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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엄마에게 편지를 쓴다
02화
함께 걷는 사람
by
햇살처럼
Sep 18. 2024
# 기억의 조각
예고 없이 비가 오던 날.
교문 앞에서 빨, 주, 노, 초, 파, 남, 보. 형형색색의 우산을 들고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들. 그 사이에 우리 엄마는 없었다. 교문 앞에 이르면 나는 신주머니를 머리에 올리고 시동을 걸었다.
'준비! 땅!'
장대처럼 내리는 비를 뚫고 열심히 뛰었다.
그칠 줄 모르고 쏟아지는 비가 야속했다. '헉헉' 숨이 차면 걷기 시작했다. 걷는 것도 힘들면
서러움이 밀려왔다. 젖은 옷처럼 아주 무겁게.
한참 비를 맞고 걷고 있을 때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꼬마야 어디까지 가니? 할머니랑 같이 우산 쓰자."
이름 모를 낯선 할머니. 이미 다 젖었으니 우산은 필요 없었다.
"괜찮아요. 할머니."
"감기 걸릴라. 잠깐이라도 같이 가자꾸나."
할머니 손을 잡고 함께 걷던 빗길. 할머니의 손은 참 따뜻하고 다정했다. 차가워진 몸이 데워지는 느낌이 들 만큼.
"꼬마야, 집에 도착하면 꼭 옷부터 갈아 입거라."
"할머니, 감사합니다."
우리 집을 목전에 두고 할머니와 헤어졌다.
할머니가 가던 길과 우리 집은 방향이 조금 달랐으니까. 나는 또다시 빗속을 뛰었다.
# 비 오는 날 쓰는 편지
엄마.
엄마는 모르지
?
갑자기 비가 쏟아지던 날,
엄마가 날
데리러 학교에 온 적이 없다는 걸.
오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
교문 앞에서 엄마를 찾았어.
한 번만 찾아와 주지.
그럼 매우 특별한 하루가 되었을 텐데.
나한텐 엄마랑 함께 한 기억이 얼마 없으니까.
교문을 통과하는 게 정말 힘들었어.
차가운 비 맞으면서
우산을 들고 서 있는 엄마들의 방긋한
얼굴,
커다란 우산 아래
엄마 손 꼭 잡고 걷던 친구들을
지켜봐야 했으니까.
오랫동안 비 오는 날이 싫었어.
비 맞던 날이 자꾸 떠 오르고,
엄마 향한 미움도 커졌으니까.
엄마.
어른이 된 후엔 비 맞는 날이 없어도
계속 비 맞은 느낌이 들어.
자꾸 무거워져
.
한 걸음씩 내딛는 발걸음도
, 짊어질 게 많은 어깨도.
어른은 원래
비 맞은 듯
무거운 옷을 입고 사는 거야?
참 희한해.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맞았을 땐
우산 받쳐 주는 사람이 필요했는데
세상살이의 고된 비를 맞는 지금은
함께 빗속을 걷는 사람이 필요해.
비가 오는 날.
우산을 받쳐 주고,
빗속도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람.
한참 동안 비를 맞고서야 알았어.
그런 유일한 사람이 엄마라는 걸 말이야.
엄마.
난 여전히
비 오는 날이 싫어.
근데 이유가 좀 달라졌어.
엄마 향한 미움이 아니라 그리움이 커져서 싫고,
비 맞던 날이 떠 올라서가 아니라
엄마랑 걷고 싶어 져서
싫어.
비 오는
날이 좀 적었으면 좋겠어.
그럼
싫은 날도 적어지겠지.
그럼 엄마를 그리워하는 날도 적어지겠지.
그럼 아
파해야 하는 날도 적어질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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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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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엄마에게 편지를 쓴다
01
프롤로그
02
함께 걷는 사람
03
감정의 거울
04
그런 척
05
홀로 핀 작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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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처럼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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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일잘러는 매뉴얼로 일합니다
저자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커리어가 중단되어 가는 느낌이 들어 N잡을 꿈꾸는 사람, 글 쓰는 일을 좋아해서 일상의 모든 소재를 에세이 형식으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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