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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우울 상점 01화

우울 상점

by 이지원

몇 년 전의 일이다.


그때 내 방에는 커다란 붙박이장이 있었는데, 주로 옷과 이불을 넣어놓는 곳으로 쓰였었다.

살짝 열어보면 나무 냄새에 섞여 포근한 향기가 풍겨오던 곳.


아주 가끔이었지만 방 밖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려올 때가 있었다. 머리 안쪽에서 종을 치는 것만 같은 소리.

그런 소리가 들려올 때면 또 보이지 않는 괴물이 들어왔다며 홀로 마음의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눈을 감고 귀를 틀어막은 채로 버텼겠지만, 그날따라 거실 안을 꽉 틀어막고 있는 날카로운 소리가 가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저기에 맞서서 같이 소리를 지르면 뭐가 좀 달라지려나, 하고 다른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집 안에 몸을 욱여넣고 있는 괴물이 날뛸 것이 뻔했다.


소리가 문 앞으로 다가오자 어쩔 수 없이 옷장 안에 숨기로 했다.


전등이 완전히 꺼진 방도 충분히 어둡다고 생각했었는데, 옷장 안에 들어가 문을 끌어당기자 그보다도 더 짙은 어둠이 사방을 둘러쌌다. 완전히 닫히지 않은 문틈으로 달빛인지 바깥의 조명인지 모를 하얀빛이 한줄기 들어왔다. 포근한 향기. 등에 닿는 두꺼운 이불과 부드러운 옷. 벌을 서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사랑받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


가슴에서 올라와 귀로 흐르는 숨소리를 가만히 듣다 보니, 왠지 등 뒤를 받쳐주는 이불을 비집어 보면 새로운 공간이 나타날 것만 같았다.


거기로 가면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려나, 어떠려나.

꼭 안아줄 사람이 있을까, 어떨까.


귀 안을 파고들던 날카로운 목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그냥 그렇게 상상 속에 잠긴 채로 옷장 안에서 가만히 서 있었던 기억이 있다.


나가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숨은 옷장의 깊은 곳에는,

갈 곳 없는 마음도 받아줄 수 있는 곳이 있을 것만 같았다.


조명, 찻잔, 포근한 쿠션.

그런 것들로 등에 업힌 불안과 우울을 잠재울 수 있는

자그마한 우울 상점.


일단 상점이라고는 하지만, 우울을 팔지는 않는.

단지 잠시 놓아두기만 하는 그런 곳.


이상하지만 아늑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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