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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치는 해류에 휘말려 정처 없이 표류하는
나약하고 위태한 종이배처럼
이러 갔다, 저리 갔다.
줏대 없이 흔들리는 나약한 관념과
마모되어 가는 감정.
내 마음이 그랬다.
내 마음은 상황과 맥락에 따라
일관성을 잃어버리고
가을바람에 무기력하게 몸을 내맡긴 낙엽처럼
방향 없이 줏대 없이 바람결을 따라 흩날렸다.
타인이 건네는 사과에는
무관용의 법칙을 거들먹거렸고
나는 정작 관용의 법칙을 들이대며
타인의 용서를 강요했다.
누굴 쉬이 용서하지 못했던 주제에
남은 나를 진정으로 용서해 주길 바랐다.
나는, 내 마음은
철저한 기회주의자이자 하찮은 이기주의자였다.
이렇게나 보잘것없는 내 마음에
신물이 났다.
'누군가를 용서하는 게 죽기보다 어려운 것일까'
아무리 마음과 감정을 다독여봐도
용서는 쉽게 발아되지 않았다.
그 사람에 대한 분노와 원망은
용서를 쉽게 내어주지 않았다.
그 사람은 악의를 가지고 너에게 상처를 준거야,라는
적의적인 속삭임에
곯은 상처는 아물지 않았고
마음밭은 오염에 지배되었다.
내가 왜 당신 때문에 이렇게나 힘들어해야 돼?
네 까짓 게 뭔데 날 이리 비참하게 만드는 거야?
처참한 내 마음을 당신은 알기나 해?
임계점을 뚫고 나온 용암 같은 감정은
어떻게 해야 사그라지는 걸까.
남에게 준 상처는 생각지도 못하고
오직 나만 생각하는 나의 이기주의와 하찮은 성정은
언제쯤 정상으로 복구될까.
볼품없는 외모와는 다르게 심성은 보통 이상이라 평소 말을 예쁘게 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간혹 불순한 생각의 홍수가 범람하기 시작하면 견고히 쌓아놨던 말맵시의 둑이 무너지기도 한다. 하루는 가까이 지내던 지인과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일상의 대화를 나누고 기분 좋게 헤어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다음날, 지인은 심각한 표정을 싣고 날 찾아오더니 지난 대화의 한 꼬투리를 꼬집으며 정식으로 사과를 요청했다. 내 입에서 나온 한 마디의 불결한 말 때문에 간밤에 한숨도 못 잤다는 말까지 덧붙이니 사려심 많은 내 심장은 죄의식의 밑바닥까지 덜컹 가라앉고 말았다. 진짜 악의성은 1도 없었고 별생각 없이 농담조로 건넨 말인데...
악의가 일절 담기지 않은 가벼운 말일지라도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관점에 따라선 상처로 남을 수도, 때론 불면증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독이 묻은 내 표현력과 방정맞은 입을 탓하며 지인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다. 지인은 어두운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차갑게 돌아섰다. 그는 진정 날 용서해 준 것일까? 뒤끝이 영 개운치 않았다. 사과를 찝찝한 감정은 쉬이 누그러지지 않고 나의 하루를 계속 따라다녔다. 아무도 없는 건물 뒤편에 숨어들어 홀로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말실수를 처음 해본 것은 아니었지만, 특히 이 사건은 내 언어 습관을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가까운 지인이다 보니 상호 간에 마음 타격이 컸을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언어를 마구잡이로 분출하지 않고 이성의 검열을 여러 번 거치는 버릇이 생겼다. 말은 한 번 쏟아내면 수습하기 힘들기에 장기판 앞에서 숙고하는 고수처럼 신중하게 언어를 고르고 또 골랐다. 내가 소유한 말꾸러미 안에 담긴 무수한 언어들 입장에선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무슨 얼토당토않은 언론 검열이라며 시대착오적 불평불만을 쏟아내겠지만, 관계의 질서와 평화를 위해서 때론 규칙과 규율도 필요한 법이다. 가뜩이나 말조심을 하는 성격인데 더 무람한 성격으로 변모해 버렸다. 그리고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언어 선택에 유의해야 한다는 점도 새삼 깨달았다.
