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울수록 더러워지는 지우개
칠판지우개가 건네는 몇 마디
나는 폭력 교사다. 도덕성과 사회성이 결여된 학생들을 보면 감당할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오른다.
수업 시작을 알리던 종소리는 공기 중에 뒤섞이어 진작에 자취를 잃었고 교실에 버젓이 교사가 들어와 있음에도 칠판엔 전 시간에 써놓은 듯한 수학공식이 제집인양 남아 있었고, 학생들은 집단 최면에라도 걸린 듯 죄다 책상에 엎드려 주무시고 계셨다. 기절한 학생들 중엔 쉬는 시간 동안 칠판을 지웠어야 할 주번도 섞여 있었다. 학생들을 복날에 개 잡듯 패던 1990년대 교사독재시절을 예찬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교사와 학생 간에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이라는 게 있다. 정수리 근방에 뿌리내린 모낭에서부터 머리털 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야, 이 Baby(ㅅㄲ)들아! 안 일어나? 주번 Baby(ㅅㄲ), 앞으로 튀어나와!"
나의 갑작스러운 일갈에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던 학생들이 저마다 느릿느릿 동면에서 깨어났고 주번 Baby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갈지(之) 자 스텝을 밟으며 앞으로 기어 나왔다. 한두 번도 아니고 도저히 오늘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이 기회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 학생인권조례든 학생인권종례든 그딴 건 필요 없다. 남학생들에겐 그저 폭력이 약이다.
"엎드려뻗쳐!!! Baby야."
주번 Baby는 그제야 자신에게 닥칠 뼈아픈 미래를 예감한 듯 교실 한 구석에 조용히 엎드려뻗쳤다. 나는 그동안 청소 도구함에서 짱짱해 보이는 청소용 빗자루 한 대를 꺼내 왔다. 빗자루를 뒤집어 잡은 후 손아귀에 기를 모아 주번 Baby의 엉덩이를 향해 내 내면에 쌓여 있던 쓰레기 같은 감정을 몽땅 쏟아부었다. '퍽, 퍽, 퍽.'
"주번 활동 똑바로 안 해?"
"선생님, 잘못했습니다. 다신 안 그러겠습니다."
"목소리가 그것밖에 안 나와? 모기야? 앵앵거리게."
"잘! 못! 했! 습! 니! 다!"
안타깝지만(?) 지금까지의 장면은 나만의 슬픈 백일몽이었다. 나는 실은 비폭력 교사다. 도덕성과 사회성이 결여된 학생들을 보면 감당할 수 있는 분노를 충분히 잠재울 수 있다. 고약한 마녀의 저주에 걸려 꿈길을 헤매고 있는 학생들과 수학공식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칠판 장면까지가 실제적인 현실이고, 이후의 체벌 장면은 폭력적인 성향의 무의식이 내 허락도 없이 쓴 엉뚱한 각본이었다. 다시 냉혹한 현실로 돌아와 보자면...
"칠판이 더럽네? 주번 누구냐? 나와서 닦아라."
"샘, 주번 자요. 샘이 앞에 계시니까 샘이 지우세요."
"주번은 주무시는구나. 그래, 샘이 지울게."
내가 학창 시절 때만 하더라도 자기감정대로 몸이 반응하며 무소불위의 폭력을 휘둘렀던 선생님이 몇 분 계셨지만, 작금의 현실에서 교사는 학생들이 던지는 감정의 공을 일일이 받아주는 포수 글러브 신세다. 학생들이 던지는 패대기볼도, 각이 큰 변화구도, 때론 가슴 아프게 날아오는 묵직한 돌직구도 묵묵히 받아내야 한다. 지루한 수학 수업을 듣느라 많이 힘들었을 거야, 하는 억지 배려를 이성에 욱여넣고 칠판지우개로 손수 칠판을 지워나갔다. 그런데 지우면 지울수록 칠판은 하얀 분칠을 더해가며 더욱 더러워졌다. 그래, 자느라고 칠판지우개를 안 빨아놨을 수도 있지. 괜찮아. 난 폭력을 삼키고 달관을 뱉었다.
