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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기 Jul 24. 2024

<둘기네집에 담긴 진실> 4화

 변수남? 보고 싶다고 표현한 걸 보니 얼마 전 교회에서 선주가 잘 보이고 싶어 한다는 사람인가. 설마 그 돈가스집에서 봤던 그 남자? 선주의 입에선 그녀의 아픈 서사가 정지버튼이 고장 난 레코트판의 잔잔한 음악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모래시계처럼 다시 과거를 되돌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내 인생이, 망가진 내 육체가 다시 예전처럼 회복될 수 있을까? 그 인간에게 더럽혀진 내 몸이, 내 신체가, 내 순수함이 다시 깨끗해질 수 있을까?”     


 선주는 내 어깨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 함께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이 변수남이 아닌 나라는 사실을 는지 모르는지 그녀만의 은밀한 판도라의 상자를 스스로 열어버렸다. 지금이라도 내 정체를 밝혀야 할까.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결정인지 선뜻 판단하기 힘들었다. 선주의 입이 고백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듣는 나조차도 믿기 어려울 만큼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내용이라 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스무 살의 나는 너무 어렸다. 그녀의 가슴 아픈 읊조림은 계속 이어졌고 난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나 다신 교회 같은 곳 다니지 않을 거야.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회복된 줄 알았는데, 오늘 그 인간을 마주하니 다시 그날밤이 악몽처럼 떠올라. 비 오는 뒷산의 모든 분위기가 너무 생생하게 떠올라. 음산한 바람이 나무를 스치는 소리, 산짐승들의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 비에 젖어 혼자 남겨진 내 모습이.”    

 

 선주는 교회 혹은 비 오는 밤의 산속에서 뭔가 큰일을 당했음이 틀림없다. 그 인간에게 몸이 더럽혀졌다는 건, 설마? 선주야. 도대체 무슨 일을 겪은 거니? 네 마음속에 서슬 퍼런 칼날을 박은 사람이 누구야? 날카로운 칼날이 박힌 채로 여태껏 참고 살아왔던 거야? 선주는 차마 가늠할 수도 없는 깊이의, 쉽게 아물지 않는 상처를 , 보이지도 않은 생채기를 가지고 살아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괜찮아졌다고 생각한 건 나만의 착각이었나 봐. 목사님께서 통성 기도를 할 때마다 그 인간이 그날밤 악마같이 부르짖었던 통성 기도 소리가 다시 내 귓가를 저주하는 것만 같아. 내 영혼의 살점이 계속 뜯겨 나가는 것만 같아. 너무 아파. 수남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날의 장면이, 선주의 비명이, 울부짖음이 내 에서 생생하게 울리는 듯했다. 그녀의 가슴속에 송곳처럼 지니고 있던 은밀한 아픔. 어린 소녀에게 가해진 가혹한 운명의 잔인한 형벌. 그녀의 삶에 난도질하듯 채찍의 칼을 휘두른 악마의 탈을 쓴 한 남자. 이게 정녕 스무 살 여인이 짊어지고 있는, 앞으로 평생을 짊어져야 할 고통의 짐이란 말인가.


 어느새 내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고 흘러 그녀의 머리카락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선주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다시 잠든 것 같았다. 그녀가 잠든 사이 난 선주의 집주소를 알아내기 위해 교회 목사님께 연락을 드렸다. 아마 선주네 가족은 교회에 등록했을 때 교인등록카드에 분명 집주소를 남겼을 것이다. 비교적 늦은 시각이라 혹시 목사님이 주무시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들었지만 다행히 목사님은 전화를 받아 주셨다. 목사님은 선주가 왜 요즘 교회를 안 나오는지 궁금해하셨다. 내가 한 번 선주를 찾아가 보겠노라고, 연락을 드려보겠노라고 말씀을 드렸다. 목사님은 반색하시며 선주네 집주소를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106동 605호’     


 106동은 아파트 정문을 지나 단지 맨 끝에 있는 동이었다. 목사님은 통화의 끝자락에 선주가 다시 교회에 나올 수 있게 잘 설득해 보라고 간곡하게 부탁하셨다. 알았다고 대답은 했지만 오늘 선주가 내뱉은 말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그녀는 다시 교회에 나오는 게 힘들 것이다. 어느새 택시는 아파트 정문에 당도해 있었다. 택시 기사님께 106동까지만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했다. 인상 좋아 보이는, 비교적 나이가 젊어 보이는 기사님은 흔쾌히 106동 5,6라인 앞까지 택시를 몰아주셨다. 택시 요금을 지불하자 친절하신 젊은 기사님은 운전석에서 내려 선주를 엘리베이터 앞으로 부축하는 일까지 도움을 주셨다. 남이 아닌 마치 가족의 일인 것처럼 도와주시는 기사님께 무척이나 감사했다. 젊은 기사님은 다시 택시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스치듯 봤지만 기사님의 얼굴이 어딘가 모르게 어두웠다. 택시는 서서히 무겁게 출발했다.


