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한국 사람들이 으레 하는 걱정 어린 질문들이 있다.
“해고 많이 한다던데, 괜찮아?”
특히 미국에서 해고 광풍이 분다는 뉴스가 한국 언론에 보도되면, 그런 질문은 더 자주 들린다. 어떤 때는 미국 근로자의 처지를 한국이 더 걱정하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몇 년 동안 미국에서 일하다 보니, 정말 많은 해고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 팀 단위의 해고부터, 성과 부족을 이유로 한 해고들까지.
그렇다. 미국은 해고가 정말 흔한 나라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느끼는 것처럼 미국의 해고는 그렇게 무섭고 살기 힘든 구조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만약 미국의 고용 환경이 정말 그렇게 나빴다면, 전 세계의 수많은 인재들이 이곳으로 몰려들 리가 없다. 오히려, 이직과 재취업이 상대적으로 쉬운 구조 덕분에 직업 안정성은 미국이 더 높다고 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해고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한국과 미국은 매우 다르다는 점이다.
그 차이를 이해하려면, 해고보다 먼저 고용 관계를 어떻게 인식하느냐를 살펴봐야 한다.
미국에서는 고용을 일종의 계약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고용주는 전문성과 역량을 갖춘 사람이 필요하고, 근로자는 자신의 커리어를 성장시킬 기회를 찾는다. 양쪽의 필요가 맞아떨어질 때 고용이 성립된다. 당연히, 고용주 입장에서 필요가 없어졌거나 기대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계약을 종료할 수 있다. 반대로 근로자도 더 나은 조건이 있는 곳으로 자유롭게 옮길 수 있다.
고용 관계는 서로의 필요에 기반한 거래일뿐, 충성심이나 의리 같은 감정적 요소가 중심이 아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고용을 '계약'보다는 '관계'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고용주는 자본과 권한을 가진 ‘갑’이고, 근로자는 생계를 고용에 의존하는 ‘을’로 여겨진다. 이 관계에서 기업은 근로자의 생계를 책임지는 존재처럼 인식되고, 고용 자체가 일종의 배려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래서 한 번 고용된 사람을 해고하는 일은 큰 사회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법과 제도도 이 관점을 반영해, 해고가 쉽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렇다면 어떤 시각이 더 타당할까?
사실, 두 관점 모두 일리가 있다. 실제로 대기업 같은 경우, 근로자보다 훨씬 강한 권력을 가진 ‘갑’의 위치에 있기도 하다. 그럴 경우 해고는 근로자에게 더 큰 타격이 된다. 하지만 고용이라는 것이 결국 노동과 보상의 교환이라면, 서로에게 이익이 있어야 지속 가능한 관계다.
이 차이는 단지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각 나라의 산업과 기업 탄생 과정에서 비롯된 실제 차이이기도 하다.
미국의 대표적인 기업들은 대부분 창업자의 기술이나 비전에서 출발했다. 창업자가 필요한 사람을 고용하는 구조였고, 그 이유는 단순하다. 그 사람의 지식, 기술, 시간, 능력을 사기 위해서다. 고용은 그저 계약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반면 한국의 기업 대부분은 기술보다 ‘사업’ 중심으로 출발했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국가 재건이라는 목표 속에,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한 기업이 많았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국가를 대표하는 존재로 자리 잡았고, 사람을 고용하는 일도 단순한 계약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한 개인이 대기업에 고용되는 것은 ‘큰 기회’이자 ‘감사한 일’로 여겨졌다.
이런 역사적 배경이 결국 법과 제도의 차이로 이어졌고, 실제 고용 관계도 차이가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해고에 대한 시각도 다르게 만든 것이다.
나도 한국에 살 때에는 미국의 해고 구조가 너무 냉정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곳에서 살다 보니, 해고는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는 일이고, 때로는 회사의 방향 전환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회사의 사업 방향이 바뀌면 회사가 더 이상 특정 부서를 유지하지 않는 게 비정상일까?
오히려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제, 쉬운 해고를 옹호하는 사람도, 근로자의 권리를 강조하는 사람도 한 가지 질문에는 답해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고용을 단순한 갑을 관계에서 벗어나, 서로의 필요와 가치를 인정하는 동등한 계약 관계로 만들 수 있을까?
우리 사회의 진정한 변화는, 고용이 '관계'를 넘어 '거래'가 될 때 시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