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폭행을 당했다. 그것도 어린 나이에.
내 인생은 내 자유 의지가 아닌 부모님의 그려준 삶의 스케치북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어렸을 적부터 독실한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도축장에 끌려가는 가련한 돼지처럼 교회를 자주 들락날락거렸다. 나의 적성이나 의지 따위와 상관없이 부모님의 뜨거운 교육열과 각별한 신앙심 덕분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열심히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 열심히 배운 피아노는 당연히 교회에서 성가대 봉사 및 찬양 반주를 하는 데 쓰였다. 어렸을 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성숙하지 못했으니까. 교회에서는 순종과 섬김이라는 교리를 귀에서 피가 나올 정도로 들었으니까. 난 성도 수가 200명쯤 되는 중형교회의 청소년부에 속해 또래 친구들과 건전하게 교제를 했다. 청소년부에 속한 친구들은 적어도 나보다는 훨씬 더 믿음이 깊어 보였다. 이성 친구들도 꽤 있었지만 믿음과 교리라는 고결한 연결고리로 형성된 집단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이성 친구라기보단 믿음의 동역자라고 보는 게 적절한 표현이었다.
가끔은 대학부 언니, 오빠들과 교제하는 시간이 있었다. 주일 예배 때 특별 찬양 무대를 올리기 위해 토요일에 만나 대학부, 청소년부 합동으로 특별 찬양을 정성껏 준비하여 주일 본 예배에 거룩하게 올렸다. 대학부 오빠 중에서는 통기타를 꽤 잘 치는 오빠가 있었다. 얼굴이 준수한 편이고 매너가 좋아 교회 언니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많았다. 그 오빠를 매주마다 보기 위해 교회에 등록한 언니들도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소문의 진위는 파악할 수 없을지라도 그 오빠는 확실히 여자들의 마음을 당기는 마력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깔끔한 외모, 영국 신사 같은 매너, 준수한 기타 실력을 가진 교회 오빠. 사랑에 나이 차가 걸림돌이 될 수 없다는 걸 내 마음은 증명하고 있었다. 어느새 내 마음은 점점 그 오빠에게 다가가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네가 선주니?”
주일 청소년부 예배를 마치고 예배당을 빠져나오던 중 교회 로비에서 그 오빠를 만났다. 나를 아는 척해 준 것일 뿐인데 가슴은 저릿한 감동으로 벅차올랐다. 쭈뼛쭈뼛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네, 라며 수줍게 대답했다.
“피아노 실력이 보통이 아니던데?”
특별 찬양을 위해 몇 번 합주를 해봤으니 오빠는 내 피아노 연주를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합주를 했던 당시에는 내 피아노 연주에 대해서 특별한 코멘트를 달진 않았었다. 피아노 실력이야 이미 주변 사람들한테 정평이 나 있었다. 피아노 학원 원장님께선 나를 기필코 예술대학에 진학시키겠다는 야심을 내 영혼에 억지로 때려 넣으면서 열성적으로 가르치셨으니. 원장님의 처절한 노력으로 피아노 콩쿠르 결선에서 입상도 많이 했었다.
“아니에요. 많이 부족해요.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식적인 겸손을 떨며 요조숙녀 행세를 했다. 교회 찬송가쯤이야 저한테는 일도 아니라는 거만한 워드들이 입안에서 뱅뱅 맴돌았지만, 이 오빠 앞에서는 함부로 그런 워드들을 내뱉을 수 없었다. 최대한 소녀답게, 여성스럽게 보이고 싶었다. 오빠를 몰래 좋아하고 있으니까.
“겸손한 척하긴. 음악 하는 사람은 척 보면 척인데. 다음 주에도 겸손한 척하는 연주 부탁할게. 그럼 이만.
오빠가 나한테 관심을 보이다니. 내 마음속 사랑의 어귀에서 오빠는 조금씩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교회 안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고 일상의 대화도 오가다 보니 어느새 오빠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정겹게 인사하는 사이가 됐다. 만나는 횟수만큼 서로의 거리도 가까워졌고 이젠 가벼운 농담까지 주고받을 정도로 친한 오빠 동생 사이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오늘, 영혼을 듬뿍 담은 음 이탈 연주 잘 들었어.”
