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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기 Jul 31. 2024

<악마 박태웅>

악마가 악마를 처단하다.

 난 매일 아침 악마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날 이후,  악마를 처단하는 악마가 되기로 신에게 통보했다. 신은 지옥에 갈 수도 있다며 날 만류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지옥이 별 게 있는가. 그녀 없는 현실이 이미 지옥인데.


 우리 집은 넉넉하진 않아도 부족하진 않게 살았다. 가위 공장을 운영하시는 아버지와 가정 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열 살 터울의 누나와 난 평범하고 보통의 가정환경 속에서 매일 소박한 행복 속에 살았다. 하지만 영원한 행복은 없었다. 나라가 망해 버려서 아버지의 공장은 폐업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빚쟁이들은 집으로 쳐들어와 아버지와 어머니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무릎을 꿇고 거의 바닥을 기다시피 빚쟁이들의 발목을 부여잡고 ‘며칠만 더, 며칠만 더’하고 통사정을 하셨다. 아버지들은 친척 일가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가며 한 번만 살려달라고 애타게 부르짖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한 아버지의 형제남매들은 모두 장남인 아버지의 절규를 가위처럼 잘라내었다.


 희망의 끈이 모두 끊어진 아버지는 매일같이 어머니와 언쟁을 높였고 급기야 폭력으로까지 이어졌다. 결국 40평대의 아파트와 외할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어머니의 시골땅을 모두 팔아 겨우 빚을 갚을 수 있었다. 방 한 칸 주방 한 칸짜리 셋방을 얻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마치 아내로서 할 도리를 다한 듯 누나를 데리고 집을 나갔다. 어머니는 외삼촌들을 대동하고 아버지께 이혼을 요구하였다. 아버지께서는 몇 날 밤을 고민하시더니 결국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어 주었다. 어린 나는 어머니의 가출과 이혼 결심이 당시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는 왜 나를 데리고 나가지 않았을까. 망해버린 아버지이지만 그래도 가족 하나쯤은 아버지 곁에 남겨 둬야 한다는 일종의 책임의식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아버지를 닮아서였을까.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어머니한텐 남자가 있었다. 누나야 성인이라 독립할 테지만 어린 나는 눈엣가시였겠지.


 아버지와의 하루는 매일매일이 지옥이었다. 막노동 일자리를 겨우 구해서 일하고 오시는 날이면 아버지는 며칠간은 끙끙대며 안방에서 앓아 누우셨다. 안방에는 아버지를 따라 소주병들도 각각 다른 포즈로 누워있었다. 어머니가 안 계시니 집안 살림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빨래는 날로 쌓여갔고 주방은 날파리들의 천국이 되었다. 가끔 작은 고모가 와서 집을 대충 청소해 주고 반찬도 만들어 놓고 가셨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안방에 있던 소주병들은 가끔 아버지께서 내 이마를 강타하는데 쓰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수십 병의 소주병들을 차곡차곡 모아 병들을 판 값으로 다시 소주를 사 오셨다. 이런 아버지 밑에서의 하루하루를 어린 나로서도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어머니께 매일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이 잘 되진 않았지만 간혹 연결이 되는 날이면 어디 계시는 거냐고, 누나가 보고 싶다고, 나 좀 데려가 주면 안 되겠냐며 울부짖었다. 어머니는 한결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날 위로했다. 엄마가 조금만 더 돈을 모으면 함께 살 수 있는 방 한 칸 마련할 수 있다고, 조금만 더 참으라고. 스무 살이 되면 꼭 데리러 오겠다고. 그나마 고등학교 담임선생님들을 잘 만났던 건 하늘이 나를 불쌍히 여겨서였던 것 같다. 밀린 납부금이 많았지만 내 집안 사정을 아시는 선생님들께서는 저소득층 장학생으로 꾸준히 날 추천하시어 겨우겨우 학교를 다닐 수는 있게 해 주셨다. 조금만 더 버티면 어머니께 갈 수 있다는 희망만이 날 살게 하고 버티게 했다. 대학 진학은 꿈도 꾸지 않았다. 20살이 되자마자 난  아버지로부터 벗어나 어머니랑 누나랑 함께 살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즈음이었던가. 믿음 좋은 반 친구 녀석이 자꾸 귀찮게 쫓아오는 바람에 그 녀석이 다니고 있는 교회에 따라 나간 적이 있었다. 난 그날 이후 매주 친구를 따라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한 여자를 만나기 위해 꾸준히 교회에 출석했다. 나랑 동갑이며 다리를 절뚝이는 여자 아이. 천사 같은 미소를 가지고 있는 여자 아이. 수경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여자 아이는 내가 교회에 처음 나온 순간부터 상처투성이였던 내 영혼을 따스하게 감싸주었다. 난 수경이를 본 순간부터 천사는 진짜 존재한다고 믿게 되었다. 난 수경이에게서 따스했던 엄마의 체취를, 그리웠던 누나의 온도를 느꼈다. 수경이는 내게 때론 엄마가, 때론 누나가 되어 내 지치고 외로운 영혼을 안아주었다.