"오호, 지우면 지울수록 더러워지네. 역설적인 지우개구만."
"오, 샘. 실생활과 관련 지어 역설법을 설명하니 귀에 쏙쏙 들어와요. 스타강사 같아요."
"응, 그건 직유법."
"우와! 샘은 우리 학교의 설민석(한국사 스타강사)."
"응, 그건 은유법."
"우어어어! 우윳빛깔 이현기! 스타강사 이현기!"
의도한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까 눈 깜빡할 새 문학의 주요 수사법을 세 개나 설명해 버렸다. 허허, 이것이야말로 살아있는 현장수업이 아니겠는가. 부득이하게 마녀의 저주를 받아 깊은 잠에 빠지는 통에 칠판도 안 지워놓은 아이들이지만, 교과서 지문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수사법을 끌어와 설명하니 수업 분위기도 살고 학생들의 가늘었던 동공 지름이 조금은 커진 느낌이다.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내가 가르쳐야 할 Baby들이라는 애정 어린 상념이 마음에 스민다. 우주의 이치이자 만고의 진리 같기도 하지만 일손이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굳이 지목하지 않아도 꼭 먼저 나서는 성실한 학생이 반에 한두 명쯤은 있다. 결국 주번이 아닌, 도덕적인 성향이 강한 학생 한 명이 나서서 자기가 빨아 오겠다며 분필 지우개를 들고나갔다. 새로 빨아온 지우개로 칠판을 지우니 닦인 부분에 내 모습이 비칠 만큼 칠판은 맑고 투명한 색감의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책상도 깨끗해야 공부할 맛이 나듯이 칠판이 깨끗하니 수업할 맛도 허기진 위장의 식욕처럼 돋아났다.
본연의 임무를 마치고 칠판 한 구석에 정갈하게 놓여 있는 칠판지우개가 날 향해 살뜰하게 말을 건네온다.
"어이, 교사 양반. 학생인권시대에 고생이 많아. 예전 같았으면 그 주번 학생은 바로 빠따감이었는데 말이지."
"시대가 많이 변했지. 해가 갈수록 학교 생활이 힘들어지네. 이거 원, 더러운 꼴 안 보려면 선생질을 그만두던가 해야지."
"교사 때려치우면 딱히 밥벌이는 있고? 칠판지우개 공장이라도 들어가게?"
"전생에 새끼줄이었어? 그런 식으로 비꼬지 마. 단순히 푸념한 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쓰나. 센스 없게."
"센스고 나발이고 내 얘길 들어봐. 내가 더러우니까 아무리 칠판을 닦아도 더 더러워질 뿐, 수업할 맛도 안 나고 짜증만 났지? 나도 자주 빨아줘야 칠판을 깨끗하게 지울 수 있듯이 우리의 내면도 자주 닦아줘야 세상을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거라고. 네 지난날을 곰곰이 떠올려봐. 짜증, 분노, 우울, 시기 등의 감정에 마음을 뺏긴 채 살았는지, 아니면 평안, 기쁨, 행복 등의 감정을 누리며 살았는지 말이야. 만약 부정적인 방향으로 감정의 추가 기울었다면 너의 악감정들은 무의식 중에 타인에게도 전파되어 그의 내면을 더럽혔을 거야. 마치 더러운 칠판지우개로 칠판을 닦는 상황처럼 말이지. 반면 긍정적인 마인드로 남과 교류해 왔다면 선하고 발전적인 감정은 타인에게도 전이되어 상대방의 내면을 깨끗하고 건강하게 만들어줬을 테지. 내겐 이런 류의 메타포가 담겨 있는 거라고. 잘 기억해. 감정에는 악한 영향력과 선한 영향력이라는 양극적인 면모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어. 감정이란 건 전염력이 강해 어떤 감정을 타인에게 자주 표출하냐에 따라서 너의 정체성이 굳어지는 거야. 너는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로 기능하는 지우개야? 상대방의 더러워진 마음을 깨끗하게 닦아주는 지우개? 아니면 상대방의 마음을 더욱 더럽히는 지우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