“영혼을 담은 게 아니라 영혼이 홀라당 빠져나갔어요. 목사님 설교 말씀이 너무 길어서.”
“얘가 뭘 모르네. 우리 교회 목사님 설교 말씀은 그나마 짧은 편이야. 예전에 다녔던 교회에선 목사님 설교 말씀만 1시간이 넘었다구.”
“네? 말도 안 돼. 그럼 목사님 설교 말씀이 길어서 교회 옮기신 거예요?”
“빙고.”
오빠는 이 교회가 첫 교회가 아닌 듯했다. 친구 따라 교회 옮기는 일, 이사 가느라 집 따라 교회 옮기는 일쯤은 빈번하게 일어났기 때문에 난 그 일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야 뭐 교회에 친구가 있든 없든, 집이 가깝든 멀든 독실한 부모님이 섬기는 이 교회가 처음이자 마지막 교회가 될 테지만. 오빠 주변은 늘 언니들이 장식품처럼 붙어 다녔다. 인기 많은 교회 오빠 스타일. 나도 오빠의 장식품 중 하나가 되고 싶었다. 아니. 장식품은 쓰다가 질릴 수도 있으니 오빠의 피부나 오빠의 머리카락이 되고 싶었다. 영원히 오빠에게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다. 오빠의 목 부위에 큰 흉터가 있었지만 흉터 따위야 오빠를 좋아하는 일에 전혀 장애가 되지 않았다.
x축은 시간, y축은 친밀함으로 세팅한 정비례 그래프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오빠와 나는 더욱 가까워졌다. 이젠 교회라는 공간을 벗어나서 볼링장, 카페 등 오빠와 만나는 공간적 반경도 점점 확장되었다. 물론 단둘이 만난 건 아니었다. 청년부 언니 오빠들의 친목 자리였지만, 오빠는 늘 나를 그 모임에 깍두기처럼 넣어주었다. 오빠를 볼 수만 있다면 깍두기가 되어도 상관없었다. 오빠와 함께 하는 시간과 공간이 너무나 소중하여 영원히 붙잡아 두고 싶었다.
어떤 날은 잠들기 전 오빠와 손을 잡고, 다정하게 키스를 나누는 장면을 은밀히 상상해 본 적도 있었다. 민망한 감정이 불현듯 찾아와 환상을 급하게 지워버렸지만, 내가 오빠를 애타게 좋아하니까, 가깝게 붙어 있고 싶으니까, 떨어지기 싫으니까 같은 생각들로 민망함을 서둘러 지워냈다. 나 오빠를 정말 좋아하나 보다. 이런 걸 첫사랑의 감정이라고 하나. 오빠와 사랑에 빠지고 싶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여름 방학 교회 수련회는 속절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름 방학을 맞이하여 청소년부와 대학부가 합동으로 2박 3일 일정의 수련회를 이름도 모를 산속 깊은 곳으로 떠났다. 원래는 시골 폐교였는데 지금은 수련관으로 탈바꿈한 음침한 건물이었다. 쉬지 않는 찬양과 기도, 예배를 통해서 영성을 회복하는 수련회. 거기에서 오빠는 내게 회복할 수 없는,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수련회 마지막 날 일정이 거의 끝나갈 무렵,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오빠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둘이 산상 기도를 가자고 은밀히 제안했다. 더럽혀진 우리의 영과 육을 산상 기도를 통해 정결하게 하자는 그럴싸한 명분이었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살짝 당황했지만 오빠의 부탁을 차마 뿌리치기도 싫었고 별다른 의심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빠와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 기뻐했다. 다른 언니, 오빠들을 안 부른 걸 보니 나만 특별 대우받는 기분이었다. 또래 자매들과 자고 있던 방에서 몰래 탈출하여 오빠와 미리 약속했던 자정에 수련관 중앙 현관에서 오빠와 만났다. 우린 수련관 뒤쪽에 있는 동네 야트막한 산을 30분가량 어둠을 헤치며 나란히 올라갔다. 어둠이 주는 공포를 몰아내기 위해 우리는 가볍고 사소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무섭지 않니?”