 어렸을 적 소아마비를 앓았던 수경이는 는 게 어딘지 불편해 보이는 아이였다. 수경이는 어렸을 적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보호시설에 살고 있는 아이였다. 하지만 자신을 그렇게 만든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늘 밝은 모습으로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탓하지 않았다. 수경이는 평소에 행복이란 무언가가 채워졌을 때 오는 게 아니라 마음가짐에서 온다고 습관처럼 말하곤 했다. 수경이는 불행했던 내 삶에 내리쬐는 행복의 햇살과도 같았다.


 수경이는 신체적으로 절뚝거렸지만 멀쩡한 마음을 갖고 있었고 나는 신체적으로는 멀쩡했지만 절뚝거리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우린 각자일 때 절뚝거렸지만 함께일 때는 절뚝거리지 않았다. 그녀로 인해 내 마음의 상처엔 새살이 돋아나고 있었고 절뚝이는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내가 같이 걸어주었다.

     

 스무 살을 불과 한 달 앞둔 겨울의 어느 날, 수경이는 나에게 유서를 한 장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지긋지긋한 청소년 보호시설에서 탈출하여 나와 함께 걷는 장밋빛 미래를 그려왔던 수경이는 보호시설의 화장실 안에서 손목 동맥이 끊어진 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며칠  후. 수경이의 유서가 담긴 편지 한 통이 집으로 도착했다. 발신인 노수경, 수신인 박태웅의 편지 봉투엔 그녀란 삶의 마지막 필적이 묻어 있었다. 손이 심하게 떨려왔다. 집에 널브러진 가위 하나를 집어 들어 조심히 겉봉을 자르니 비밀스러운 유서가 시체처럼 담겨 있었다. 수경이는 나한테 미안하다며, 고마웠다며, 사랑한다며, 그리고 용서하지 말라며 울고 있었다. 그리고 반드시 한 사람을 벌해달라고 부탁했다. 유서의 마지막 부분엔 수경이의 육체를 겁탈한 악마 같은 놈의 실명이 또렷이 적혀있었다.


 나는 그 유서를 들고 교회 목사님께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목사님도 평소 수경이를 끔찍이도 아꼈던 지라 수경이가 끔찍한 일을 당했음에 1차 충격을, 수경이가 스스로 생명을 끊었음에 2차 충격을, 가해자가 같은 교회 청년이었음에 3차 충격을 받으신 모양이다. 목사님의 도움을 받아 형사 소송이 시작되었다. 법원은 사망한 피해자의 유서에는 범행의 구체적 정황 등이 없다는 이유로 증거능력을 부인했다. 증인으로 출석한 보호시설의 원장님도 평상시 수경이에게 피해망상증이 있었다며 거짓 증언을 했다. 가해자 부모가 더러운 돈을 쓴 것이 틀림없다. 결국 악마 같은 놈은 무죄로 풀려났다. 그놈은 나도 알고 있었던, 같은 교회를 다니던 놈이었다. 교회에서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눈 적 있는 천사의 탈을 쓴 악마 놈이었다. 태생적 곱슬머리에 185센티는 족히 되는 신장, 기생오라비 같은 외모, 목덜미에 지름 1센티 정도의 점이 있는 악마. 부모님이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재력인이라 재판에도 힘을 썼다는 소문이 귀에 들려왔다. 그 녀석과 부모는 더 이상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하나의 습관이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놈의 얼굴을 계속 떠올렸다. 실수로라도 그놈 얼굴을 잊어버릴까 봐 두려웠다. 악마 같은 놈의 얼굴을 매일 그려야 한다는 건 지옥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반드시 떠올려야 했다. 내 삶의 목적은 오로지 그놈을 파멸시키는 것이었으니까.


