 항상 동생과 장난을 치면서 놀기를 좋아했다.

검지로 동생의 코를 파서 중지를 입에 넣으면 그걸 모르던 동생은 "더러워!"하고 소리치며 질색팔색을 하였고, 엄마는 그게 재미있어서 웃다가 이마에도 떡하니 코딱지를 붙여주면 집안이 들썩이도록 동생은 화를 내었다. 그래도 금방 또 장난이라고 깔깔거리고 웃는다. 동생이 파닥파닥 바로 반응하니까 엄마는 재미있어서 더 장난을 친다고 했다. 난 건드려도 반응이 재미없으니 아예 포기를 하신다.


엄마 친구가 양장점을 하셨는데 내 옷은 도맡아 수선해 주셨다. 난 가뜩이나 내성적인 성격인데 어쩌다 한 번씩 옷을 살 때마다 위축이 되었다. 동생은 통통하니 뭘 입어도 예쁜데 나는 깡말라서 뭘 입어도 안 이쁘다고 하면서 똘망똘망한 동생은 구슬이라고 불렀고 나는 모개라고 불렀다.

칫 엄마가 낳았으면서. 어렸을 때 나는 딱히 누구를 닮지 않았기도 했다. 그래서 어디서 주워왔나 생각을 해보기도 했던 어린 나의 모습이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긴다. 나이가 들수록 언뜻언뜻 엄마가 보일 때가 있는 걸 보면 신기하다.


그러던 어느 날 위축되어 있는 내가 안 됐던지 엄마는 친구에게 부탁하여 청원피스를 나 몰래 사서 수선하여 입혀줬는데 내가 봐도 예뻐서 다음날 그걸 입고 학교에 갔는데, 친구들이 이쁘다고 다 쳐다봐서 쑥스러워서 숨을 곳만 찾았다. 그 이후로 눈에 띄는 옷은 입지 않았다. 내성적인 성격의 끝판왕이었다.

국민학교 2학년 때 선생님이 웃는 모습이 이쁘다고 하면서 내 얼굴을 그려 주셨다. 친구들이 부러워하는데 왠지 기분이 좋았다. 있는 듯 없는 듯 내향적인 나를 챙겨주시던 그 선생님의 영향으로 나는 한동안 초상화 그리기에 빠지기도 했다.


“엄마 선생님이 나 웃는 게 예쁘다고 그려 줬대이 이거 봐


나는 의기양양하여 엄마에게 보여주었다.


“아따마 이쁘게 잘 그리셨구마 신기하대이 어예 이래 똑같이 그렸을꼬


엄마는 내성적인 나를 살펴 주시던 그 선생님을 항상 고맙게 생각하시고 나 몰래 챙겨주셨고, 그 이후로는 엄마가 모개라고 놀려도 아무렇지 않았고 의기소침하지도 않았다. 사실 엄마는 그 일이 있은 후 다시는 모개라고 놀리지도 않았다. 재미가 떨어지신 모양이었다. 엄마는 딸들에게 그렇게나 장난치는 걸 좋아하셨다.

성격과 외모가 닮지 않았던 자매였기에 누구도 우리를 자매라고 여기지 않았다. 한 번도 닮았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한 번은 동생의 친구가 나와 동생이 같이 집에 들어가는 걸 봤나 보다.


“너 왜 그 언니와 같이 집에 들어가노 친하나”

“우리 언니다”

머시라? 하나도 안 닮았구만”

“나도 안다구 알아”

“니 언니가 훨 이쁘다 니는 누구 닮았노”

"엄마 닮았다 왜"


구슬이는 언제나 집안에 활기를 주는 딸이었고, 언제나 “아부지 10원만” 하고 손을 내밀면 아버지는 허허 웃으면 돈을 주었고, 구슬이는 가게로 쫓아가서 라면땅을 사 먹었다. 나는 미련하단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잘 참는 아이였다. 과자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그저 동생들 돌보고 집안일만 열심히 도우는 성실한 장녀였다. 집과 학교만 오가며 집안일을 도우다 보니, 내가 전학 가고 시골에 없는 줄 아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어쩌다 마주치면 방학이라 내려왔나?라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외롭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집안일을 하면서 놀 시간이 없어 나가지 않다 보니 학교 다닐 때 아니면 방학 때는 같이 놀 친구가 없어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는 자전거를 타고 달려 노을을 보러 가거나, 동네 뒷산을 올라가서 풍경화를 그리면서 쓸쓸함을 삭였다.

일찍 철이 들은 애늙은이라 괜찮은 줄 알았지만 가끔 그렇게 외로움을 느끼고 동무랑 같이 뛰놀고픈 아이가 되기도 했다. 아마도 가끔 외로웠던 거 보면 사춘기란 시간을 넘기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터벌터벌 집으로 돌아오면 비가 와서 일찍 온 엄마는 처마 끝에 떨어지는 비를 보며 빠른 손놀림으로 반죽을 하고 김치부침개를 지지직 부쳐서 줬고, 또 어떤 날은 밀가루를 조물조물 반죽하여 칼국수를 쓱쓱 썰어서 뚝딱 따뜻한 칼국수를 끓여주면 파간장을 한 스푼 섞어서 먹으면 뜨끈하니 참 맛났더랬다. 그 맛으로 마음이 훈훈하게 데워졌다.


학교에 가면 그림을 잘 그리고 글씨를 이쁘게 쓴다고 친구들이 내 주변에 모여들어 잘 쓰는 방법을 물으면 연필심을 납작하게 깎아서 써보길 권했다. 그러다 보면 예쁘게 쓰는 순간이 온다고 시범을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원하지 않아도 둘러싸여 있었지만 내성적인 성격이었던지라 적극적으로 아이들과 어울리지는 않았다. 어디서 물려받았는지 모를 재능이 있어 친구들에게 마징가 Z. 그랜다이저였던가 아무튼 만화캐릭터를 그려 주고 만들기를 해 주면서 성격에 비하여 친구는 많았다. 내 예능의 전성시대는 그때였던 거 같다. 지금은 손이 무뎌지고 감각이 예전 같지 않은 건 안타까운 일이다.


나와는 다르게 여동생은 타고난 밝은 성격으로 친구들을 선봉에 선 장군처럼 이끌고 다니고, 하루도 집에 붙어 있는 날이 없었다. 늘 햇살처럼 빛이 났었더랬다. 낯을 많이 가리는 나와는 다르게 에너지가 넘쳤고, 엄마는 조신하지 못하고 천둥벌거숭이 같다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엄마에게 혼나면 반항이라도 하듯이 나가서 들어오지 않았고, 학교도서관에 처박혀 책만 읽었다고 한다. 아마도 동생은 책에서 뭔가 꿈을 찾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성격의 자매와 장난 잘 치는 엄마는 그렇게 어려운 시기를 같이 넘기고 있었다. 그런 시간들을 모아서 끈적끈적 떨어지지 않는 정으로 엮어 시간 안에 차곡차곡 추억을 엮었다.

시간이 흐르고 그때를 생각하면 엄마가 장난치시면서 해맑고 호탕하게 웃던 얼굴이 자꾸만 생각난다.

엄마에게 딸은 자신이 낳은 최고의 좋은 친구였으리라


신은 엄마를 만들고 엄마는 딸을 낳았다. 힘든 순간에도 살아가는 에너지를 주었다



#엄마와딸 #자매 #우애

#애늙은이 #사춘기 #외로움

#감성글

keyword
화요일 연재
이전 14화어둠 속에서도 한줄기 빛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