 기사님과 내가 진땀을 빼가며 선주를 부축하는 과정 속에서도 그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니 1층에 머물러 있던 엘리베이터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혼자 힘으로 선주의 무게를 감당하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하지만 충분히 감당해야 했다. 선주가 가지고 있는 슬픔과 상실의 무게는 이보다 더할 테니. 6층에 왔음을 알리는 안내음이 들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커튼처럼 열렸다. 난 선주를 거의 껴안다시피 엘리베이터에서 끌어낸 후 605호의 초인종을 눌렀다. 현관문 너머에선 ‘선주니?’라는 어머니의 걱정 섞인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문득 지금 내가 여기서 선주를 부축하고 온 사실을 선주가 알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선주가 꽁꽁 숨겨둔 금단의 비밀을 들어버렸으니까. 어머니가 현관문을 여시기 전에 문 앞에 선주를 조심스레 앉히고 난 황급히 계단으로 뛰다시피 내려갔다. 이윽고 605호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얘가 왜 이래? 여보, 이리 좀 와보세요.’하며 놀래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내가 막 통과하고 있는 4층까지 뚜렷하게 전해져 왔다. 내일 선주가 정신이 들더라도 그녀의 비밀이 낱낱이 공개되었던, 그 택시의 뒷좌석에 동승한 사람이 나였다는 사실이 절대 밝혀져서는 안 된다는 조바심을 안고 난 102동 쪽을 향해 바쁘게 발걸음을 움직였다. 드리고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점심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강의를 다 듣고 사범대학교 3호관을 나서려던 찰나 교양 과목을 들으러 3호관 중앙 현관 안으로 들어오는 선주를 만났다. 그녀는 과연 어젯밤 일을 기억할까.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녀에게 찡긋, 하는 눈인사를 건네고 농담 섞인 말을 걸었다. 그녀는 평소처럼 밝은 분위기로 응대해 주었다.

      

“정선주, 오랜만이다. 요새 교회도 안 나오고. 그새 불교로 개종이라도 하셨나?”

“오랜만이야, 윤아연. 통 얼굴 보기 힘드네? 교회에 안 나간다고 일부러 나 피해 다니는 거야?”

“무슨 섭섭한 말씀을. 난 네가 투명 망토라도 입고 사는 줄 알았어.”

“에이, 교회를 안 나가서 얼굴 보기 힘들었던 건 인정하지만 나 학교는 열심히 다니고 있었다고. 다만 시험 준비 기간이라 도서관에 책처럼 파묻혀 살아서 그렇지.”

“오, 그러셨어요? 그나저나 진짜 교회는 안 나올 거야?”     


 어젯밤 그녀 입에서 나왔던 ‘나 다신 교회 같은 곳 다니지 않을 거야.’에 대한 궁금증이 발동했다. 속내는 다시 교회에서 그녀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도 했다. 선주는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쉽사리 해주지 않고 농담으로 뭉뚱그렸다.     


“불교로 개종했으니 부처님이 설파하신 도를 깨친 뒤에 천천히 생각해 볼게. 부처님과 예수님 중 누구의 말씀이 나에게 와닿는 진리인지 따져봐야지. 참, 공자님도 계셨지? 세상엔 성인군자들이 많기도 많네. 진리를 찾는 여정이 멀기도 머네. 이참에 소크라테스부터 시작을 해야 하나.”

“야, 장난하지 말고.”

“당분간은 교회에 나가기가 힘들 것 같아. 개인적인 문제라 모든 걸 말해줄 수는 없어서 미안해. 대신 학교에선 자주 보자. 나도 윤아연이라는 사람과 헤어지기는 싫거든.”

    

 강의 시작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오는 바람에 더 이상의 얘기는 나눌 수 없었다. 그녀가 어젯밤 일을 기억하고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난 선주의 맘속 상처에 회복의 바람이 따스하게 불어와 조금씩 조금씩 그 상처를 말려주길 진심으로 기도했다. 주일 예배 기도 시간에도 난 내 기도가 아닌 선주의 기도에 더 신경을 썼다. 다시 그녀의 삶을 재생시켜 달라고, 회복시켜 달라고 그리고 수남이란 사람이 선주를 포근히 안아줄 수 있게 도와달라고.

     

