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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피를 가진 존재와 L형 혈액형의 출현

27

by 이현기

27. 이기적 유전자가 담긴 혈액


남들의 안타까운 불행이

다행스럽게도 내 불행은

아니라 안도한 적이 많았다.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그들의 불행을

나는 다른 세계에서 일어나는

그들만의 불운이라고 여겼다.

이기적이게도.


학용품을 빌려달라는 친구의 소소한 부탁을

차마 못 돌려봤을까 봐 냉정하게 거절했다.

일 좀 도와달라는 동료의 호소를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냉담하게 뿌리쳤다.

아이들과 놀아달라는 아내의 간청을

그저 피곤하다는 이유로 차갑게 외면했다.

난 그런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모든 시간과 공간, 물질과 관념이

내 것이라는 생각은

뜨거운 심장 따위 들어있지 않는

차가운 잉여인간으로

나의 형태를 절각하고 있었다.

마음의 살을 찌우는 대신

마음의 한켠을 조금씩 절각해 나가다 보니

공의와 정의가 사라진

옹졸함만이 남았다.


'피는 식어버리는 순간, 더 이상 흐르지 않아.'


뜨듯한 혈액이 몸 구석구석을 순환하는 데도

나는 그 따스한 피를

선량함으로 흘려보내지 않았다.

피가 온몸을 순환하듯

도움의 손길도 세상을 순환한다는

그 명징한 이치를

나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심장은 생존에 필요하기도 하지만

공생에도 필요하다는 것을

난 왜 몰랐을까.



27-1. 헌혈차가 건네는 말


집에서 직장까지는 도보로 15분 정도 거리이다. 난 매일 걸어서 출근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출근길 교통 체증에서 자유로운 편이지만, 등굣길 학생 체증엔 조금 시달린다. 집 가까이 직장이 있다는 것은 음료수 사달라고 떽떽거리는 학생들을 마주치지 않은 이상 얼마나 사소하고도 긴밀한 행복이던가. 직장을 가기 위해선 도로 위의 가교처럼 놓여 있는 육교 하나 통과해야 한다. 육교 위엔 가끔 초라한 행색을 한 아저씨 한 분이 박스를 깔고 앉아 구걸을 하셨다. 날마다 계시지 않는 걸로 봐선 특정한 날에 아파트 정문 앞에 찾아오는 푸드트럭처럼 여기저기 자리를 옮겨 다니시는 듯했다.


그분 앞에는 뚜껑이 따진 대형 참치 캔 하나가 외로운 주인을 지키는 반려동물마냥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물론 캔 안에 참치는 없다. 누군가의 주머니 속에서 나왔을 법한 동전 몇 개, 혹은 천 원짜리 지폐가 황량한 참치 캔의 공백을 처연하게 메꾸고 있을 뿐이었다. 육교 위에서 그분을 마주치는 날이면 자동반사적으로 지갑을 열어 천 원짜리 한 장을 캔 안에 조심히 넣어드리고 직장으로 향하곤 했다. 그분께선 어눌한 발음과 희미한 목소리로 고맙다는 뉘앙스의 말을 건넸다. 누군가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듣는 건 이 세상이 살 만하다는 또 하나의 숭고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고작 천 원짜리 한 장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감사의 언어를 돌려받는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게 이득이다.


하루는 지갑 안에 만 원짜리만 들어 있었던 날도 있었다. 한 달 용돈과 내 소비 습관을 감안했을 때 만 원권 지폐를 기부(?)한다는 건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다섯 잔과 맞바꿀 용기가 필요한 결심이었다. 궁색한 소시민은 이타심을 갖추지 못한 소시오패스 흉내를 내며 아저씨와 참치 캔을 무심히 통과했지만, 내딛는 발자국마다 무거운 마음이 찍히는 걸 보니 난 아무래도 공감 능력이 결여된 반사회적 인간 유형은 아닌 듯했다. 기어이 육교 아래에 있는 편의점에서 캔 커피 하나를 사고 돈을 거슬러 받아 왔던 길을 되돌아가 천 원짜리 한 장을 넣고 돌아서는 순간, 마음의 무게는 중량에서 경량으로 탈바꿈했다. 요즘 참치 캔 아저씨는 어딜 가셨는지 몇 년 전부턴 도통 보이지 않는다. 그저 어딘가에서 따순 식사를 하시며 몸 건강히 잘 지내시길 바랄 뿐이다.


