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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끔찍스러운 촉수에 목이 감겨
노예처럼 굴종하는 삶을 미덕이라 신봉하며
고통을 쾌락처럼 즐기던 나는
정서적 마조히스트나 다름없었다.
우둘투둘한 돌부리가 내 삶의 표면을 할퀴어
남루한 옷가지에 피비린내가 스며드는 데도
나는 그 같은 삶을 인생의 실체라 착각했다.
가끔씩 현실이 인심 좋게 던져주는 사탕 하나를
행복의 전부라 맹신하고
덥석 주워 날름 입 안에 털었다.
그 잠시잠깐의 달콤함에 영혼을 빼앗긴 채
이만하면 살 만한 인생이라 철석같이 믿었다.
하. 지. 만.
현실은 늘 사탕과 당근만을 던져주진 않았다.
학대를 일삼는 폭력적인 가부장처럼
오히려 채찍을 드는 날이 셀 수 없었다.
현실의 무자비한 폭력에
변변한 저항도 못해보고
고통에 몸서리치며
아픔의 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무기력하게 기다릴 뿐이었다.
그러다가 불. 현. 듯.
내 영혼의 우물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자유 의지 하나가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더니
어둑해진 내 마음의 밤하늘에 둥실 떠올랐다.
그 모양은 흡사
아직은 꽉 차지 않은 이지러진 달 한 조각과 같았다.
아슴푸레한 빛을 내뿜는 달이 내게 물었다.
너는 지금까지 네가 걸어온 길이
진짜 너의 길이라고 믿고 있는 거냐고.
너무나 당연시했던 삶의 과정과 순간들이 어쩌면
거짓말쟁이 현실이 위장해 놓은
장난스러운 허상에 불과할 수 있다고.
너의 의지에게, 너의 욕망에게
한 번이라도, 단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있었냐고.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뭐지?'
난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 대답할 자격이 없었다.
시침이 3만 번 넘게 회전하는 동안
그만큼 원숙하 인생에 닿아간다고 오인했던
그 바보 같은 무지렁이가 바로 나였음을
이. 제. 서. 야. 자각했다.
잘못된 길에 들어섰음에도
독불장군처럼 그 길만이 맞다고 자위했다.
남들이 가는 길에 동승하고선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다수의 생각과 행동은 당연히 옳은 줄만 알았다.
남들이 사는 삶을 추종하는 것이
인생의 정답인 줄 알았다.
나는 자기 주도적이고도 적극적으로,
미련한 힘과 나약한 의지로 나의 삶을
삭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국어교사다. 직업 특성상 컴퓨터를 사용할 일이 많다. 학교 행정 업무 처리나 생활기록부 작성, 시험 출제, 지각자 명단 정리, 짬짬이 시간 동안 글쓰기 등 노트북 자판은 쉴 새 없이 내 투박한 손가락과 물리적으로 교감한다. 키보드 자판 입장에선 약간 억울할 수도 있는 것이 자판을 두드릴수록 닳는 건 가해자인 내 지문이 아닌 피해자 격인 키보드 자판이었다. 교무실에서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 가는 눈매가 인상적인 학생 하나가 어느새 내 등 뒤에 와 있어 거칠고 투박한 목소리를 내 등 뒤에 꽂아 넣었다.
"샘! 키보드에 E자하고 R자가 지워졌어요!!!"
나는 평소에 잘 놀라는 편이라 학생의 갑작스러운 일갈에 심장이 덜컹 가라앉으며 어깨는 움찔거렸다. 지엄하신 스승을 놀라게 한 녀석의 방정맞은 입술을 찰싹 때려주고 싶은 욕구가 일었지만, 안타깝게도(?) 학생인권시대의 중심을 관통하는 지금 시대에선 그저 참는 것 외엔 도리가 없었다. 아무튼 상황 맥락도 건너뛰고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나 싶어 노트북 자판을 유심히 살펴봤다. 학생 말마따나 E자와 R자의 5시 방향 프린팅이 사이좋게 벗겨져 각각 F자와 P자로 눈속임하고 있었다. 아마 키보드 자판 주인이 독수리 타법을 구사하는 사람이었다면 끔찍한 재난이었을 상황이다. 일찍이 독수리 둥지를 빠져나온 나로선 그동안 모니터에만 편애 섞인 눈길을 보내고 키보드 자판의 절절한 구애는 외면을 해왔던 터라 여태껏 키보드 자판 글자가 지워진 줄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실종된 글자는 비단 E와 R뿐만이 아니었다. S나 D 등 프린팅이 벗겨진 글자는 여럿 있었다. 언제 이렇게 지워진 거지?
