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입학 전 나는 공부를 잘하던 아이였다. 공부로 칭찬을 받고서 다른 것도 잘하는 척한 날이 있다. 누나, 형보다 먼저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양치질을 했다. '참 잘했어요' 숙제 검사용 도장 같던 엄마의 칭찬으로 방긋방긋 웃던 마음. 그런 마음만 가득했으면 좋았을 텐데 금방 틈이 생겨 버렸다. 방문 열고 나간 엄마가 잘 돌아오지 않으면서.갈라진 틈으로 쌩쌩 차가운 바람이, 후드득 거센 비가 새어 들었다. 마음이 축축해지면서나는 바뀌어 갔다. 공부 잘하는 아이에서 일기만 잘 쓰는 아이로.
일기를 읽은 선생님들은 잘 썼다며 칭찬해 주셨다. 인정받으려던 게 아니어서 당황했다. 그저 느끼는 감정과 반대로 썼을 뿐이다. 어두우면 밝음을, 울고 싶으면 웃음을 표현했다.
어릴 적 큰집에서 봤던 새끼 강아지. 집으로 돌아갈 때 나랑 헤어지기 싫었는지 멍멍 짖었다. '저 강아지도 엄마 없는 허전함에 짓는 것아닐까?'생각했다.일기엔 다르게 적었다.
'왕왕! 짓는 소리가 반가웠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강낭콩 실험을 했던 수업 시간. 샬레에서 싹 틔운 강낭콩을 화분에 옮겨 심은 적이 있다. 물을 주고 있는데 자그마한 창문틈으로 햇빛이 새어 들었다. 별 하나 보이지 않은 밤같이 어두컴컴했던 내 모습. 이런 나와 달리 이제 막 싹 틔우고 햇볕을 쬐는 강낭콩은 사랑을 듬뿍 받는 것처럼 보였다. 일기엔 반대로 적었다.
'싹튼 강낭콩을 화분으로 옮겨 심었다. 물을 주고 햇볕을 쪼이니 금방 자랄 것 같았다. 강낭콩이 나처럼 밝게 자랐으면 좋겠다.'
초등학교 졸업 후 일기를 쓰지 않았다. 더 이상 숙제가 아니었으니까. 다시 일기를 쓰려한다. 엄마에 관한 일기를.
'이젠 좀 솔직하게 쓸 수 있을까?'
걱정도 되지만 있는 그대로 쓸 것이다. '아픔은 드러 내는 순간 치유된다'는 말을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