나에겐 기묘한 습관 하나가 있다. 길을 걷다가 알파벳을 발견하면 본래의 뜻과는 상관없이 내 자의적으로 유치한 의미를 붙여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LH아파트를 발견하면 사랑을 갈구하는 내 무의식이 Love House라는 단어를 의식의 화면으로 송출한다. 다른 방식의 작명이긴 하지만 KB은행 간판을 발견하면 국밥을 사랑하는 내 식성은, 국밥 중에서도 특히 순대국밥을 연상한다. 요즘엔 체중 유지를 위해 가급적 국밥을 끊고 있지만 순대국밥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도톰하게 썰린 순대들은 일단 국밥에서 꺼내 따로 식혀두고 취향에 따라 새우젓이나 들깨 가루를 적당량 덜어 국밥에 투하하면... 국밥 얘길 하자면 끝이 없으니 순대 국밥 예찬은 이쯤에서 그만두고, 참고로 LH는 한국토지주택공사(Land+House)의 약자이다.


우리의 생물학적 혈액형은 대표적으로는 A형, B형, AB형, O형이 있다. 혈액형과 별자리를 사람의 성향과 깊게 관련짓는 분들도 있지만, 난 그런 것들을 잘 믿지 않는 부류의 인간이다.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향을 구분 짓게 되면 인류를 고작 4가지 종류로 뭉텅거릴 수 있다는 논리인데, 이런 사분법적인 구획은 억지논리라고 생각한다. 80억 인류는 저마다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독자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B형 남자다. 아마 혈액형과 인간의 성향과의 상관관계를 철석같이 믿는 사람이라면 자칫 나를 나쁜 남자라 오인하겠지만, 사실 난 그 반대에 가깝다. 착하고 잘생... 아니 그냥 착한 남자에 속한다. 비록 생물학적 혈액형은 B형이지만 내면의 혈액형은 L(Love) 형이고 싶다. 사랑의 피가 흐르는 인간이 되고 싶다. 우린 각자의 생물학적 혈액형은 다르지만 내면의 혈액형은 같아질 수도 있다. 모두가 L형 공동체 마을에 입주한다면 이 지구촌은 하나의 Love House가 되어 좀 더 살 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대한적십자사는 일 년에 한 번씩 학교를 방문하여 헌혈차를 대동한 헌혈캠페인을 펼친다. 나도 비교적 피가 깨끗했던 젊은 시절에는 공짜영화표를 얻기 위한 얄팍한 목적으로 가끔 헌혈을 했었다. 이젠 피가 절실히 필요한 누군가를 위해 탁해질 대로 탁해진 내 피를 건네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 헌혈을 잘하지 않지만, 손수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헌혈차로 입장하는 학생들을 볼 때면 대견한 마음이 링거액처럼 내 혈관 속으로 파고드는 느낌이다.


수업을 째고 헌혈을 받겠다는 학생들로 붐비는 헌혈차가 피비린내(?) 나는 목소리로 말을 건네온다.


"고지혈증에 시달리는 선생, 건강은 괜찮아?"


"말은 똑바로 합시다. 고지혈증에 시달렸던 적이 있었지. 지금은 말끔하게 사라졌어. 건강검진 결과 보여줘?"


"내 말은, 생물학적 고지혈증이 아니야. 네 혈액 속에 녹아 있는 탁한 관념을 말하는 거야."


"내 혈액에 탁한 관념이 흐른다고?"


"그래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그저 깨끗하지 않은 마음이랄까.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아직까지 넌 소극적 친절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


"소극적 친절이라."


"너는 어려움을 인지했을 때만 도움을 주려고 나서는 경향이지. 아예 친절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적극적 친절로까지 나아간다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며 나름 선량하게 살아온 것 같은데... 조금 충격적이다. 친절에도 소극적이니, 적극적이니 하는 개념이 있다는 것이."


"내 얘길 들어 봐. 이웃에 관심을 쏟는 너의 마음은 충분히 따뜻해. 이웃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작은 힘이 될 수 있지. 이웃을 향한 무관심이야말로 개인주의를 넘어선 지극한 이기심이야. 이웃을 사랑한다는 건 고장 난 자판기와도 같아. 100원을 넣으면 돈을 삼키는 경우도 있지만, 때론 200원, 500원짜리를 쏟아내기도 해. 이처럼 친절은 또 다른 거대한 친절을 낳아. 네가 누군가에게 건네는 친절만큼 더 큰 사랑과 보답이라는 형태로 너에게 돌아올 거야. 너도 실제로 어려웠던 시절, 친절이 돌아오는 경험을 겪어본 적이 있어서 잘 알겠지만 말이야. 주변을 잘 살펴봐. 너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애타게 너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그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줘. 마른 가지에도 움이 돋고 싹이 트는 법이야. 소극적 친절인에서 적극적 친절인으로 나아가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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