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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기 May 08. 2024

<앙드레 지드> 2화

Closed Circuit TeleVision(폐쇄회로 텔레비전)

 아침부터 비가 흐느적흐느적 기분 나쁘게 내린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어중간한 비가 내리는 날. 차라리 내리질 말거나 내릴 거면 억수로 쏟아지든가. 후덥지근함과 습함이 주는 불쾌감을 안고 출근길에 나섰다. 학교 중앙 현관을 통과하자 대리석 재질의 복도에는 신발에 묻어나온 비의 흔적, 우산에 묻어나온 비의 흔적 등이 복도에 대한 지분을 빠르게 점유하는 중이었다. 복도에 고여 있는 빗물 때문에 미끄러질 뻔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슬리퍼를 바꾸어 봐도 소용이 없었다. 발뒤꿈치부터 바닥에 내딛는 이족보행을 하다가 물웅덩이를 헛디디면 스케이트 타듯 그대로 쭈욱 하고 미끌렸다. 물론 젊음에서 오는 천부적인 반사신경 덕에 크게 넘어진 적은 없었다. 하지만 비 오는 날의 복도는 마치 지뢰밭을 걷는 심정이었다. 빗물지뢰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2층 교무실에 겨우 당도했다. 아침 일찍부터 무슨 일 때문인지 소곤거림과 웅성거림이 섞인 묘한 잡음으로 교무실 안이 시끄러웠다.     


“아니, 어쩌다가 그러셨대요?”     

“글쎄 복도에서 크게 넘어지셨나 봐요. 다행히 체육 선생님이 근처에 계셔서 바로 부축해서 병원으로 모시고 갔다고 하네요.”     

“저런. 크게 다친 건 아니겠죠?”     

“손목 쪽을 다쳤다던데.”     


 여자 선생님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아침에 벌어졌던 사건에 대해 호기심이 묻어 있는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얼핏 엿들어 보니 누군가 복도에서 빗물에 미끄러졌고 상태가 꽤 심각했는지 병원으로 후송된 모양이었다. 비 오는 날에 운이 더럽게도 없었던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다. 이야기를 마치고 각자 자리로 돌아가는 삼삼오오 이야기 무리 중에서 가장 친분이 있는 선생님을 내 쪽으로 불러 세웠다. 뭐 같은 기간제 교사이기도 하고 입사 동기이기도 한 윤아연 선생님이었다.    

 

“아연쌤, 아까 무슨 얘기 나눈 거야? 누가 다친 거 같던데.”     

“오, 수남쌤. 이제 출근했어? 군기가 갈수록 빠져.”     


 아연쌤은 핸드폰 시계를 한 번 힐끗 보더니 장난 섞인 어조로 가벼운 힐난을 던졌다. 나도 가볍게 농담으로 맞받아쳤다.


“이미 군기는 말년 병장 시절 때 싹 빠져나갔어. 헛소리 그만하고 도대체 누가 다친 거야?”     

“수남쌤한텐 슬픈 소식인데 어쩌냐?”    

 

 나에게 안 좋은 소식이라. 내가 친하게 지내던 선생님이 다치셨나? 다친 걸 아파할 만큼 그렇게 정서적 유대감이 긴밀한 선생님은 없는데……. 그나마 유일하게 내 성실함을 인정해 주시는 직속 부장 선생님은 건강하게 출근하셔서 자리에 앉아 계시고. 현 상황 속에서 누군가의 부재가 나에게 아픔이나 슬픔은 될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만큼 나의 인적 네트워크는 촘촘하지 못해 허술했다. 아연쌤은 몇 번 더 말을 빙빙 돌리다가 이젠 재미가 다 했는지 다친 선생님의 정체를 범인처럼 공개했다.     


“대준쌤이야. 다친 사람.”     

“아…….”     


 오대준 선생님은 나보다 1년 먼저 입사한 국어 기간제 선생님이었다. 언변이 좋고 사람들을 유쾌하게 하는 면모가 있어 주변 교사들로부터 평판이 아주 좋았다. 나보단 훨씬 사회성 지수가 높아 자기 일은 물론 남의 일도 먼저 나서서 해주는 그야말로 만능 일꾼, 착한 노비였다. 근데 왜 아연쌤은 오대준 선생님이 다친 게 나한테 안 좋은 소식이라고 했을까? 아연쌤에게 따지듯 물었다.


“근데 대준쌤이 다친 게 왜 나한테 안 좋은 소식이란 거야?”     

