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귀가 얇아
남들이 수근덕거리는 말에
고막이 예민하게 반응할까.
내가 없는 자리에서 잉태된 나에 대한 뒷담화는
미로 같은 공기와 시간을 뚫고
잘도 주인을 찾아와
불쏘시개처럼 가슴을 파헤쳐 놓는다.
기껏 마음이 재생할라치면
뒷담화는 독수리의 날카로운 부리가 되어
다시 나타났다.
매일 소멸과 재생을 반복하는
프로메테우스의 저주받은 간처럼
내 마음은 치유되었다가 다시 다치길 반복.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은,
만인에게 호감형으로 남고 싶은 욕심은
비원(悲願)으로 남을 수밖에.
험담이 들려올 때마다
마음은 학대받았다.
제발 나를 미워하지 말아 줘.
나를 더 사랑해 줘.
'남들은 너라는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
이렇듯 험담은
100% 객관적 사실이라기보단
편협하고 주관적인 인상에 가까운 지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겐
억울한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남을 험담하는 향연에는
철저히 입을 잠갔다.
내 입술은 닫혔지만, 아직 귀는 열려 있어
가끔씩 나에 대한 험담이 내 귀에 와서 박히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럴 때마다
담담한 척 반응했지만
사실 조금 아픈 건 사실이다.
b형 독감이 밉살스러운 기승을 부려 학급 아이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바이러스는 우리 집 현관문을 노크했고 아무 의심 없이 문을 열어준 둘째 아들은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아내 역시 최근에 독감 확진을 받아 골골거는 중이다. 일련의 일들을 가까이서 지켜본 결과, 독감이라는 건 전염력이 빠르고 무섭다는 것을 실감한다. 평소에도 배가 고프면 날카로워지는 아내는 몸이 아플 땐 더욱 날이 선 지라 그녀에게 베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발적으로 집안일이나 육아를 보조해야 한다.
캥거루 새끼처럼 틈만 나면 엄마 캥거루의 주머니 속으로 파고들려고 하는 녀석들이었기에 아픈 아내를 편히 쉬게 해 줄 요량으로 캥거루 새끼들을 억지로 끄집어내어 밖을 전전했다. 키즈카페, 놀이터, 축구, 줄넘기 등 최대한 바깥에서 시간을 비볐다. 아내가 서운해할지도 모르지만 와이프가 아프니 오히려 부자간의 애정은 조금 돈독해지는 듯도 하다. 역시 고난은 뭔가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힘이 있다.
난 직장에서 티를 내면서 일을 하기보단 잠잠하게 일을 처리해 나가는 스타일에 가깝다. 사소한 공적이 될 수 있는 업무조차 그냥 묵묵히 처리한다. 유령처럼 일을 해나가다 보니 내가 중요한 업무를 수행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과 특유의 성실함(?)에 대한 미담은 잘 전파되지 않는 편이다. 나를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 몇몇 동료들만이 나의 공을 심심치 않게 헤아려줄 뿐. 하루는 한 선배에게 이런 말까지 들었다.
"후배님, 일을 할 땐 제발 티가 나게 좀 해. 그래야 인정받아."
답답하게 일을 처리하는 후배가 안타까워 꺼내는 진심 어린 조언이었으리라. 그런데 이런 성향으로 타고난 걸 어쩌겠는가. 나나 아내나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인간형이어서 뭔가 남을 위한 일을 할 때 굳이 드러내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나는 먼저 나서서 '나 열심히 일한답니다. 알아들 주실 거죠?' 라며 굳이 이미지 판촉 활동을 할만한 낯 뜨거운 요령이 없다. 기부도 익명의 기부가 더 멋지지 않은가? 자기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얼굴 없는 기부를 하는 사람들, 정말이지 존경스럽다. 직장 역시 마찬가지다. 얼굴 없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노고가 있었기에 톱니바퀴는 녹이 슬지 않았던 것이다. 결코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성실하게 일한다고 해서 좋은 평가만 들려오는 것은 아니다. 나의 장점을 포근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나의 실수나 허점을 날카롭게 잡아내는 사람들도 있다. 세계의 소름 돋는 균형 감각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세상일은 내 뜻대로만 되지 않고 항상 적은 도사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미담에 비해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은 b형 독감처럼 무섭게 퍼지는 게 문제였다. 악담이 내는 무시무시한 속력은 어느새 느릿느릿한 미담의 속도를 앞지르기까지 했다. 속도도 속도지만 악담은 비정상적으로 몸집을 키우기까지 했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사람 하나 '병신' 만드는 건 순식간이었다.
난 이런 일을 겪으면서 또 하나의 인생을 배웠다. 업적이 많은 것보다 실수가 적어야 무난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조직의 보수적인 생리를. 그리고 친분과 성향, 정치적 역학관계 속에 운영되는 그들만의 담합적 생태계를.
지난 주말, 아내의 병세에 별다른 차도가 없어 잠이라는 보약이라도 주고자 모래 놀이 장난감, 비눗방울 스틱, 축구공 등을 몽땅 챙겨 아이들을 놀이터로 유인했다. 녀석들은 대형 비눗방울 스틱을 사용하여 큼지막한 비눗방울을 공기 중으로 쏘아 올리며 천진난만한 미소를 모래밭 주변에 띄웠다. 비눗물을 적당히 묻히고 바람도 알맞게 불었는지 꽤나 보암직한 대형 비눗방울이 만들어졌다.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비눗방울은 바람의 방향을 따라 천천히 대기를 산책하다가 연료가 떨어진 어느 지점에서 마법처럼 사라졌다.
갓 탄생하여 영롱한 겉옷을 두른 비눗방울이 말을 건네 온다.
"어이, 귀 얇은 친구, 오늘도 아이들이랑 놀아주느라 고생이 많군."
"비눗방울막처럼 얇은 귀를 가지고 있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비눗방울한테 이런 말 들으니 불쾌하네. 손으로 확 터뜨려 버릴까 보다."
"에헤이, 나는 그저 팩트를 말한 것뿐인데 생각이 못돼 먹었군. 너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말도 못 하면서."
"하기야, 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니? 다 처신 못한 내 잘못이지."
"내 얘길 들어봐. 소문은 뜬구름과도 같아. 쉽게 말하면 실체가 희미하고 영원할 순 없다는 말이지. 순식간에 부풀려졌다가 어느샌가 사라지는 나처럼 말이야. 나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져 생명력이 길지 않은 존재야. 어딘가로 스쳐 지나갈 소문 따위에 겁낼 필요는 없어. 언젠가는 증발할 테고, 결국 그 자리엔 진실이 남게 되어 있거든. 소문은 그냥 바람결 따라 흘러가게 냅둬 버려.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없다는 거, 사실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이젠 받아들여야 해. 네 편이 있으면 적도 있게 마련이야. 변증법을 떠올려 봐. 하나의 테제에 대한 안티테제가 있어야만 사상은 더욱 발전, 진화해 나가는 거야. 네 편만 있는 세계는 너를 권태의 창살 안에 가두어 버릴걸? 듣기 싫겠지만 너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가 흘러나온다는 것도 네가 의식 못하는 다른 결점이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기도 해. 결국 악담이라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네 발전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통과 의례라고 볼 수 있는 거지. 그렇다고 악담러들의 기준에 네 삶을 억지로 맞출 필요는 없어. 너는 너대로, 너의 방식대로 잘해나가고 있으니까. 그들의 이야기는 온전한 사실이 아닌 하나의 의견쯤을으로 치부해 버려. 그러면 악담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좀 더 넓어질 거야. 힘내라고.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