 난 매일 아침 악마의 얼굴을 떠올린다.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께서 새 살림을 차리셨단다. 자신도 고향을 떠나 상경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누나에게 나도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누나는 자신 몸도 건사하기 힘드니 그냥 아버지 곁을 지키라고 한다.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일이 이렇게 되었다고 어쩔 수 없이 아버지랑 살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날 설득하신다. 난 어머니께, 누나에게 버림받았다. 세상에 나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다. 혼자 남겨졌지만 남은 삶의 목적은 뚜렷하게 세웠다. 난 그 악마 같은 놈을 처단할 것이다. 악마 같은 놈을 처단키 위해서는 나 역시 악마가 되어야 했다.

      

 난 매일 아침 악마를 떠올린다.

 스무 살이 되어 집을 나왔다. 아버지껜 돈을 벌어오겠다는 핑계를 댔다. 그리고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숙식을 제공한다는 중국집에 찾아가 식당 서빙부터 시작해서 틈틈이 공부하고 연습하여 오토바이 2종 소형 면허증을 땄다. 중국집 2층에 있는 주택에는 너덧명의 직원이 모여 살았다. 모두 나같이 각자 사연이 있는 낙오자들이었다. 나하고 동갑도 있고 형들도 있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그들의 화법과 행동들은 처음에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난 그들의 언행에 차츰 동화되기 시작했다. 욕지거리를 자유롭게 내뱉게 되고, 가끔 길가에서 타인과 어깨를 부딪힐 때면 눈을 부라리며 상대방에게 거칠게 욕을 해댔다. 그러다가 싸움으로까지 번진 적도 있었지만 악마가 되기로 한 이상 난 더한 것도 할 수 있었다.

    

 난 매일 아침 악마를 떠올린다.

 일을 마치고 여느 때처럼 중국집 직원들과 2층 주택에서 그날 남은 중국음식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있을 때 뉴스에서 한 보도가 흘러나왔다. 택시 기사가 갑자기 인도로 돌진하여 3명이 사망한 사건이었다. 순간 내 몸에 강력한 전류가 흐르는 것만 같았다. 택시로 인해 누군가가 죽었다는 보도는 날 이상한 운명의 방향으로 발길을 돌리게 했다. 어찌 보면 그놈을 없앨 수 있는 새로운 살인 도구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분명 택시의 기동성과 광역성도 그놈을 발견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때마침 바퀴벌레 한 마리가 밥상 위로 기어오르는 게 보였다. 난 주먹으로 바퀴벌레를 짓이겼다. 뭔가 내장이 터지는 듯한 통쾌한 감각이 내 주먹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당장 살인 계획을 실행하기엔 무리였다. 입영통지서가 왔다는 아버지의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난 그동안 중국집에서 모은 돈을 몽땅 아버지께 부치고 서울 근교에 있는 부대로 입대를 했다.

 

 난 매일 아침 악마를 떠올린다.

 남들은 군대를 끌려간다고 생각들 하겠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난 군대란 공간이 악마 예행연습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여겼다. 후임병 시절 온갖 구타나 가혹행위에 시달리면서 악마성을 차곡차곡 응축시켰다. 선임병들은 인간이 어느 정도까지 악마가 될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줬다. 난 구타나 가혹행위를 직접 할 수 있는 선임병이 될 날만 손꼽아 그리고 있었다.


