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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값어치를 하는 고생과 꿈을 콕 집어주는 빨래집게

3

by 이현기

3. 고생은 비싸지도 싸지도 않는, 딱 제값을 한다.


고생은 사서라도 해야 한다는 모순적인 말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왜 고생이라는 불닭소스맛 얼얼한 관념과 실천을

굳이 사서 매운 진저리를 쳐야 할까.


나이가 들어보니

어렴풋이 깨닫게 된 사실 하나.

젊었을 때의 고생은

삶의 기름진 토양이 되지만

나이가 들고 나서의 고생은

삶의 밑거름이 아니라

밑바닥 인생임을 입증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그런지

꿈을 잃어버렸다가

뒤늦게 꿈을 찾아 도전하는 요즘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고난과 고생의 연속이다.

이제까지 게을리 지낸 대가를

이제야 비싼 값을 주고 치르는 셈이다.

고등학교 수학 시간.

선생님 몰래 등빨 좋은 친구 뒤에 엄폐하여

유치 찬란한 소설 창작에 골몰했던

꿈 많던 문학 소년은

25년이란 세월을

사서 고생하기는커녕

헐값에 고생을 파는 일에만 몰두했다.

원초적인 유흥, 쾌락 욕구와 적당히 타협하며

먹고 싸고 자고 노는 일에만 충실했다.


'공허하지 않아? 꿈을 잃어버렸잖아.'


꿈을 잃는다는 건

결국 삶의 의미와 존재의 가치를

상실해 버린다는 걸

인생의 중턱을 넘어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남들보다 뒤처진 만큼

부지런히 달리지 않을 수 없다.


젊었을 때 못 샀던 고생들을

이젠 과소비할 때가 온 것이다.

마치 쿠팡 거래에 중독된 내 아내처럼

이젠 마구마구 고생을 사들이며

지난 인생의 허비가 만들어 놓은 낙서를

하나하나 지울 때가 온 것이다.


3-1. 빨래집게가 건네는 말


어렸을 적 살았던 다가구 주택엔 아담한 마당이 하나 딸려 있었다. 작디작은 화단에 뿌리를 내리고 웨딩드레스 같은 순백의 잎을 마당 곳곳에 뿌렸던 백목련나무. 마당을 가로질러 팽팽하게 걸려 있는 로프 재질의 빨랫줄. 햇빛에 젖은 땀방울을 지면으로 뚝뚝 떨구었던 빨래들. 퀴퀴하고 눅눅한 냄새가 왠지 중독적이었던 창고. 비 오는 날은 우산을 쓰고 왕래해야 했던 푸세식 야외 화장실. 아직 마모되지 않은 기억의 편린을 몽땅 꺼내어 희미하게나마 그려본 그 당시 마당의 정경이다.


그 집에 살 적엔 비 오는 날이 달갑지 않았다. 우산을 쓰고 화장실을 드나들어야 했던 번거로움이 세상 귀찮았기 때문이다. 아마 어머니께서도 빨래 건조 속도를 늦추는 비가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창창하게 내리쬐는 자연광에 빠삭하게 빨래를 말리는 날에는 어머니의 마음에도 뽀송한 행복감이 찾아오지 않았을까. 하지만 따가운 햇빛에 빨래를 말리면 옷이 빳빳해짐과 동시에 거추장스러운 빨래집게자국이 상흔처럼 남았다. 빨래집게자국이 남은 옷을 입으면 왠지 내가 빨래판이 된 느낌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였던가. 한적한 일요일 오후, 기숙사 룸메이트가 마침 외출을 나가 혼자 방에 남게 된 어느 날, 비밀스러운 거사를 준비했다. 남들은 나보고 복코라며 부러움인지 안쓰러움인지가 불분명한 위안을 건네지만, 난 뭉툭한 코가 독자적인 콤플렉스였던 지라 코에 빨래집게를 장시간 집어 놓으면 콧날이 오뚝 세워지지 않을까, 하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품고 있던 터였다. 마침 아무도 없는 시각에 미리 서랍 속에 감춰 놓았던 빨래집게 두 개를 꺼내 들어 콧망울과 콧대를 집은 후 알람을 맞춰놓고 낮잠을 잤다. 고통의 강도가 약하진 않았지만, 날씬해질 코를 생각하면 이 정도 아픔쯤은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그리고 기분 좋은 백일몽을 꿨다.