오빠는 날 어둠으로부터 안심시키려는 듯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사실 깊은 밤 산속이라 으슥한 기분이 들었지만, 오빠와 함께하니 불안감보다는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아니요. 저 은근 강심장이에요. 사실 오빠가 무서운 거 아니에요?”
“응, 무서워. 하하. 사실 혼자 산상 기도를 가려고 했는데, 무서워서 너 데리고 온 거야.”
“오빠, 그렇게 안 봤는데 완전 겁쟁이였네요.”
“쉿, 나 겁쟁이라는 거 너만 알아야 돼. 다른 사람들한텐 비밀.”
“저 내일 바로 소문 다 낼 건데요? 저 입막음하려면 꽤 비쌀 텐데.”
“수련회 끝나면 고기 사줄게. 입가심 디저트도.”
“썩 괜찮은 제안인데요? 크크. 생각해 볼게요. 저 삼겹살 기본 3인분은 먹어요. 미리 각오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자, 잠깐만. 삼겹살을 3인분이나 먹는 식성인데도 살은 안 찌는 스타일인가 봐?”
오빠는 칠흑 같은 어둠 속 달빛 아래 부끄럽게 드러난 내 실루엣을 위아래로 스캔하듯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내 몸매를 바라본다는 것은 실로 민망하고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좋아하는 오빠가 주는 시선이기 때문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어둠 속이었기 때문에 내 몸매를 바라보는 오빠의 표정이 어떤지는 자세히 볼 수 없었다. 이때라도 불길한 꺼림칙함을 감지하고 미친년처럼 소리를 지르며 산 아래로 뛰어갔더라면 어땠을까.
그렇게 산을 오르다 보니 적당한 평지와 벤치가 나왔다. 지근거리에는 무덤 한 구도 놓여 있었다. 오빠는 걸음을 멈추고 여기,라는 싸인을 내게 보냈다. 근처에 무덤이 있어 께림칙했지만 지금은 오빠가 하자는 대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벤치 위에 나란히 무릎을 꿇고 각자의 염원을 절실히 담아 기도를 시작했다. 여름이긴 했지만, 산속 밤이라 으스스한 서늘함이 살갗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오빠는 소리를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만 기도하고 있던 나를 질책했다. 이런 산속에서는 통성으로 하는 기도가 효과가 있다며 크게 크게 기도를 하라고 조언했다. 통성 기도라는 걸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적응이 잘 안 되었다. 혼자라면 모를까 옆에 사람이 있는데 내 속마음을 바깥으로 분출하는 건 정말이지 적응하기 힘든 일이다. 사실 기도의 내용엔 오빠와의 사랑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에 통성기도를 하기엔 더욱 난감했다. 계속 입 안에서만 우물우물 기도가 돌자 오빠는 내 소심한 기도를 중간에 끊고 자신이 시범을 보이겠다며 나섰다.
“통성 기도는 마음속에 있는 모든 감정을 격렬하게 쏟아내는 거야. 잘 봐. 모든 걸 이루시고 늘 도우시는 주님, 이 시간 저의 모든 죄를 자복하며 주님께 나아갑니다.……․”
오빠는 누가 기도 소리를 듣든지 말든지 전혀 개의치 않는 목소리로 우렁차게 통성 기도 시범을 보였다. 단순히 시범인 줄로 알았는데 진심 어린 기도를 하는 것처럼 정성을 담아서 기도했다. 기도 소리는 산의 구석구석을 타고 온 산을 거룩하게 감싸는 듯했다. 죄에 대한 회개, 가족의 문제, 학업의 문제, 사회와 민족을 위한 문제 등 기도의 범위는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으로 점점 확장되었다. 자신의 속마음을 저리 거침없이 뱉을 수 있다는 점이 경이로워 보일 정도였다. 오빠는 정말 믿음이 깊은 사람이구나. 기도를 마친 오빠는 큰 숨을 한 번 내쉬더니 이젠 나에게 통성 기도를 해보라고 재촉했다. 시범까지 봤기에 어떤 식으로든 흉내는 내 볼 양으로 두 눈을 감고 천천히 읊조리듯 기도를 시작했다.