 하루는 선임병들과 함께 휴가를 나갔는데 의도치 않게 환락가를 가게 되었다. 난 그곳에서 누나를 발견했다. 누나는 몸을 팔고 있었다. 난 누나의 손을 다짜고짜 붙잡고 빨간 조명으로 가득 찬 방으로 입장했다. 누나는 한사코 손을 뿌리쳤지만 나는 돈만 주면 되지 않냐며 누나를 힘으로 굴복시켰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우린 그동안의 이야기들을 나눴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 누나가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꽤 지나고 있었다. 힘겹게 살아온 누나의 삶이 안쓰러웠지만 나에겐 일말의 동정심 따위 남아있으면 안 됐다. 이왕 악마가 되기로 한 거 진짜 악마가 되어보기로 결심했다. 다음번 휴가 때도 누나가 일하는 환락업소를 찾았다. 난 의도적으로 후임병을 누나에게 짝지어 주었다. 누나가 후임병을 능수능란하게 모신다. 누나와 후임병이 침대에서 몸을 섞는 장면을 잠깐 상상해 봤지만 이내 생각을 지웠다. 난 단 한 사람을 죽이기 전까진 인간이길 포기했으니까. 누나는 그 누구에게든 짓밟혀도 상관없다.      


 난 매일 아침 악마를 떠올린다.

 악마로 완성되기 위해, 완벽한 악마가 되기 위해 지독할 정도로 후임병들을 괴롭혔다. 그중 변수남이라는 후임착하디 착한 녀석이었지만 악이 선을 증오하듯 가혹할 정도로 변수남을 괴롭혔다. 착해서 더 괴롭힌 것이다. 악마는 천사를 증오한다. 변수남을 데리고 휴가를 나와 어김없이 환락가에 들러 누나에게 변수남을 내주었다. 누나에게서 노련한 매춘부의 냄새가 났다. 실로 역겹고 지독한 냄새였다. 누나가 파괴되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몸속 피가 끓어오르는 듯했다. 통쾌했다. 날 버린 사람은 그 누구든 짓밟혀야 한다.       


 제대를 할 무렵 난 완벽한 악마 박태웅이 되어 있었다. 그 어느 후임병도 나의 제대를 아쉬워하지 않았다. 내가 위병소를 나서는 순간 너무나 후련한 표정들을 짓고 있는 후임병들을 보고 난 안심 했다. 악마가 된 것 같은 짜릿한 기분이 전류처럼 혈관을 타고 흘렀다. 


 매일 아침 악마를 떠올린다. 

 난 서울이 아닌 고향으로 내려갔다. 사실 군대에 있을 동안 아버지께서 급성 간경화로 돌아가셨다. 작은 고모가 마침 군대 간 사촌의 방을 잠시 내어주었다.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조금씩 돈을 모았다. 악마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살짝 있었지만 놈은 나타나지 않았다. 조금씩 돈이 모이자 면허학원을 다니며 운전면허자격증을 따고 이윽고 택시운전자격시험에 합격했다. 작은 고모를 통해 소개받은 한 택시 회사에 취직했다. 택시 운전을 할 때마다 묘하게 기분 나쁜 설렘이 찾아왔다. 언젠가 이 택시가 녀석을 짓뭉갤 수 있다는 생각은 언제나 날 들뜨게 했다.


 하루는 중년의 취객이 탔다. 택시에 탑승해서 누군가 하고 통화를 하는데 얼핏 들어보니 그 중년의 취객은 자기 아내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있는 듯했다. 그날은 와이프랑 가족 약속이 있어서 안되니 다른 적당한 날 만나자고, 당신을 정말 사랑한다는 희롱의 언어들이 내 귓가에 박히기 시작했다. 순간 정의로운 악마성이 발현되었다. 이상하게 수경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연녀와 통화를 마치고 깊은 잠에 빠진 취객을 데리고 난 으슥한 공사현장으로 택시를 몰았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무작정 취객을 끌어내렸다. 취객은 여기가 어디냐며 극렬히 저항하기 시작했다. 복부의 명치 쪽을 강타했다. 취객은 저녁에 먹었던 것을 모두 바닥에 쏟아 내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취객에게 사정없이  발길질을 했다. 내 입에선 이 쓰레기 같은 새끼야, 인간도 아닌 새끼야, 같은 언어들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졌다.