'잠에서 깨어나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코가 내 얼굴에 붙어 있을 거야. 코코코코코.'


한두 시간 후, 낮잠에서 깨자마자 기대감이 걸음을 재촉하여 신발장 앞 전신 거울 맞은편에 섰다. 내 손가락은 경건한 의식을 치르듯 숙연하게 빨래집게를 제거했다. 짜자잔.


"누구세요? 혹시 어렸을 적 잃어버렸던 못생긴 쌍둥이?"


콧망울은 누구한테 한 대 얻어터지기라도 한 것처럼 부어 있었고 코엔 빨판상어의 지느러미 같은 빨래집게자국이 흉물스럽게 남아 있었다. 거울 안에는 '코크니' 행성에 불만을 품고 지구로 탈출한 외계인 하나가 날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건 이후 내 코는 아직까지 붓기가 빠지지 않은 상태다. 아니, 더 커졌나? 어째 해가 갈수록 코의 부피와 질량이 계속 늘어나는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은... 한가할 때 '코크니병'이라는 의학적 진단 사례가 있나 찾아봐야겠다.


무릇 건조대와 건조기가 등장하여 빨래꾼들의 근심을 한 시름 덜어주는 요즘이다. 건조대를 놓을 수 있는 적당한 공간만 확보된다면 하루에 몇 파트씩이라도 세탁기(탈수 기능이 있는)를 돌릴 수 있다. 여기에 건조기까지 구비된다면 더욱 건조에 속도가 붙는다. 건조기를 구매하기 전까지 아내는 유독 실내 건조대에 집착했다. 안방, 거실, 앞베란다 등 건조대의 다리를 펼칠 수 있는 공간만 생기면 거리낌 없이 건조대 두세 개를 집안 곳곳에 전시했다. 건조대로 인해 생활 동선이 꼬이고 미관상 보기 안 좋아도 어쩔 수 없다. 파격적인 발상으로 미술관에 변기를 전시한 마르셀 뒤샹처럼 아내 역시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널브러진 건조대를 다다이즘(Dadaism)의 한 경향이라고 우기면 나도 할 말이 없다. 비싼 돈 주고 발품을 팔아 미술관에 방문하여 현대 개념 미술 작품들을 관람할 필요가 없는 나는 더없이 행복하기만 하다. 아내는 건조대에 널어놓은 빨래야말로 진정한 자연 가습기라며 착잡한 심정에 젖어 있는 날 위로하곤 했다. 그런데 장마철에는 가습이 아니라 제습이 필요할 것 같은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내 참을 수밖에 없다. 폭우가 쏟아져도 아내가 건조하다고 하면 건조한 것이다.


아기를 키우는 집에서 빨랫감이 많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지라 아내의 폭풍 세탁질에 군말을 다는 대신 곁에서 일감을 조용히 거들어 주는 것이 아침밥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는 요즘 남편의 처세술이다. 세탁 종료를 알리는 지옥의 종소리, 아니 경쾌한 멜로디가 집안 곳곳에 울려 퍼진다. 푹신한 침대에서 세상 편한 자세로 드러누워 드라마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고 있던 아내는 상관이 부하를 다루는 듯한 명령조로 "오빠, 빨래 다 됐어."를 외친다. 국어교사인지라 간접 화법에 능숙한 나는 '그래서 어쩌라고?'가 아닌 아내의 말속에 담긴 복종의 함의를 날카롭게 캐치한다. 당장 하던 일을 멈추고 세탁기로 달려가 탈수까지 완료된 몇 무더기의 세탁물을 집어와 성능 좋은 인공지능 로봇처럼 건조대 이곳저곳에 널기 시작한다. 바람이 틈탈 수 없는 실내이다 보니 굳이 빨래집게는 필요하지 않았다.