“머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는데 대학교 졸업은 어떻게 하셨어? 대준쌤이 병원에 입원하면 결강이 발생할 테고, 그러면 동일 교과에서 보강을 들어가야 할 거 아니야.”    

 

 가슴 저리도록 아프고 슬픈 소식이었다. 가뜩이나 주당 수업시수가 18시간인데 거기에 수업 보충을 들어 가야 하다니. 제기랄. 망할. 망연자실하고 있는 사이에 윤리 선생님, 아니 CCTV가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 나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또 무슨 말을 하려고……. 또 분명 AI 같은 목소리로 ‘변수남 선생님, 나랑 얘기 좀 하세.’가 자동적으로 튀어나오겠지.     


“변수남 선생님, 얘기 좀 하세.”    

 

 호흡이 딸리셨는지 오늘은 ‘나랑’이란 말을 뺐다. 멘트가 간소화되었음에 감탄하고 있는 사이 CCTV는 본론을 꺼냈다.     


“비가 와서 실내가 미끄러우니까, 마른 밀걸레 좀 가지고 1층부터 4층까지 쓱 한 번 닦고 오소. 학생들 안전사고 위험성이 있으니까.”     


 1층부터 4층까지는 30여 개의 교실이 모여 있고, 그 반경에 포함된 복도의 총면적은 과연 몇 제곱미터일까. 아무튼 엄청나게 넓은 복도를 마치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그냥 ‘쓱’ 닦고 오라니. 밀걸레로 CCTV의 빛나는 정수리를 쓱 하고 문질러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윤리적인 이성이 간곡하게 만류하는 바람에  CCTV의 빛나는 정수리를 문질러주는 일은 다음으로 미룬 채, 마른 밀걸레를 들고 터벅터벅 힘없이 4층으로 올라갔다. 평소 같았으면 같은 처지(계약직)인 오대준쌤과 2인 1조 환상의 팀워크로 능수능란하게 일을 처리했겠지만, 이젠 단식으로 외롭게 게임을 뛰어야 했다. 군대 상병 시절 내무반 청소 시간 이후 실로 오랜 만에 밀걸레를 잡았다.


 CCTV의 지시대로 밀걸레에 묻은 물기를 수십 번 짜가면서 안전사고 예방 활동을 성실히 수행했다. 등교하는 학생들은 내 속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복도에 걸레 같은 빗물 자국을 남기고 다녔다. 밀걸레질을 열심히 해대니 빗물자국은 점점 희미해졌다. 그녀에 대한 나의 모든 기억도 말라버렸으면 좋겠다. 이상하게도 빗물 자국은 말라가는데 그녀를 향한 기억 자국, 아련한 감정의 자국은 더욱 선명해지는 것 같다.         

  

 오대준 선생님은 손을 크게 다쳐 전치 6주의 요골 골절 진단을 받았다. 며칠 후에 깁스를 하고 출근은 했지만, 아무래도 손이 영 불편한 기색이었다. 미끄러질 당시 나름 멋있게 낙법을 한답시고 온 체중을 실어 손부터 땅을 짚은 게 화근이었다. 오른손이 다치는 바람에 수업 시간에 판서도 제대로 못했고 그나마 건강한 입이 다친 손의 역할까지 두 배로 일해야 했다. 오대준 선생님은 겉으로 사람 좋고 인심 좋고 넉살 좋고 유머 있고 재치 있고, 암튼 있는 게 많아서 동료 교사들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오대준 선생님을 좋아했다. 그래서 국어 정식 티오가 난다면 그가 공개 채용 객관식 시험을 한 번호로 찍거나, 수업 실연 시간에 국어가 아닌 수학을 가르친다거나, 면접 때 면접관님의 멱살을 잡고 쌍욕을 날리지 않은 이상 정식교사 채용 0순위의 후보였다.


 나보다 평판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었지만 오대준 선생님은 은근히 날 경계하는 모습을 종종 보었다. 눈치는 없었지만, 감성은 풍부했던 나였기에 그런 경계심은 나에게 들키기 일쑤였다. 이래 봬도 학창 시절, 수많은 가상 세계를 창조하고 그 세계 속에 수많은 인간 군상들을 만들어냈던 문학 소년 아니었나. 거기다 대학 시절 심리학과를 부전공하여 사람들의 심리 파악에 대해서는 일반인 이상의 감각이 있었다. 물론 연애 심리에 대해서는 F학점이었지만. 난 오대준 선생님한테 내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내지는 않았다.    

