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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멀어지는 중입니다

by 공책

나는 대학원 유학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왔다. 나이는 젊었고, 몸은 그보다 더 튼튼했으며, 마음은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면, 바로 그래서 더 많이 부딪히고 헤맸는지도 모른다. 내 안에 자리 잡은 생각들, 나만의 방식, 세상이 돌아가는 법에 대한 나름의 확신을 믿고 열심히 살았지만, 그럴수록 이상하게 더 많이 어긋났고, 흔들림은 깊어졌다.


그렇게 나는 책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한국에서 내 삶을 이끌던 가치관과 인생의 목표,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들을 하나씩 다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미국이 옳고 한국이 틀렸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반대로 한국이 더 낫고, 미국이 별로라는 말도 아니다.


두 나라는, 겉으로 보기엔 비슷해 보이는 부분도 있었지만, 실제로 살아보면 책이나 인터넷으로는 알 수 없는 깊은 차이들이 있었다. 나는 그 차이를 곱씹으며, 두 사회를 함께 생각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에 의문을 품고, 때로는 나의 태도와 생각을 조금씩 고쳐 나가면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미국에서 살아가고 있다.


미국에 사는 동안 성과도 없지는 않았다. 석사와 박사 학위를 마쳤고, 지금은 미국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며 나름의 보람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건, 학위나 직장 같은 겉보기 성취가 아니다. 낯선 세상 속에서 수많은 경험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조금이나마 바꿔나간 그 시간 자체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전보다 훨씬 더 자주 한국을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태어나 자라고, 20년 넘는 시간을 보냈던 그 한국 사회를 다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가까이에서 봐야 잘 보인다고 믿는다. 멀리서 흐릿하게 보이던 글자도 가까이 가면 또렷해지고, 누군지 헷갈리던 사람도 다가서면 분명해진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야 더 잘 보이는 것도 있다. 군중 속에 있을 때는 흐름이 보이지 않지만,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면 사람들의 움직임과 방향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 역시 한국이라는 군중 속에서 벗어나 완전히 다른 환경에 놓이면서, 그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들이 있다. 이 글은 그렇게, 멀리 있었기에 오히려 더 선명하게 보였던 것들에 대한 기록이다.


나는 우리가 모두 잠시 멀어져 한국 사회를 바라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그 안에 자리한 가치관, 구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함께 성찰해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시작했다.


물론 이 글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고민도 많았다. 나는 사회학을 전공한 것도, 정치나 행정을 공부한 것도 아니다. 하루 대부분을 기계를 생각하며 보내는 엔지니어일 뿐이다. 그런 내가 사회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 혹시 얕거나 가볍게 보이지는 않을까, 스스로도 망설여졌다. 게다가 지금 나는 한국에 살고 있지 않다. 그런 내가 과연 한국 사회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을까, 자문한 적도 많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기로 한 이유는 단 하나다. 가까이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멀어졌을 때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 시선이, 어쩌면 지금 한국 사회를 다른 각도에서 비추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이 책은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애정의 표현이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한국을 나의 고향이자, 나를 키워준 사회로 소중히 여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냉정하고 정직한 시선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제, 조금 멀어진 자리에서 바라본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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