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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기 Jul 17. 2024

<둘기네집에 담긴 진실> 3화

“야, 윤아연!”

“오, 정선주. 오늘 새 옷 입었네?”

     

 그녀 이름은 정선주. 추위가 마지막 기승을 부리던 어느 2월의 한 자락, 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에 새로 등록한 동년배 친구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선주네 가족이 교회에 처음 나온 그 다음 주일에 교회 주보지의 ‘새로운 가족을 소개합니다’ 란에 정선주라는 이름이 아버지, 어머니의 이름과 함께 나란히 잉크질되어 있었다. ‘정상인’이라는 아버지의 성함이 워낙 재밌고 특이해서 인상 깊게 살펴봤던 어렴풋한 기억이 있다. 주보지를 보자마자 선주 아버지 성함대로 다분히 정상적인 가족일 것이라는, 유치하고 섣부른 추측도 했었다. 나중에 불가항력적인 우연의 힘을 빌려 알게 되었지만 그 가족에겐, 선주에겐 비정상적이고도 가슴 아린 상처가 있었다.


 아무튼 우리 교회는 성도수 500명가량의 규모가 꽤 큰 교회라 처음엔 선주가 눈에 잘 띄지 않았었다. 그런데 묘하게 우리 둘은 삶의 행동 영역이 비슷했다. 엄연히 대학부 예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주와 나는 장년부 예배만 참석한다는 것, 나중에 선주네 가족이 특송을 할 때 알아차린 사실이지만 선주와 나는 피아노를 꽤 잘 다룬다는 것, (나는 음악교육과를 전공하여 주일 예배 때 반주자로 교회를 섬기고 있었고, 선주도 예전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했었다고 한다.), 동은 다르지만 같은 아파트에 산다는 것, 과는 다르지만 같은 대학을 다니는 것 등이다. 교회가 지척이라 주일 예배가 끝나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불교신자인 부모님이 계시는 집까지 혼자서 쓸쓸히 걸어가던 중 아파트 정문 근방에서 나에게 먼저 말을 건네 온 건 선주네 가족, 그중 선주 어머니였다.

      

“혹시 서로사랑교회에 다니는 자매 아니에요?”

     

 선주의 외모와 꼭 빼닮은 선주의 어머니는 다정한 온도의 말을 건네왔다. 나중에 선주가 나이 들었을 때의 모습이 저 모습이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 맞아요. 안녕하세요.”

“어머, 맞나 보네. 혹시 여기서 살아요?”

“네, 태어날 때부터 쭉 여기에서 살았어요.”

“그렇구나, 우린 여기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혹시 대학생이에요?”  

“네, 올해 광전대학교에 합격했어요.”

“어머? 우리 딸하고 같은 대학교에 합격했네. 무슨 과?”

“음악교육과요.”

“그렇구나. 우리 딸도 국어교육과 1학년에 입학할 예정인데. 나이도 같네. 호호호.”

     

 선주 어머니께 일상적인 심문을 받고 있는 와중에도 선주는 아버지의 곁에서 땅을 보며 쭈뼛거릴 뿐이었다. 선주의 아버지는 집에 일찍 들어가고 싶어 하시는 눈치였는데 눈치 없는 선주의 어머니는 나와의 대화의 끈을 계속 놓지 않고 있었다. 선주는 광전대학교를 다닌다는 나의 말에 잠시 날 응시하며 호기심 그윽한 눈빛을 반짝거렸지만, 이내 내게서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숙인 채 땅만 쳐다보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난 선주가 내성적인 성향의 친구인 줄로 알았다. 물론 이 순간만의 착각이었지만.

      

“앞으로 우리 딸하고 친구해도 되겠다. 우리 가족이 원래 살던 곳이 아니라서 선주 친구가 없을까 봐 걱정했는데 오늘 좋은 친구를 만난 것 같네.”

“아, 네...”     


 이건 뭐 양가계약결혼도 아니고 어쩌다 보니 선주 어머니의 뜻에 따라 강제로 친구 관계를 맺어야 하는 어정쩡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솔직한 심정으로 이날 선주에 대한 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뭔가 선주란 사람은 고요하고 아득한 심연 안에 외로이 갇힌 사람처럼 보였다. 과장해서 표현하면 어떤 죄목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두컴컴한 감옥의 독방에 외로이 갇혀 있다고나 할까. 세상 속 넓게 퍼져 있는 공기를 마시지 않고 본인 스스로 호흡을 거부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야, 윤아연!”

“오, 정선주. 오늘 새 옷 입었네?”  

“역시 눈썰미가 좋아. 잘 보여야 되는 사람이 있어서 큰맘 먹고 샀지.”

“뭐냐, 그새 남자라도 생긴 거냐.”

