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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기 Nov 14. 2024

빨래 널 땐 빨래집게로 콕.

빨래집게가 건네는 몇 마디

 코흘리개 시절에 살았던 작은 주택엔 아담한 마당이 하나  딸려 있었다. 작디작은 화단에 뿌리를 내리고 웨딩드레스 같은 순백의 잎을 마당에 뿌렸던 백목련나무. 마당을 가로질러 팽팽하게 걸려 있는 로프 재질의 빨랫줄과 햇빛에 젖은 방울을 지면으로 뚝뚝 떨구며 널려있던 빨래들. 구석에는 연탄이 켜켜이 쌓여있고 각종 공구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퀴퀴한 창고. 비 오는 날은 우산을 쓰고 왕래해야 했던 푸세식 화장실. 아직 마모되지 않은 기억의 편린을 몽땅 꺼내어 흐릿하게나마 그려본 마당의 정경이다.


 주택에 살던 시절 난 비 오는 날이 달갑지 않았다. 우산을 쓰고 화장실을 드나들어야 했던 번거로움이 세상 귀찮았기 때문이다. 아마 어머니께서도 빨래 건조 속도를 늦추는 습도 때문에 비가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창창하게 내리쬐는 자연광에 빠삭하게 빨래를 말리는 날은 어머니의 마음에도 뽀송한 행복감이 찾아오지 않았을까. 하지만 햇볕에 빨래를 말리면 옷이 빳빳해짐과 동시에 거추장스러운 빨래집게자국이 남았다. 빨판상어의 등지느러미를 닮은 집게자국이 왠지 뭐에 물린 자국 같아 보기 거슬렸다. 


 대학교 1학년 때로 기억한다. 한적한 일요일 오후, 기숙사 룸메이트가 마침 외출을 나가 혼자 방을 쓰게 되었다. 은밀히 준비한 거사를 치르기에 적당한 날이다. 남들은 복코라고 하지만 난 뭉툭한 코가 독자적인 콤플렉스였던 지라 코에 빨래집게를 집어 놓으면 콧날이 오똑 세워져 좀더 날렵해 지지 않을까, 하는 혁신적인 생각을 품고 있던 터였다. 미리 서랍 속에 춰 놓았던 빨래집게를 꺼내 마침내 실행에 옮겼다. 빨래집게로 콧망울과 콧대를 집은 후 낮잠을 청했다. 고통의 강도가 약하진 않았지만 날씬해질 코를 생각하면 이 정도 아픔쯤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코가 되어 있을 거야. 코코코코코.'


  시간 후, 눈을 비비고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부리나케 신발장 거울 앞으로 종종걸음을 걸었다. 경건한 의식을 치르듯 숙연함을 손에 담아 빨래집게를 제거했다. 짜자잔.


 망... 했... 다.


 콧망울은 누구한테 한 대 얻어터지기라도 한 것처럼 부었고 코엔 온통 빨래집게자국이 흉물스럽게 남아 있었다. 거울 안에는 '코크니' 행성에서 불만을 품고 지구로 탈출외계인 하나가 날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사건 이후 내 코는 아직까지 붓기가 빠지지 않은 상태다. 아니, 더 커졌나? 어째 해가 갈수록 코가 1센티씩 자라나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은...


 무릇 건조대와 건조기가 등장하여 빨래꾼들의 근심을 한 시름 덜어주는 요즘이다. 실내에 건조대를 놓을 수 있는 적당한 공간만 확보된다면 하루에 몇 파트씩이라도 세탁기(탈수 기능이 있는)를 돌릴 수 있다. 여기에 건조기까지 구비된다면 더욱 건조에 속도가 붙는다. 건조기를 구매하기 전까지 아내는 실내 건조대에 집착했다. 안방, 거실, 앞베란다 등 건조대가 다리를 뻗을 수 있는 공간만 나오면 거리낌 없이 건조대 두세 개를 펼쳐 집안 곳곳의 지분을 잡아먹으며 빨래를 말렸다. 미관상 보기 안 좋아도 어쩔 수 없었다. 아내는 건조대에 널어놓은 빨래야말로 진정한 자연 가습기라며 착잡한 심정에 젖어 있는 날 위로하곤 했다. 그런데 장마철에는 가습이 아니라 제습이 필요할 것 같은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내 참기로 했다. 폭우가 쏟아져도 아내가 가습기라면 가습기인 것이다.  


