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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신러너 May 15. 2024

고립되어 글쓰기에 필요한 재료(1)

나무상자 집을 짓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재료를 모으는 것입니다


고립되어 글쓰기는 철저히 나무상자 집을 짓고 모든 외부 연결을 차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글쓰기는 고독한 작업입니다. 하지만 그 고독이 창작의 원동력임에 확실합니다. 글쓰기 거인들도 나무상자 집을 짓습니다.

J.K. 롤링은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을 쓸 때 에딘버러의 발모란 호텔 552호에 나무상자 집을 지었습니다. 다섯 달 동안 완벽히 고립되어 그곳에서 글만 썼습니다. 그녀는 집필에 온전히 몰두하기 위해 외부와 연결을 끊고 오로지 글쓰기에만 전념합니다. 인터뷰에서 롤링은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해리포터 세계에 빠져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 롤링의 말대로 작가에게 고립은 상상력의 날개를 달아주는 촉매제입니다. 일상의 잡음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바로 나무상자 집의 역할입니다.


"창밖으로 에던버러 성이 보이는 방에 앉아 글을 쓰면 마치 호그와트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1]


'씽크 위크'는 빌 게이츠가 일 년에 두 번씩 짓는 나무상자 오두막입니다. 이 기간 동안 외부 세계와의 모든 연락을 끊습니다. 인공적인 실리콘 벨리에서 자연적인 나무상자 오두막으로 모든 것을 옮겼습니다. 빌 게이츠는 이 시간에 거의 대부분을 독서하고 사색하는 쉼을 갖습니다. 이 씽크 위크에서 그의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썼습니다. 이때 쓴 유명한 메모는 "인터넷 해일"에 관한 메모입니다. 이러한 쉼이 있어야 창조하나 봅니다. 1995년 씽크 위크에서 인터넷의 잠재력과 그것이 미래에 미칠 영향을 예견했기에 전 세계 가장 큰 시가총액인 마이크로소프트가 되었습니다. 원문을 소개합니다.


"인터넷은 해일입니다. 규칙을 바꿉니다. 그것은 놀라운 기회이자 놀라운 도전입니다. 인터넷은 1981년 IBM PC가 도입된 이후 가장 중요한 단일 개발입니다." [2]


어떤 작가는 목적지가 없어도 기차표를 끊고 기차에 나무상자 열차에 탑니다. 롤링의 나무상자 호텔 552호, 게이츠의 나무상자 오두막, 그리고 나무상자 열차까지 모두 글 쓰는 그 과정 자체는 분명히 고립되어야 가능한 것 같습니다. 누가 대신 써줄 수도 없고 함께 쓸 수도 없습니다. 오롯이 나무상자 집에서만 가능합니다.


이런 나무상자 집을 짓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재료를 모으는 것입니다. 나무상자 집을 짓기 위해 필요한 목재와 못처럼 글을 쓰기 위해서는 다양한 글감이 필요합니다. 글감은 우리의 경험, 생각, 느낌, 그리고 만남에서 나옵니다.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작은 순간들, 책에서 읽은 흥미로운 이야기, 영화나 음악에서 받은 영감,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이 모두 글감이 될 수 있습니다.

재료를 모으기 위해 우리는 움직여야 합니다. 글쓰기는 정적인 자세로, 생각은 역동적입니다. 재료를 모으는 과정은 반대입니다. 액티브하게 움직이고 생각은 단순해야 합니다. 단순한 생각이어야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과 교류할 수 있습니다. 만남 자체를 계산하고 복잡한 생각으로 나무상자 재료를 모으기가 어렵다는 말입니다.


고립되어 글쓰기를 위한 질 좋은 재료는 대화 속에서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의 경우에는 다수가 아닌 단 한 사람과 대화에서 질 좋은 재료를 자주 얻게 됩니다. 멀티태스킹에 취약한 나에게 여럿이 모이는 모임은 참 힘듭니다. 아무래도 여럿이 모인 자리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 모양의 '커넥션'이란 것이 각각 다른 두께를 가지고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 공간에 많은 사람이 모일수록 여러 개의 커넥션이 생겨서 그만큼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수학적 표현으로 'n콤베네이션2'입니다. 사람이 한 명 한 명 늘어날수록 연결선 개수는 '1-3-6-10-15-21...' 으로 늘어납니다. 숫자가 많으면 꼬이기도 하고 엉키기도 해서 참 어지럽습니다.


이 커넥션이 적을수록 대화는 깊어집니다. 반대로 커넥션이 많을수록 대화는 주로 지배적인 발언자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4] 팀 회의에서 한 두 명이 발언권을 독점하고 그 나머지 사람은 그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샌드백'이 되어 원투펀치를 받아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모두가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서로의 의견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피어날 수 있습니다.

듣는 입장—청자—는 그렇고 이제 말하는 입장—화자—가 되더라도 커넥션이 많으면 주위에 여러 귀를 의식하면서 실시간으로 자기 검열을 하게 됩니다. 진솔한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기보다 자꾸 형식적이고 피상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나도 압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평가될지에 대해 민감하기 때문이란 것을요.


"멀티태스킹은 그저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망칠 기회에 지나지 않는다." -스티브 우젤 [3]


단순한 하나의 연결이 나는 좋습니다. 여러 사람과 얇고 엉켜있는 커넥션으로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것보다 단 하나의 단단한 커넥션으로 에너지를 집중할 때가 재미있습니다. 그것이 이야기를 풍부하게 합니다. 글쓰기는 고독한 작업이지만 그 고독을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세상과의 연결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글감이 되어 나무상자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재료들로 한 편의 이야기를 빚어냅니다.



[1] J.K. 롤링 인터뷰, MuggleNet, "J.K. 롤링이 발모랄 호텔에서 '죽음의 성물' 집필을 완료하다"

[2] 빌 게이츠 "The Internet Tidal Wave" 메모

[3] 게이 켈러 <원씽>

[4] Fay N. "그룹 토론: 상호작용적 대화인가, 연속적 독백인가? 그룹 크기의 영향"


*05~09화:    근면하게 글쓰기
*10~15화:    채집하는 글쓰기
*16화~22화: 고립되어 글쓰기 ← 이번화 추가
*23화~:       몰입하여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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