“뭐, 얼추 뉘앙스는 비슷해.”

“요것 봐라. 진짜 남자라도 생긴 분위기네.”     


 선주 어머니와 처음 대화를 주고받은 날에 내가 선주에게서 받았던 인상은 그저 기우에 불과했을까. 선주 어머니라는 매개체가 있었지만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혹은 알 수 없는 소용돌이에 함께 휘말리듯 자연스레 교회에서 교제의 물꼬를 텄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차츰 가까운 관계로 발전해 나갔다. 아마도 같은 교회, 같은 아파트, 같은 학교 등 삶의 영역이 비슷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도 마련된 건 아닐까.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선주는 교회에서 유독 남자 또래들과는 거리를 두는 모양새였다. 나를 비롯한 여자 또래들과는 농담도 주고받고 스킨십도 서슴지 않는 선머슴 같은 스타일이었는데 남자 또래들한테는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말을 건네오는 남자 또래들도 의도적으로 피한다는 느낌을 어슴푸레 받았다. 동성이 편하고 이성에게 부끄러움을 타는 스타일이랄까. 하루는 예배 시간에 나란히 교회 장의자에 앉아 주일 예배를 드리던 중 선주가 목사님의 말씀을 열심히 교회 주보지에 받아 적는 걸 지켜봤다. 여성스럽고 예쁜 글씨체였지만 몇몇 특이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보는, 개성 있는 글씨체였다. 선주의 옆구리를 가볍게 찌르며 목사님의 열띤 설교 말씀에는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야, 정선주. 너 글씨체 되게 특이하다.”

“뭐가 특이하단 거야? 내 글씨가 추사 김정희 선생 뺨쳐서 놀랬어?”

“그게 아니라, 글씨가 아기자기하게 예쁘긴 한데. ‘ㄹ’ 자를 특이하게 쓰네? 획이 딱딱 구분되는 게 아니라 어찌 보면 한자 ‘을(乙)’자 같아 보이기도 하고. 약간 글씨에 대한 성의가 없달까.”

“아, 이거? 히히. 안 그래도 ‘ㄹ’ 자를 이딴 식으로 쓴다고 지금까지도 아빠한테 혼나. 아버지가 직업 군인이시라 은근히 까다롭다니깐. 초등학생 정선주는 한글을 갓 배우면서 ‘ㄹ’ 자 쓰기가 너무 귀찮았었나 봐. 나도 모르게 잔머리를 쓰다 보니까 ‘乙’처럼 쓰는 게 굳어졌는 지도.”

“으이구, 어렸을 때부터 요령 피우는 방법을 제대로 깨우쳤구만. ‘ㄹ’ 자는 그런다 치고 왜 이리 초성을 큼직큼직하게 써? 거의 글자의 절반인데?”

“하하하, 초성을 큼지막하게 쓰면 글씨가 귀여워 보이잖아. 이것도 아빠한테 혼나. 히히히.”

“정말 넌 알 수 없는 아이다.”     


 우린 교회가 아닌 학교 내에서도 가끔 마주쳤다. 선주가 다니는 국어교육과는 사범대학교 2호관, 내가 다니는 음악교육과는 사범대학교 3호관이어서 안 마주치는 게 이상할 정도로 2호관과 3호관은 지척에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끔 학교에서 마주칠 때면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나누면서 일상의 수다를 떨었고, 공강 시간이 겹치는 날이면 같이 점심식사를 하기도 했다. 선주와 자주 가던 식당은 대학가에 위치한 돈가스집이었다. 돈가스를 못 먹어서 죽은 귀신이라도 붙은 것마냥 선주는 돈가스에 광적으로 집착했다. 하루는 음악교육과 친구들과 함께 선주와 자주 갔었던 돈가스집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선주가 한 남학생과 돈가스집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때 본능적으로 여자의 직감이란 것이 장난스럽게 발동했다. 선주가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남자가 혹시 저 남학생은 아닐까. 선주의 표정만 봐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선주의 모습은 나에게 100%에 가까운 확신을 심어 주었다. 돈가스집에선 분위기를 깰까 봐 모르는 척을 했지만 교회에서 선주를 마주쳤을 때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선주를 붙잡고 추궁 및 심문을 시작했다.  

   

“야, 정선주. 나 너 남자 친구 봤다. 돈가스집에서.”

“어? 정말? 언제? 봤다면 아는 체라도 하지 그랬어.”

“아는 체라도 하기엔 둘 사이에 강렬한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아서 자칫 가까이 다가갔다간 감전사할 것 같더라고.”

“어머? 그렇게 봤으면 잘 본 거네. 아마 네가 다가왔으면 난 너에게 찌릿찌릿한 백만 볼트 전류의 눈빛을 발사했을지도 모르지.”