키보드 자판이 군데군데 지워진 사실을 인지한 순간, 피부에 와닿아 금방 스러지는 한 송이 연약한 눈꽃처럼 사소한 상실감이 상념 안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하지만 E와 R을 잃었다고 해서 타이핑을 하는데 지장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내 손가락과 키보드 자판은 각자의 시냅스를 뻗어 상호유기적인 관계를 맺은 지 여러 해가 지났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정보든 주관적인 사상이든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얹으면 둔탁하지만 중독성 있는 난타 연주가 시작되고, 연주에 동원된 글자들은 악보의 음표처럼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정갈하게 수놓는다. 자판이 지워졌다는 사실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만큼 나의 열 마디 섬섬옥수(?)는 나름의 숙련된 분업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누르고 싶은 자판 위치를 눈감고도 잘만 찾아가 적당한 압력을 행사한다.
그동안 키보드 자판은 몇 천, 몇 만 번의 두들김과 마찰을 묵묵히 감내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프린팅이 벗겨지긴 했어도 각 자판의 본질이 변했다고는 할 수 없다.
단순한 피상적 변화는 변치 않는 본질을 흐릴 수 없다.
각자의 위치를 사수하며 자판에 가해진 압력만큼 자신의 정체성을 화면으로 흘려보낸 키보드 자판에서, 나는 인생의 의미를 사유했다.
삶의 표면이 닳았다고 해서 우리 인생의 깊은 근원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닳는다는 것은 무언가를 향해 닿아가는 것은 아닐까.
이래저래 생각이 깊어질 때쯤, 색이 바랜 키보드 자판이 희미한 자판음을 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온다.
"내가 사라지는 게 슬퍼?"
"슬프다기보단 뭔가 허전하다는 감정이 더 적확한 표현일 거야."
"거참, 공감능력이 결여된 인간이군. 아무튼 네가 그렇게 죽어라 두들겨 대는 데 나라고 언제까지 버틸 수는 없잖아. 언젠가는 지워질 운명이었어. 너무 자책하지 마."
"미안해, 이렇게 지워질 줄 알았다면 진작에 자판 덮개라도 씌워줄 걸 그랬어. 그동안 너를 소홀히 대한 거 같아."
"이미 일어난 일이니 어쩔 수가 없지. 그건 그렇고 요즘 선생님들 몰래 에세이나 소설을 쓰던데, 그건 잘 돼가?"
"쉿! 누가 들으면 업무 태만으로 오해하겠어. 보통은 집에서 쓰지만 학교에선 처리해야 할 업무는 다 끝내놓고 틈틈이 쓰는 거야. 아직은 아장아장 수준이지만."
"즐거워? 글 쓰는 것 말이야."
"물론. 수업할 때는 그렇게 시간이 안 가는 것 같은데 글을 쓸 때는 나도 깜빡 놀란다니까. 시간이 삭제되는 기분이야."
"내 얘길 들어봐. 아마 나에게 자판 덮개를 씌웠더라면 너의 감촉을 온전히 느끼지 못했을 거야. 그동안 나에게 닿았던 너의 손가락 감촉은 사실 뜨겁고도 짜릿했어. 열심을 다해 일하는 너의 치열함과 아직은 미완이지만 열성을 다해 글을 쓰는 너의 내밀한 꿈 자락이 내게 고스란히 전해져 왔거든. 현실 삶의 영위와 네 인생의 궁극적인 완성을 위해서라면 난 얼마든지 닳아져도 괜찮아. 난 네 삶과 꿈 안에 뚜렷한 활자와 의미로 영원히 존재할 테니까. 난 그거면 족해. 그게 나의 존재 이유였던 거야. 안정적인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무언가를 향해 도전하는 네 삶에 작게나마 하나의 수단이 된 것만 같아서 난 만족해. 쉬지 않고 두드리다 보면 언젠가는 너의 꿈의 문도 열리겠지. 꿈을 꾼다는 것, 꿈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고 즐기는 것, 넌 잘 해내고 있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너의 호흡이 전해졌으면 좋겠어. 그들에게 보여줘. 도전하는 자가 무언가를 성취해 나가는 그 치열한 과정과 걸맞은 결과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