 추석이 지난 가을 무렵이었나. 선주는 여전히 교회에 나오질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이상했던 건 선주의 얼굴에 회색빛 근심 어린 그늘이 드리워진 점이었다. 학교에서 마주칠 때마다 건네는 선주 특유의 반가운 인사는 어느샌가 증발해 버렸다. 내가 먼저 아는 체를 해도 가볍게 응대만 해줄 뿐 그녀는 나와의 대화를 이어나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만나는 횟수가, 대화하는 횟수가 줄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의 거리도 차츰 멀어지기 시작했다. 이사를 가버렸는지 아파트 단지에서도 거의 마주치는 일이 없었다. 내 기억 속의 선주는 그렇게 하나씩 지워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몇 년 후 우린 졸업을 했다. 임용고사는 잘 봤는지 궁금했지만 굳이 연락을 취하진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낙방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몇 년이 지났다. 난 정선주라는 이름을 포기하고 정지안이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정선주를 우리 학교에서 재회했다. 국공립학교의 고3부장이란 걸 보니 선주는 당당히 임용고사를 통과한 듯하다. 강단에 서서 자신을 정지안이라고 소개한 정선주를 연수가 진행되는 내내 유심히 뚫어봤다. 혹시나 내가 잘못 본 건 아닌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정지안 씨는 틀림없는 정선주였다. 우린 몇 번 눈빛이 마주쳤는데 그때마다 선주는 가볍고 여유 있는 미소로 내 눈빛을 흡수했다. 선주는 꽤 고르게 시선을 분배하고 있었는데 특정한 곳에 시선을 던질 때는 미묘하게 눈빛이 떨리는 것 같았다. 연수가 끝난 후 난 선주를 따라 주차장까지 따라나섰다. 선주와 나는 실로 오랜만에 다시 상봉했다. 이제 그녀는 청순함이란 표현보다 우아함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였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아름다워지는 스타일이랄까.     


“윤아연 선생님, 이게 몇 년 만이죠?”

“정선, 아니 정지안 선생님. 이름까지 바꿔가며 그동안 어디 숨어계셨던 겁니까?”

“빚쟁이들한테 쫓기고 있어서 부득이하게 개명했지요. 혹시 나중에 빚쟁이들이 학교에 쳐들어오더라도 내가 다녀갔다는 말씀은 하지 말아 주세요.”

“여전히 농담은 가볍고 실속이 없으십니다.”

“내 연락처 바뀌었으니 번호 교환하고 이만 헤어집시다. 저 얼른 학교에 들어가 봐야 돼서요.”

“연락처도 바뀌셨습니까?”

“내 연락처 바뀐 걸 모르는 걸 보니 이제껏 저한테 연락 한 번 안 했다는 말로 들립니다. 윤선생.”

“그건 피장파장이겠지요. 정선생.”   

  

 선주와 난 그렇게 연락처를 주고받고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헤어졌다. 그녀는 십여 년이라는 세월 동안 어딘가 모르게 분위기가 바뀌어 있었다. 정확하게 알 수 없겠지만 난 선주의 상처가 어느 정도 치유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수남샘.”     


 수남샘은 한동안 망연한 표정으로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표정과 표정에 담긴 의미를 차마 읽어낼 수는 없었다. 한 가지 확실히 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눈가가 점차 습한 무언가로 채워지고 있었다는 것뿐. 비가 오는 창밖과 수남샘의 눈가에 아른거리는 축축함은 어딘가 닮아 있었다. 무엇인가 적요한 눈물이 수남샘의 지난 삶을 타고 흐르는 것만 같았다.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쳤지만 나와 수남샘은 도무지 그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테이블에 놓여 있던 각티슈를 한 장 뽑아 수남샘에게 건넸다. 수남샘은 말없이 각티슈를 받았지만 눈물 닦는 용도로 각티슈를 사용하지 않고 그저 건네받은 손에 움켜쥐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연샘이 말한 것들, 모두 사실이겠지?”

“응, 혹시 내가 괜한 말을 꺼낸 건 아니지?”

“아니야. 정말 고마워. 아연샘. 진심이야. 얘기해 줘서 고마워.”     

"사실 내 삶도 챙기기도 벅차서 선주와 수남샘의 이야기를 까마득히 잊고 살았어. 얼마 전 교직원 연수에서 선주를 봤을 때 다시 예전의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 나더라고. 과거 속 선주란 사람과, 선주의 입을 통해 드러난 수남이라는 사람. 혹시 선주가 좋아했었던 수남이라는 사람이 지금 내 옆에 있는 수남샘인 건 아닐까 의문이 들었었는데 운 좋게 수남샘이 가지고 있던 학과방명록을 보고 난 후, 수남샘의 필체와 선주의 필체를 확인하고 나서야 확신이 든 거야. 선주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수남샘이란 걸."

"그래......"

"혹시라도 선주와 만나게 되더라도 내가 이야기 꺼냈다는 말은 하지 말아 줘."

"그래야지... 그런데 다시 만날 수는 있을까?"

"수남샘은 정말 바보구나? 교직원 연수 때 선주가 수남샘 바라볼 때마다 눈빛이 떨리던데? 그거 못 느꼈어?"

"서로 눈빛이 마주치지는 않았어. 나도 흘끔흘끔 훔쳐만 봤거든. 그 사람을......"

"에휴, 내기 일일이 다 코칭을 해줘야 돼? 나도 수남샘 좋아하는 당사자인데 나한테 너무 가혹한 거 아니야? 선주는 아직도 수남샘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고. 이 바보야."

"......"


 수남샘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상념에 젖은 걸까. 5교시를 알리는 수업 시작종이 친 지 꽤 흘렀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서 우린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상담실 문을 열고 나가는 수남샘의 다리는 미세하게 휘청거리며 곧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힘겹게 지면을 지탱하고 있었다. 나하고 수남샘은 결국 닿지 못했지만, 진심으로 수남샘과 선주가 닿길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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