“와, 정선주, 완전히 남자한테 홀딱 반한 것 같은데? 사귄 지 얼마나 된 거야?”

“사실 사귀는 단계는 아니야. 네 말대로 그냥 남자인 친구일 뿐이야. 애인이 아니라. 하지만 언젠가는 사귀는 사이가 될지도 모르지.”

“얼핏 보기에 그다지 외모가 준수한 편도 아니던데. 도대체 뭐에 눈이 뒤집힌 거야?”

“카푸치노.”

“뭐? 카푸치노? 그게 뭐야? 커피 말하는 거야?”

“응. 카푸치노. 그 사람이 내게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카푸치노를 사줬거든.”

“맙소사. 너 고작 커피 한 잔에 넘어갈 정도로 쉬운 여자였어?”

“맞아……․ 난 어찌 보면 쉬운 여자일지도 모르지.”    

 

 유쾌하고 경쾌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가 이어지던 중 쉬운 여자라는 말에 선주의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졌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말실수를 한 건 아닌지 괜히 죄책감이 들었다. 때마침 선주 부모님이 선주를 찾는 바람에 선주는 나한테서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당장이라도 사과를 하고 싶은데 기회를 놓쳐버렸다. 학교에서 마주치면 바로 사과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후 찝찝한 기분을 둘러매고 나 역시 교회를 빠져나가 집으로 향했다.

      

 그날 이후 더 이상 선주를 교회에서 만날 수 없었다. 부모님은 출석하시는 것 같은데 선주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어딘가로 사라졌다. 평소엔 하루 한두 번 마주쳤던 캠퍼스에서도 선주의 자취를 찾기 힘들었다. 설마 진짜 내가 한 말에 상처를 받은 걸까? 선주에게 전화도 걸어보고 문자 메시지도 보내봤지만 선주는 내 전화를 받지도, 메시지에 대한 답장도 보내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얼마 전에 무심코 건넨 말이 내 연락을 씹고 심지어 교회마저 그만둘 정도로 심했을까? 출구가 보이지 않는 원시림 사이를 홀로 걷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중 선주를 만나게 된 곳은 전혀 뜻밖의 공간이었다. 선주는 학교 시험 기간 저녁 무렵 후문 쪽에 위치한 호프집 앞에서 술에 완전히 정신을 빼앗긴 상태로 쓰러져 있었다. 친구들로 보이는 여학생들이 선주를 일으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집이 어디냐고 되물어봐도 선주의 입에서는 어떤 종류의 단서도 나오지 않는 듯했다. 교회도 다닌다는 녀석이 무슨 술을 저리 마셔 댔을까? 일단 선주를 그냥 놔두면 안 될 것 같았다. 난 곧장 선주의 친구들 무리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저 선주 교회 친구인데요. 저랑 선주랑 집이 같아요. 택시 타는 데까지만 부축해 주시면 제가 집까지 데려다 줄게요.”

“아, 선주랑 이웃사촌이세요? 정말 잘 됐다. 이 기집애 완전히 정신줄을 놓아 버렸어요. 집이 어디냐고 물어봐도 기억이 안 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왜 이리.”

“선주 좀 일으켜 세워 주세요.”     


 나는 선주 친구들과 합심하여 선주를 일으켜 세워 택시 승강장까지 힘겹게 끌고 가기 시작했다. 몸의 밸런스가 완전히 깨져 거의 시체처럼 늘어진 선주를 부축한 채 택시 승강장까지 가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두 명은 선주의 양팔을 자신들의 어깨에 둘러 매고, 한 명은 선주의 가방을 들처 매고, 한 명은 선주가 바닥에 나자빠질 때마다 다시 일으켜 세우는 걸 보조하면서 간신히 택시 승강장까지 도착했다. 대기하고 있던 택시에 선주를 겨우 욱여넣고 나서 난 선주의 친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가볍게 건네고 선주와 난 우리의 아파트로 향하는 택시의 뒷자석에 몸을 맡겼다. 선주는 인력처럼 내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내뱉는 호흡마다 독한 술 냄새가 택시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깨워 볼까도 생각했지만 아까 호프집 앞에 널브러진 모습을 생각해 보니 아무리 깨우려고 노력해 봐도 도저히 깨어날 것 같진 않았다. 승차 후 10여 분이 지났을까. 택시가 높은 방지턱을 넘느라 덜컹대는 순간 그녀는 가벼운 신음 소리와 함께 깊은 잠에서 잠시 깨어난 듯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그녀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감춰 놨던 한 마디를 무의식 중에 꺼내버리고 말았다.   

  

“나 너무 무서워. 보고 싶어. 변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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