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 농다리와 미르 309
이번 글에서는 지난 여행기에 이어 충청북도 진천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처음 충북으로 이사하게 되었을 때, 아버지께서는 “예로부터 ‘생거진천’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좋은 곳이다. 가서 잘 살아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생거진천’이라는 말은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이라는 사자성어에서 유래되었으며, 이는 ‘살아서는 진천에 살고, 죽어서는 용인에 묻힌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 사자성어의 유래에는 여러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가장 유명한 설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저승사자의 실수로 진천에 살던 추천석이 잘못 저승으로 끌려갔다가 다시 살아 돌아오게 되었는데, 이때 그는 용인에 살던 추천석의 몸을 빌려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진천과 용인의 추천석 혼선이 발생했고, 결국 고을 원님이 “살아서는 진천에 살고, 죽어서는 용인에 묻히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전해집니다.
또 다른 유래는, 옛날 충청북도 진천에 살던 허생원의 딸이 경기도 용인으로 시집가서 아들을 낳았으나, 불행히도 남편과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딸은 다시 진천으로 돌아와 재혼하여 또 다른 아들을 낳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용인에 살던 큰아들이 어머니를 진천에서 모셔가고자 했으나, 진천에서 태어난 작은아들이 이를 반대하며 갈등이 생겼습니다. 결국 관아에서는 “어머니가 살아 계시는 동안에는 진천에서 살고, 돌아가신 후에는 용인에 모셔라”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 두 이야기는 모두 농업이 으뜸이던 시절, 진천과 용인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천은 들이 넓고 기름져 농사가 잘되는 곳이라 ‘생거진천’이라 불렸고, 용인은 사대부의 묘소가 많고 산세가 아름다워 ‘사거용인’이라 불렸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지금까지 전해져오고 있는 것이지요.
'진천'하면 떠오르는 가장 유명한 곳은 아마도 농다리 일 것입니다. 진천 농다리는 '고려초 임장군이 축조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천년의 세월을 버텨온 돌다리인 것이지요. 다리는 작은 돌을 물고기 비늘처럼 쌓아 올린 후, 지네모양을 본떠 길게 늘여 만들어졌으며, 하늘의 별자리 28수와 동일한 28칸 돌 교각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다리가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지네 형상이라서 지네 '농(籠)'자를 붙여 '농다리'라 불렀다고 하는데, 그 구불구불하게 생긴 형상이 빠른 물살을 버틸 수 있게 해 준다고 합니다. 돌을 쌓아 올릴 때에는 석회 등을 바르지 않고 그대로 쌓았다 하는데, 폭이 1m도 채 되지 않는 다리임에도 장마 등에 의해 떠내려가지 않고 그대로 버티고 있어, 그 튼튼함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옛날에는 어른도 서서 다리 밑을 통과할 만큼 높았다고 하나 지금은 하천바닥이 많이 높아져 원래의 모습을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
농다리는 오늘날에도 다리의 기능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어 농다리를 통해 미호강을 건널 수 있습니다. 다만 다리의 폭이 일정하지 않고 위로 올라갈수록 석판이 작아지기 때문에 28칸을 건너는 내내 집중을 해야 하며, 특히 여러 사람이 건너는 경우나 비가 올 때는 주의하여야 합니다. 비가 많이 온 다음에는 생각보다 물살도 세고요. 농다리 옆에는 징검다리도 하나 있는데 둘째가 여기를 신난다고 방방 뛰어다니며 건너다 발이 빠진 적이 있습니다. ^^; 아이와 함께 가신다면 주의를 꼭 주시길 바랍니다.
농다리와 이어지는 초롱길은 농다리 건너에서 시작되는 코스로 산 쪽으로는 농암정까지 이어지고, 언덕길 너머로는 초평호의 전망이 펼쳐진 수변 탐방로가 시작됩니다. 봄에는 벚나무가 많아 벚꽃 구경하기 좋고 다른 계절에도 각종 야생화와 수목이 어우러져 걷기 좋은 산책로입니다. 원래 초평호를 건너는 하늘다리가 있었는데 최근에는 미르 309라는 국내 최장길이의 출렁다리가 건설되어 더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습니다.
용을 뜻하는 순우리말 '미르'와 다리의 길이 309m를 합쳐 미르 309로 이름 붙여진 이 출렁다리는 길이도 길거니와 중간에 주탑이 없는 구조라 직접 가서 보면 더 아찔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건너보면 때에 따라 많이 흔들릴 때는 옆사람과 부딪힐 정도로 출렁거려서 스릴이 넘칩니다. ㅎㅎ
진천군민으로서 팁을 하나 드리자면 농다리 주차장은 주말에 많이 붐벼 주차가 어려우니 지도 오른쪽에 위치한 청소년 수련원에 주차하시면 시간을 많이 절약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다리 건너에 있는 초평호 전망 데크에는 시니어 카페가 있습니다. 전망이 정말 좋으니 잠시 쉬며 간식 먹거나 차 한잔 하기 좋고요. 마지막으로 지도 아래쪽 황토맨발숲길은 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황토의 상태가 매우 좋습니다. 맨발 걷기 좋아하시는 분들은 꼭 들려보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작년 5월에도 부모님이 충북으로 오셔서 시간을 함께 보냈네요. 아무래도 복잡한 서울보다 한적한 시골에서 딸이 해주는 밥 먹으며 손녀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으신가 봅니다. 1년 사이에 첫째가 할머니 키를 많이 따라잡아서 다시 사진 속 포토존에 들어가 찍으면 할머니와 눈높이가 비슷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