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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기 May 19. 2024

쪽갈비 맛집으로 초대합니다.

쪽갈비는 내가 구워 줄게.

"집게 이리 줘 봐."


 고깃집에서 집게를 선점하기 위해 동석한 지인들과 기싸움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집게를 차지한 사람은 약간 수고스럽더라도 고기를 구울 수 있는 권한을 얻을 수 있다. 고기를 굽는 게 뭐 그리 대단한 권한이냐는 반문할 수 있겠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남에게 고기를 구워 주는 은 실로 엄청난 권한이다.


 어느 날 가까운 형님들과 함께 직장 근처 쪽갈빗집을 방문했다. 나의 직장 생활 10년 근속을 축하해 주는 자리였다. 동석한 사람 중에선 제일 막내였기 때문에 동방예의지국의  장유유서 사상에 입각하여 먼저 집게를 들긴 했지만, 주구장창 삼겹살만 구워봤던 나로선 평소에 자주 구워보던 고기가 아닌지라 살짝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러자 쪽갈빗집을 회식 장소로 주선한 형님께선 당황한 낌새를 귀신같이 알아차리셨다.


"집게 이리 줘 봐. 내가 구워 줄게."


출처 : 픽사베이


 형님은 집게를 빼앗더니 적당히 달궈진 불판에 쪽갈비 여섯 대를 정갈하게 올려놓았다. 이미 초벌은 된 상태라서 쪽갈비를 굽는 데 그리 큰 노력이 필요하진 않아 보였다. 그래도 능수능란하게 고기를 굽는 모습이 마치 많이 구워 본 솜씨였다. 쪽갈비가 적당히  먹기 좋게 익기 시작하자 내 접시 위에는 먹음직스러운 쪽갈비 한 대가 살포시 올라와  침샘을 자극하고 있었. 김이 모락 나는 쪽갈비 한 대를 슬쩍 집어 매콤 달콤한 간장 소스로 꽃단장을 시킨 후 입안에 넣으니, 기막힌 맛을 인지한 미각 신호가 뇌 속  미각 피질을 기분좋게 두드려댔다. 마치 고급 한우집에서 직원이 손수 특수부위 한우를 구워주는 것 같이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단 느낌이 들었다.


 쪽갈비 4인분이 동날 때까지 형님은 계속 집게를 점유하며 정성스럽게 쪽갈비를 구웠다. 집게를 차지했다고 해도 부정축재하는 탐관오리처럼 쪽갈비를 차지하는 지분이 늘어난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본인의 접시보다 상대방의 접시 위에 올려준 쪽갈비가 더 많아 보였다. 형님의 사소한 배려에 감탄하며 결국 근질거리는 입을 못견디고 박박 긁고야 말았다.


"왠지 아빈 받는 것 같네요."

"뭔 빈?"

"아빈이요. 아빈. 임금의 명령을 받아 손님을 접대하는 이요."

"골 빈 소리 그만하고 갈비나 부지런히 뜯어."

"네, 형님."


향기로운 꽃이 나비를 유혹한다. 나는 남에게 향기로운 존재인가.

 남을 위해 고기를 구워준다는 것은 수고스러운 노동이 아니라 성스러운 권한이다. 사소하게 뿌린 작은 '배려'씨앗이 상대방의 마음밭엔 '존중받음'이라는 향기로운 꽃을  피워내기 때문이다. 오늘 방문한 식당이 포털사이트나 sns에서 유명한 쪽갈비 대표 맛집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이 식당은 배려라는 양념을 잘 버무려 내어 존중이라는 감칠맛을 탄생시킨, 마음이 넉넉해지는 맛집인 건 확실하다.


잘 구워진 '배려' 한 점을 베어 물으니 '존중'이라는 감칠맛이 마음 안에 계속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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