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선증후군(KID Syndrome) 아이와 함께 걷는 삶 (2)
평소보다 잠을 오래 잘 수 있는 주말 아침, 우리 부부는 언제나 우리보다 먼저 일어나 우리 방으로 찾아온 아이들의 침투작전을 맞이한다. 우다다 달려와서 이불속으로 파고들며 부모의 체온을 함께 누리려는 두 아들 녀석들. 그중 큰 아이 하준이는 특히나 우리의 체온과 손길에 행복해한다. 우리의 품 안에서 한 껏 기지개를 켜며, 행복한 소리를 낸다. 우리의 손을 끌어다가 쓰다듬어 달라고 재촉한다. 끊임없이 우리의 살갗을 찾고 쓰다듬고 우리의 온기를 느끼려 노력한다. 애견인은 아니지만, 큰 레트리버가 정신없이 달려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상상하곤 한다. 그러나 강아지의 애교와 다른 점이 있다면 하준이의 모습에선 때론 애잔함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단순히 그 스킨십이 좋아서 한다기보다는, 뭐랄까 조금 갈망에 가까운 모습으로 우리의 손길을 찾는 그 모습에서 말이다.
하준이의 이러한 버릇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돌이 되기 전부터 하준이는 자기 전에 엄마나 아빠의 팔꿈치를 비비고, 이마에 비비면서 잠들곤 했다. 그뿐 아니라, 안기거나 업히거나 팔을 끌어당긴다거나 하는 스킨십을 매우 자주 했다. 우리 부부는 하준이만큼의 인내와 끈기가 없는 듯한데, 그래서인지 그 적극적인 스킨십에 간혹 우리가 짜증을 낼 때면 하준이는 섭섭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서곤 했다. 충족할 만큼의 스킨십이 채워지지 않으면 쉬이 잠들지 못하는 날들도 있었다. 그렇다고 하준이가 심리적으로 어떤 결핍이 있는 건 아니다. 우리와의 유대관계도 매우 좋으며, 자존감 등 정신적인 부분에서는 외려 감사할 정도로 건강하다. 그래서 난 이 아이가 느끼는 스킨십에 대한 갈망은 사랑이나 사회적인 유대라기보다는 조금 더 원초적인 것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난 그 이유가 하준이가 막 태어나자 보냈던 그 24일간의 인큐베이터 생활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준이는 혼자서 유달리 큰 병실을 썼다. 한 병실을 나누어 쓰는 다른 몇몇 아이들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대우는 하준이가 가진 증상들이 의사들에게 얼마나 큰 고민거리를 가져다주고 있는지를 짐작케 했다. 달가울 리 없는 특별대우였다. 그리고 병실은 시원하다 못해 약간 한기가 들 정도로 추웠다. 당시의 계절이 가을에서 늦가을로 접어드는 시기였음을 감안해도 추웠다. 위생의 목적임을 알고 있었으나, 우리는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하준이가 춥진 않았을까 하며 어린이용 담용을 연신 덮어주곤 했다. 담요와 우리의 손길을 느낄 때 하준이는 편안해 보였다. 그 편안한 표정을 우리의 집에서 볼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말이다. 매일 같이 방문했으나, 주어진 시간은 늘 짧았다. 늘 부족했다. 우리는 하준이와 시간을 더 보내고 싶어서 전전긍긍했다. 아주 작은 눈으로 힘 없이 끔뻑하며 우리를 볼 때면, 우리는 아이의 맑은 시야 안에 가능한 한 우리의 모든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온갖 노력을 했다. 하준이를 안고 소파에 앉아 젖병을 물려주기도 하고 재워주기도 하고 토닥여주기도 하고 노래를 불러주기도 하고 우리의 사랑을 속삭여주었다. 우리가 없을 하루의 20여 시간을 혼자서 이겨내야 하는 이 어린아이를 위해서 그 짧은 시간 안에 무엇이든 해야 했다.