 아기들 키우는 집에서 빨랫감이 많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지라 아내의 폭풍 세탁질에 군말을 다는 대신 곁에서 일감을 조용히 거들어 주는 것이 아침밥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는 처세술이다. 세탁 종료를 알리는 지옥의 종소리, 아니 경쾌한 멜로디가 집안 곳곳에 울려 퍼진다. 푹신한 침대에서 세상 편한 자세로 드러누워 드라마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고 있던 아내는 영혼이 없는 명령조로 "오빠, 빨래 다 됐어." 외친다. 국어교사인지라 간접 화법에 능숙한 나는 '그래서 어쩌라고?'가 아닌 아내의 말 속에 담긴 함의를 날카롭게 캐치한다. 당장 하던 일을 멈추고 세탁기로 달려가 탈수까지 완료된 몇 무더기의 세탁물을 집어와 성능 좋은 인공지능 로봇처럼 건조대 이곳저곳에 널기 시작한다. 바람이 틈탈 수 없는 실내이다 보니 빨래집게 따위는 당연히 필요가 없었다.


 하루는 퇴근 무렵 아파트 현관 초입에 들어서려던 순간, 같은 라인에 사는 5층 주민이 막 세탁한 듯한 큼지막한 이불을 베란다 난간에 걸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저러다 이불이 떨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괜한 오지랖이 찾아왔지만 5층 주민은 나의 헛된 참견을 비웃기라도 하듯 대형 빨래집게로 이불과 베란다 난간이 겹쳐지는 부분을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상이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근래의 기억을 다 뒤져봐도 빨래집게를 조우한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아파트가 상용화되고 건조대 및 건조기가 등장해 점차 사라져 가는 빨래집게를 마주하니 내게 묻어 있던 추억의 터럭 하나를 잃어버린 것 같은 상실감이 찾아왔다. 삐삐에 저장된 음성메시지를 듣기 위해 애타게 찾아다니던 공중전화부스가 사라져 가고 있는 것처럼.  


 위태로운 베란다 난간에서 중량이 꽤 나가 보이는 이불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는 빨래집게가 힘에 겨운 목소리로 말을 건네온다.


"아이고 힘들다. 어이, 빨래집게자국을 싫어했던 코흘리개 양반."


"에헤이, 코흘리개라니. 나도 이젠 엄연한 어른이라고. 비염 때문에 가끔 코를 흘리긴 하지만."


"시답잖은 소리는 여전하구먼. 지금은 꿈흘리개 아니야?"


"꿈흘리개라니?"


"꿈을 고이 간직하고 있냐고. 어딘가에 흘려버린 적은 없어? "


"아, 잠시 꿈을 잃었던 적이 있었지. 하지만 근래에 흘렸던 꿈을 다시 찾았고 이젠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부여잡고 있어."


"그래? 그런데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인데. 다시 부여잡은 그 꿈 말이야. 단단히 고정되어 있어? 날아가지 않을 만큼."


"꿈을 고정시킨다? 무슨 말이야?"


"내 얘길 들어봐. 옛날엔 집집마다 야외에 빨랫줄을 걸어놨잖아? 그 빨랫줄엔 샤워를 막 끝낸 옷가지나 신발 등이 널렸고 혹시 바람에 날아갈까 봐 내가 단단히 고정시켰지. 넌 집게 자국이 남는다며 나를 싫어했지만 빨래를 말리다가 바람이 거세게 불어온다고 가정해 봐. 최악의 상황은 걸려 있던 옷가지가 어딘가로 날아가 버린다거나, 혹은 다시 빨래를 해야 할 만큼 진흙탕에 빠져버리는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었어. 빨래는 그냥 빨랫줄에 널어놓은다고 해서 뽀송하게 마르는 게 아니야. 날아가지 않게 단단히 붙잡아 줬던 내가 있었기 때문에 화사한 태양빛을 고스란히 쬘 수 있었던 거라고. 너 말이야. 절망에 젖어 던 꿈을 다시 되찾았잖아? 그 꿈, 따사로운 햇빛에 말리고 있니? 꿈이 날아가지 않게 꿈을 단단히 붙들어 매고 있어? 더 이상 꿈이 도망가지 않게 확신도전과 인내의 빨래집게로 단단히 붙잡아야 희망의 햇빛을 받아 따스한 꿈 자락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야. 너의 꿈자락에 남은 빨래집게자국은 상처가 아닌, 어찌 보면 네가 꿈을 위해 그만큼 인내했다는 영광의 증표가 될 테니까. 완성을 위해선 아픔도 견뎌야 해. 내가 빨래에겐 하나의 뽀송한 꿈이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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