진정한 용서가 무엇인지 실천으로 보여준 분이 있었다. 6.25 전쟁 발발 후 교회에 끝까지 남아 목회를 하시다 북한군에 붙들려 순교하신 손양원 목사라는 분이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옥고를 치르는 등 기독교적 믿음을 굳건히 지켜온 그에게 신은 구약의 욥처럼 신앙의 검증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1948년 여수•순천 사건 때 좌익당원들이 그의 집에 찾아와 두 아들을 살해하고 만 것이다.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감히 형용할 수 없는 참담함이 그에게 찾아왔으리라. 하지만 손양원 목사는 아들들을 살해한 안재선 씨의 구명에 앞장을 섰고 심지어 그를 양자로 삼는 관용의 정신을 몸소 실천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었다. 현실적으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 같았고, 나 같으면 절대 그와 같은 선택을 못했을 거라고, 내 아들을 죽인 그 살인자를 평생 저주하며 살았을 거라고 말이다.
아직도 내 맘 속에는 쉽게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이 몇 있다. 아무리 마음을 다스려 봐도 용서의 감정은 마음의 심연 뒤편에 꽁꽁 숨어 있어 당최 나타날 기미가 없다. 날이 선 파편처럼 내 폐부 곳곳에 박혀 있는 미움과 원망, 분노의 감정을 족집게로 새치 뽑듯 쏙 빼내는 일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머리로는 용서를 하려 해 봐도 굳게 닫힌 마음은 도저히 문을 열어줄 기색이 없다. 그만큼 누군가를 용서하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올해의 마지막 월급날, 사랑하는 가족과 오랜만에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러 동네 갈빗집을 방문했다. 입장할 땐 허기가 내 눈을 멀게 한 탓에 차마 인지하지 못했는데, 볼록한 배를 부여잡고 나오니 식당 입구에 커피 자판기 여러 대가 버젓이 놓여 있는 걸 발견했다. 평소 체형 유지를 위해 자판기 커피를 잘 안 마시지만, 식사를 한 손님에겐 공짜로 제공된다는 문구는 기어이 내 손가락을 움직여 밀크 커피 버튼을 누르게 만들었다. 하, 너무 공짜 좋아하면 안 되는데...
커피 자판기는 낡은 기계음을 내며 종이컵 안에 달짝지근한 밀크 커피를 쪼르르 내리더니 용서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는 날 향해 달큼한 향을 풍기며 말을 건네 온다.
"평소에는 살찐다고 밀크 커피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양반이 오늘은 웬일로 스스럼없이 밀크 커피를 마셔댈까?"
"간헐적인 당 섭취는 삶의 활력을 가져오니까. 뭐 결정적으로 공짜인 이유가 크지만."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나 봐. 가령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해서 마음이 찢겨나가는 경험 같은."
"어떻게 안 거야? 자판기 주제에 대단한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도 사유를 이끌어 내는 요소나 배울 것이 있어. 날 너무 무시하지 마."
"미안해. 오랜만에 밀크 커피를 마셨더니 흥분해서 말실수를 해버렸네. 이 경박한 입술이여."
"내 얘길 들어 봐. 커피 가루에 물을 섞으면 쓰디쓴 에스프레소가 되지만 물을 더 부으면 아메리카노가, 우유를 섞으면 라테가, 거기에 설탕이나 믹스까지 넣으면 달짝지근한 밀크 커피가 돼. 이렇듯 어둡고 쓰기만 한 마음에 어떤 재료를 섞느냐에 따라 농도와 당도는 변하는 거야. 물론 커피 가루에 뭘 섞든 특유의 쓴 맛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듯 완벽한 용서라는 것도 어찌 보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용서는 맺음이 아니라 과정이야. 용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맘 속에는 여전히 미움과 원망 등의 감정이 불순물처럼 가라앉아 있어. 왜 내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하냐는 분한 생각이 잠잠했던 마음을 쥐어 잡고 흔들어 버리면 애써 가라앉혀 놓은 감정의 불순물이 이리저리 뒤섞이며 마음의 탁도가 높아질 뿐이지. 용서하는 행위가 쉽다고는 말하지 않을게. 하지만 용서는 결국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자유롭게 한다는 점은 알아줬으면 좋겠어. 자신을 해방시키는 자유. 용서는 감정 다스림이 아니라 일종의 무거운 결단이기 때문이지. 우리가 진정 미워해야 하는 대상은 나에게 상처 준 상대방이 아니라, 남을 쉽게 용서하지 못하는 너의 성마른 자존심이야. 쉬이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넌 분명 해낼 수 있을 거야. 넌 누구보다 마음속에 포근한 담요를 지니고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