  

“윤리 선생님 말입니다. 수남쌤한테 좀 너무 하는 거 아닙니까? 기간제 교사도 교사인데 학생 대하듯 하니. 지켜보는 저도 민망하네요.”     


 일전에 오대준 선생님은 날 떠보려는 속마음을 숨긴 채 날 걱정해 주는 척 접근했었다. 윤리 선생님의 멱살이라도 잡아서 엎어치기를 하고 싶다는 속마음을 철저히 숨기고 나도 철저히 위장 전술을 펼쳤다.     


“아니. 내가 부족한 게 많다 보니 윤리 선생님도 날 걱정해 주시는 거죠.”     


 내가 생각해도 역겨운 답변을 로봇처럼 토해냈다. 오대준 선생님은 예상치 못한 답변이라도 들은 표정으로 순간 당황하더니 이내 화제를 돌렸다.     


“올해 우리 학교에 국어과 정식 티오가 날지도 모른다던데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습니까? 수험서라도 얼른 사서 공부를 해야 하는데 공부할 여력이 없네요.”     


 오대준 선생님은 정말 날 몇 수 아래로 여기는 것 같았다. 적어도 작가는 세상에 대한, 사소함에 대한 관찰력이 기본적으로 몸에 배어 있다. 보고 들은 것을 사진처럼 완벽히 기억하는 포토그래픽 메모리까지는 아니더라도, 난 일상 생활 중 작은 것 하나까지 세밀하게 관찰하는 작가적 습성을 가지고 있다. 오대준 선생님의 책상에는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교재로 보기엔 애매한, 두꺼운 전공 서적과 관련 문제집들이 보물찾기라도 하둣 책꽂이에 숨겨져 있다는 걸 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 날 얼마나 호구로 봤으면……. 그의 책상은 너무 친절하게도 올해 우리 학교에 국어 정식 티오가 날 것이란 걸 꽤 오래전부터 나에게 알려준 셈이나 다름없었다. 아직 채용 공고도 안 난 고급 정보를 누가 흘려주었을까? 물론 느낌적으로 올해 채용 시험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짐작은 했지만 난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다. 삶의 고귀한 목적을 어딘가에 잃어버리는 바람에 출구가 안 보이는 어둠 속에서 방황한 지 꽤 됐으니까. 그래. 너나 공부 열심히 해서 꼭 합격해라.     

 

 범죄 영화를 보면 CCTV가 범인을 검거하는데 결정적인 장치로 쓰인다. 윤리 선생님은 나한테 CCTV를 조심하라고 했지만, 내 눈도 CCTV로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듯했다. 대학 친구를 만나러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먹자골목을 지나가고 있었을 때, 한 고깃집에서 윤리 선생님과 오대준 선생님이 정답게 마주 앉아 지글지글 갈매기살을 굽고 있는 모습이 내 CCTV에 찍히고 말았다. 오대준 선생님을 대하는 윤리 선생님의 눈빛은 마치 귀여운 늦둥이를 대하는 인자하신 아버지의 모습과 같았다. 나를 대할 때와는 엄연히 다른 공기였다. 그 둘의 공통분모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모종의 거래, 음흉한 내막이 그들에게 딱 어울리는 옷이었다. 나는 은연중에 나의 학교생활 일거수일투족을 윤리 선생님께 보고하는 오대준 선생님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개연성 있는 추측이었다. 때론 과하다 할 정도로 윤리 선생님은 너무나 자세하고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가면서 내 일거수 일투족을 깍아내렸으니까.   

      

 윤리 선생님이 강조하신 100개의 CCTV는 굳이 100개일 것까진 없어 보였다. 내가 보기엔 그랬다. 날 감시하는 카메라는 결국 4개 정도가 아닐까. 아니다. 더 엄밀히 말하면 2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윤리 선생님은 그냥 보고만 받는 고위 권력층이라고 한다면 결국 날 감시하는 CCTV이자 세작은 오대준 선생님 한 명이지 않을까.

      

 의미 없는 일주일이 흘렀고 퇴근을 앞둔 어느 날, 알 수 없는 번호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와 있었다. 

     

‘변수남 선생님이시죠? 저 기억하실까 모르겠는데 정지안이라고 합니다. 아, 죄송해요. 정선주라는 이름으로 말씀드려야 기억하시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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