하루는 일을 마치고 집 근처 카페에 들러 작가 코스프레를 하고 나서 아파트 현관 초입에 들어서려던 순간이었다. 같은 라인에 사는 5층 주민이 막 세탁한 듯한 큼지막한 이불을 베란다 난간에 걸고 있었다. 저러다 이불이 떨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괜한 오지랖이 찾아왔지만, 5층 주민은 나의 헛된 참견을 비웃기라도 하듯 대형 빨래집게로 이불과 베란다 난간이 겹쳐지는 부분을 단단히 고정시켰다. 사소한 일상이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근래의 기억을 다 뒤져봐도 빨래집게를 조우한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아파트라는 주거 공간이 상용화되고 건조대 및 건조기가 등장하며 점차 사라져 가는 빨래집게를 마주하니 추억의 터럭 하나를 잃어버린 것 같은 쓸쓸함이 찾아왔다. 삐삐에 저장된 음성메시지를 듣기 위해 애타게 찾아다니던 공중전화부스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위태로운 베란다 난간에서 중량이 꽤 나가 보이는 이불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는 빨래집게가 힘에 겨운 목소리로 말을 건네온다.


"아이고 힘들다. 어이, 빨래집게자국을 싫어했던 코크니병 환자 양반."


"에헤이, 코크니병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 병명이야. 뭐, 가끔 비염 때문에 코를 흘리긴 하지만"


"시답잖은 소리는 여전하구먼. 지금은 꿈흘리개 아니야?"


"꿈흘리개라니?"


"꿈을 고이 간직하고 있냐고. 어딘가에 흘려버린 적은 없어?"


"아, 잠시 꿈을 잃었던 적이 있었지. 하지만 근래에 흘렸던 꿈을 다시 주워 다신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꼭 부여잡고 있는 중이지."


"그래? 그런데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인데. 다시 부여잡은 그 꿈 말이야. 단단히 고정되어 있어? 날아가지 않을 만큼 말이야."


"꿈을 고정시킨다니? 무슨 말이야?"


"내 얘길 들어봐. 옛날엔 집집마다 야외에 빨랫줄을 걸어놨잖아? 그 빨랫줄엔 샤워를 막 끝낸 옷가지나 신발 등이 널렸고 혹시 바람에 날아갈까 봐 나는 그것들을 단단히 고정시켰지. 넌 집게 자국이 남는다며 나를 싫어했지만 집게 없이 빨래를 넣어놓은 상태에서 거센 바람이 불어온다고 생각해 봐. 걸려 있던 옷가지가 어딘가로 날아가 버린다거나, 더러운 바닥에 떨어지는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어. 빨래는 그냥 빨랫줄에 널어놓은다고 해서 저절로 마르는 게 아니야. 빨래가 날아가지 않도록 단단히 붙잡아 줬던 내가 있었기에 바람에 빨래를 도둑맞지 않고 화사한 태양빛에 선텐을 할 수 있었던 거라고. 절망에 젖어 가던 꿈을 최근에 다시 되찾았다고 했잖아? 그 꿈, 따사로운 햇빛에 말리고는 있니? 꿈이 날아가지 않게 집게로 단단히 붙들어 매고 있냐는 말이야. 더 이상 꿈이 도망가지 않게 확신과 도전과 인내의 빨래집게로 단단히 붙잡아야 희망의 햇빛을 받으며 따스한 꿈 자락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야. 너의 꿈자락에 남은 빨래집게자국은 상처가 아닌, 어찌 보면 네가 꿈을 위해 그만큼 인내했다는 영광의 증표가 될 테니까. 완성을 위해선 아픔도 견뎌야 하는 게 인생의 본질이야. 내가 빨래에겐 하나의 뽀송한 꿈이었듯이. 다시 꿈을 찾았다니 정말 다행이야. 어떤 바람이 불어와도 단단히 붙들어 매길. 넌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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