병원에서 하준이와 시간을 보낼수록 하준이의 모습이 더 자세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준이는 온몸에 두껍게 덮인 각질 층을 가지고 있었다. 첫날 봤던 등의 딱지들은 일부에 불과했었다. 얼굴과 두피, 팔과 다리 등에도 비슷한 딱지들이 가득했다. 온몸에 핏기가 걷히고, 정수리의 상처들이 아물기 시작하자 피부 다른 곳에 있던 각질들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각질층은 하얗기도 하고 노랗기도 했다. 이렇게 단단한 딱지와 각질이 눈 주위와 입 주위에도 있어서 눈을 감고 뜨기도 힘들어했고, 무언가를 오물거리기도 힘들어했다. 이것이 나 자신의 피부였다면 당장에라도 긁어서 떼어버렸을 테지만, 간호사는 의사들의 전체적인 진단과 치료법이 나오기 전에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때로는 아이를 오래 안고 있으려 했지만, 피부에 도포해야 하는 연고 등으로 물끄러미 바라만 봐야 하던 때도 많았다. 그럴 때면 허공에 꼬물거리며 손을 드는 하준이가 마치 우리를 찾고 있는 거 같았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억지로 떨어져 있는 경우가 우리 마음을 더 힘들게 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아내는 최선을 다해서 모유를 유축을 했다. 아내 또한 가구하나 제대로 놓여있지 않은 춥고 어두운 아파트에서 회복 중인 성치 않은 몸이었지만, 하준이가 시중에서 판매되는 분유보다 모유를 잘 먹는다는 말에 병원에 갈 때마다 늘 기꺼이 수유실로 들어갔다. 하준이는 마치 엄마의 것을 안다는 듯 늘 놀라운 속도로 먹었다. 그마저도 하준이가 조금 먹고 나면 곧 부족해져서 분유로 바꿔줘야 했다. 그러나 몇 모금 이후 이내 내뱉고는 했다. 결국, 모유 만으로는 먹는 양이 부족해져서 간호사들이 코를 통해 튜브를 삽입하고 이를 통해 분유를 넣어야 했다. 모유가 넉넉했다면 하준이가 저런 튜브를 달고 있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라는 마음에 우리의 마음은 다시 한번 아파왔다. 하지만 아내는 이미 체력적으로 한계를 경험하고 있었고 지금까지도 초인적인 인내로 이 상황을 견뎌내 주고 있었다. 이 마음을 아는지 하준이는 튜브를 잘 버텨내 주었다.
작은 손으로 우리의 손가락을 꼭 붙잡는 하준이는 우리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갈 때마다 더 꼭 쥐어주었다. 아무도 그 표정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우리를 맞이하고 우리 품에 안겨있는 하준이는 분명 우리를 향해 최대치의 미소를 보내주었다. 그 맑고 깊은 눈동자는 우리의 마음을 오히려 다독여주었다. 하준이는 분명 우리에게 말하고 있었다. 꼭 집으로 같이 갈 거라고. 혼자는 외롭다고. 몸에 붙어있는 모든 의료기기의 전선들을 다 떼어내고 싶다고. 엄마와 아빠와 함께 가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난 이 소중한 아이가 조금 더 따뜻할 수 있도록 안고 또 안아주었다.
헤어져야 할 때면, 우리는 눈물을 삼킬 수가 없었다. 하준이를 다시 침대에 누이고, 다시 필요한 의료기기들을 몸에 붙이고, 다시 황달증세를 완화시키는 형광등을 켜고 간호사와 인사를 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기계적으로 하지 않으면 슬픔에 잡아먹힐 것 같았다. 옷을 챙겨 우리 몸을 돌려 나오면 병실의 센서가 방 전체의 조도를 다시 어둡게 만들었다. 뒤돌아 나올 때마다 보는 그 점진적인 어둠이 싫었다. 어렴풋이라도 보이던 하준이의 실루엣이 어둠 속에 스며들 때면 내 마음도 그렇게 되는 것 같았다. 신생아집중관리실을 빠져나와 주차장까지는 대략 7-8분 걸어갔어야 했는데, 그 길을 걸으며 우리 부부는 아파했다. 우리도 이제 막 도착한 미국에서 외로웠지만, 우리의 아이는 더욱 외로운 곳에 있었다. 우리의 마음에도 여러 생채기들이 있었지만, 우리의 아이는 몸에도 마음에도 모두 생채기가 있었다. 모든 게 우리 탓인 것 같았고, 이 믿기지 않는 현실에 그리고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 힘겨워했다. 불 꺼진 병실처럼 모든 게 어둠 속에 있었다. 그리고 그 가장 짙은 어둠 안에 우리 아이 하준이가 있었다. 어둡고 춥고 외롭게.
오늘도 하준이는 나의 품 속에서 아 좋다 이러면서 함께 이불을 덮는다. 이제는 내 품 안에 가득 차고도 넘칠 만큼 컸지만 이 아이는 그때 못다 누린 부모의 온기를 계속 공급받길 원하는 것 같다. 그러면, 난 아낌없이 이 녀석을 안아준다. 가끔은 모든 사랑을 담아 으스러지게 안아준다. 아파할 만 하지만, 하준이는 으으 소리만 낼뿐 한 번도 거부하지 않는다. 그냥 이 모든 것을 좋아할 뿐이다. 이것이 인큐베이터시절에 못다 누렸던 온기를 충전하는 하준이의 방법인 것 같다. 이제 우리의 방은 밝고 온도도 적당히 따뜻하지만 하준이의 마음에 혹여 있을 춥고 어두운 외로운 공간에 늘 나의 손을 놓아두고 싶다. 이 아이가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헤매지 않고, 늘 내 손을 찾아 잡을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