 취객은 잘못했다며, 살려달라며 내 발목을 애타게 부여잡았다. 발목을 잡고 있던 취객의 손을 다른 발로 으깨기 시작했다. 취객은 비명을 지르며 내 발목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잡혀 있던 발로 취객의 얼굴을 후려치니 취객은 더 이상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취객의 지갑에서 취객의 명함을 하나 꺼냈다. 건설회사의 차장이라는 직함이 거무스레하게 박혀 있었다. 난 취객을 협박했다. 오늘 일을 경찰에 알릴 시 난 당신의 회사에 찾아가 불륜 사실을 떠벌리겠다고. 취객은 오히려 본인의 지갑 속에 있던 현금을 몽땅 꺼내 나에게 건넸다. 제발 말하지 말라 달라며 날 선생님으로 불렀다. 난 현금을 받아 들고 다시 택시를 몰아 거리로 나갔다. 택시를 몰고 나오면서 난 이상한 상념에 사로잡혔다. 난 악을 처단한 히어로인가, 아님 피 냄새를 좋아하는 악마인가. 히어로보단 악마가 되고 싶다.      


 난 매일 아침 악마를 떠올린다.

 과거 수경이와 함께 다녔던 옛 교회를 찾아갔다. 다행히 목사님은 예전 소송에 도움을 주신 그분 그대로였다. 오랜만에 찾아온 나를 목사님께서오랜만에 찾아온 내 손을 맞잡고 반가워하셨다. 그동안 살았던 이야기를 적당히 사실반 거짓반 꾸며대며 난 본론을 꺼냈다. 수경이를 무너뜨린 그놈의 주소를 알고 싶다고. 목사님은 뭔가 눈치라도 챈 듯 정보를 함부로 넘길 수는 없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셨다. 그리고 그냥 잊어버리라고 조언하셨다. 가슴속에서는 지금 당장 목사님을 때려눕히고 사무실을 뒤져 교인 등록 카드를 찾아내고 싶었지만 자꾸 죽은 수경이가 내 주먹을 붙잡는 느낌이었다. 그렇다. 이곳은 수경이가 나의 따뜻했던 추억이 있던 공간이었다. 이 공간마저 피로 물들일 수는 없었다. 별다른 소득 없이 목사님 사무실을 나섰다. 수경이가 잘했어, 라며 나를 안아주는 것 같았다.     


 난 매일 아침 악마를 떠올린다.

 하루는 광전대학교 정문콜이 들어와 여성 승객 2명을 태우고 광전대학교 정문 쪽으로 택시를 몰았다. 여성 승객은 정문 쪽 분위기 좋은 카페 앞에서 하차했다. 그리고 난 그토록 애타게 찾고 있던 그 녀석이 카페 안 카운터에서 손님들에게 카드를 받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내가 매일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그놈이었다. 오래전에 신께 올린 살인 허락 결재가 이제야 승인된 기분이었다. 온몸에 피가 거꾸로 솟은 듯한 느낌과 동시에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심장은 더욱 혈류량을 늘렸다.


 카페 건너편 도로에 예약표시등을 켜놓고 택시 안에서 하루종일 카페를, 그놈을 응시했다. 밤 10시가 다 되어갈 무렵, 악마는 카페문을 잠그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난 서서히 택시를 움직였다. 악마가 근사한 외제차에 막 타려는 순간, 난 세상의 모든 희열과 흥분의 마음을 오른발에 싣고 죽은 수경이를 떠올리며 힘껏 액셀을 밟았다. 쿵, 하는 충격음과 함께 외제차와 택시 사이에 끼어 악마의 다리뼈가 으스러지는 감각이 운전대를 통해 전해졌다. 다시 택시를 후진했다. 악마의 두 다리는 더 이상 땅을 지탱할 의지가 없어 보였다. 바닥에 널브러져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악마의 몸뚱이를 향해 다시 액셀을 거침없이 밟았다. 녀석의 장기가 뭉개지고 터지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난 택시에서 내려 악마의 맥을 짚었다. 맥박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악마는 악마에게 살해당했다. 난 악마의 시체를 뒤로 하고 곧장 근처 지구대로 달려가 자수했다.      


난 악마에서 살인 사건의 피의자로 신분이 바뀌어 있었다. 현장검증을 나선 날에 수많은 기자들과 카메라가 와 있었다. 난 굳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고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범행 동기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고개를 빳빳이 들고 대답했다. 죽은 악마의 유족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거친 욕을 내뱉고 있었다. 동네 주민들도 마치 괴물을 보듯 경멸과 두려움의 시선을 내게 던지고 있었다. 내 이름과 얼굴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고 난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전국구 스타가 되었다.     


“김병수, 그 악마 같은 놈이 과거에 제 여자를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죽인 것뿐입니다. 제가 죽인 것은 사람이 아니라 악마입니다.”          


 세상은 날 잔인한 살인자로 기억할까, 여자를 너무 사랑했던 악마로 기억할까. 아무렇든 난 상관없다. 그저 오랜동안 꿈꿔왔던 그 꿈을 이뤘을 뿐이다. 징역 25년을 구형받았다. 교도소에 수감 후 하루는 매춘부 누나가 면회를 왔다. 하염없이 눈물만 쏟고만 있길래 그저 잘 살아라고, 좋은 남자 만나라고 차갑게 말해주고 면회를 마쳤다. 어머니는 끝내 오시지 않았다. 새 남자와 새 출발 하는 마당에 살인자의 어머니라는 타이틀을 얻기 싫었을 테지. 나를 아버지께 남겨두고 누나와 함께 집을 나선 순간 어머니는 더 이상 내 어머니가 아니었다.        


 교도소에 갇혀 있던 어느 날, 꿈속에 수경이가 찾아왔다. 수경이가 아직 피가 묻어 있는 내 손을 붙잡고 자신의 얼굴에 지그시 갖다 대었다. 그녀의 눈물이 내 피 묻은 손에 차차 스며들었다. 눈물에 씻겨 피는 찬찬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녀의 부드러운 온기가 내 손에 전달되었다. 나는 그녀를 와락 끌어안고 눈물을 쏟았다. 제발 너 있는 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억지를 부렸다. 그녀의 체취가 점점 사라지더니 그녀는 어느새 사라지고 내 앞에 없었다.  

   

 군 생활을 하고 와서인지 오히려 교도소 생활은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나름 교도소 내에서는 모범수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악마들만 모여 사는 곳인지 알았는데 의외로 인간 다운 종자들도 몇몇 있어서 여기도 매양 사람 사는 곳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누나도 찾아오지 않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니까 잘 살고 있겠지라고 여겼다. 그렇게 몇 년쯤 흘렀을까. 전혀 예상치 못한 손님이 날 찾아왔다.      


 예쁘장하게 생긴 그녀는 이름도 모르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내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머뭇머뭇거리더니 이내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대뜸 내 몸은 괜찮냐고 걱정을 해왔다. 어이가 없어서 대뜸 날 아느냐고 차갑게 물었다. 그녀는 모른다고 답했다. 그러면 왜 찾아온 거냐고 물었다. 그녀는 내가 죽인 그놈을 잘 안다고 말했다. 혹시 죽은 그놈의 가족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아니라고 답했다. 그러면 왜 찾아온 거냐고 물었다. 그녀는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싶어서, 그래서 꼭 한번 찾아오고 싶었다고 답했다. 더 이상 난 묻지 않았다. 그녀에게서 수경이와 비슷한 향기가 났기 때문이다.


 그녀가 왔다 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남이가 찾아왔다. 수남이는 자꾸 병장이라는 호칭을 붙여가며 건강은 괜찮냐고 물어왔다. 언제 적 병장이냐며 편하게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그리고 난 수남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군대 시절 괴롭히고 때려서 미안하다고. 수남이는 손사래를 치며 오히려 내 상태를 걱정해 줬다. 군대 시절에도 느꼈지만 심성이 착한 녀석이다. 악마가 되기 전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운명의 소용돌이와 굴레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도 아버지가 망하지 않았더라면, 어머니가 집을 나가지 않았더라면 수남이처럼 평범하게 살지 않았을까? 어차피 돌이킬 순 없었다. 난 사람을 죽인 응당의 죗값을 톡톡히 치러야 다. 그게 나의 운명이다. 면회시간이 끝나가자 수남이는 다음에 또 오겠다고 한다. 살인자랑 엮여봤자 네 인생만 종치니 더 이상 찾아오지 말라고 했다. 너만의 행복한 삶을 살아나가라고 했다. 수남이가 눈물을 흘리며 돌아섰다. 그가 나가고 나서 어느새 내 눈가에도 눈물 한 방울이 고여 낙하를 준비하고 있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눈물을 흘려본 지가 언제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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