“모든 걸 이루시고 늘 도와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회개하며 주님께 나아갑니다……․”
기도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자정이 넘은 야심한 밤이라 나도 모르게 깜빡 졸았나 보다. 오빠의 손이 내 어깨에 부드럽게 닿았다. 졸음이 확 도망치면서 졸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창피했다. 무안한 표정을 한 번 짓고 다시 기도를 하려던 찰나, 오빠는 내 어깨를 강하게 누르며 순식간에 내 입술을 덮쳤다. 워낙 급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저항을 할 수가 없었다. 오빠는 나의 정결한 육체를 독사처럼 탐하기 시작했다. 오빠와 꿈꿔왔던 모습은 이런 게 아니었다. 완강하게 거부하자 오빠는 결박하다시피 내 손을 부여잡고 완력으로 내 옷을 한 올 한 올 벗겨냈다. 친절하던 오빠의 모습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담을 수도 없는 거친 말들을 쏟아내며 내 뽀얀 피부에 자신의 피부를 거칠게 비벼댔다. 통성 기도 때도 안 나오던 고함이 고래고래 나왔다. 산속에는 우리 둘밖에 없었다. 오직 나무와 바람과 산짐승만이 내 아픈 비명소리를 그저 잠잠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하늘에선 사나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천둥소리도 섞여 내 귀를 아프게 때렸다.
20여분 동안 내 육체에 대한 탐닉을 마친 오빠는 날 버려둔 채 그대로 산을 내려갔다. 그는 이런 일 알려져 봤자 여자인 너만 손해고 인생 조지는 거다, 난 교회를 옮기면 그뿐이다, 평생 비밀로 해라 등의 겁박을 유언처럼 남겼다. 평상시 자상하고 유머가 넘치던 오빠의 모습은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오빠는 그저 헐벗은 약자를 집어삼키는 맹렬하고 굶주린 야수에 불과했다. 난 머리가 헝클어진 채, 정결한 몸이 망가진 채 비에 홀딱 젖은 채로 깊은 산속에 무덤처럼 버려졌다.
오빠는 더 이상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다. 당시 난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두려운 마음에 모든 사실을 부모님께 있는 그대로 이실직고했다. 어린 나이라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큰 사건이었기 때문에 어른의 도움이 필요했다. 교회가 발칵 뒤집혔다. 어른들은 여자의 처신을 운운하며 피해자인 나를 단두대에 오를 마녀로 몰아세웠다. 부모님께선 오랜 시간 다닌 교회와 작별을 고했다.
재판이 시작되었다. 1년의 시간이 걸렸다. 재판은 1심으로 끝났다. 독실한 부모님께서는 눈물로 호소하며 매일 전화를 해대는 그 인간의 부모님이 가련하게 보이셨나 보다. 부모님께선 새벽 기도를 며칠 다녀오시더니 담담한 목소리로 그자를 용서하자고 하셨다. 잊어버리자고 하셨다. 새롭게 출발하자고 하셨다. 그 인간은 준강간죄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자유로워졌다.
학교에서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더 이상 친구들이나 선생님들과 예전처럼 웃고 떠들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인 채 학교에 나가서 하교할 때까지 계속 고개만 숙인 채 책만 바라봤다. 사람을 쳐다볼 수도 없었고 하늘을 올려다볼 수도 없었다. 신은 가혹하게도 나의 웃음을 무정하게 빼앗아 갔다. 어린 나에게 너무나 잔인한 형벌을 내리셨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맘껏 울 수도 없었다. 울면 울수록 그날의 현장이 너무 생생하게 떠올라 날카로운 가시처럼 내 영혼을 찔러댔다. 시간이 좀 흐르자 나는 미친년처럼 내 삶을 공기 빠진 웃음으로 채워나가기로 결심했다. 책을 보다가도 허파가 빠진 듯 웃어젖혔다. 문제를 풀다가 답이 틀려도 웃음 나사가 풀린 사람처럼 정신없이 웃어댔다. 영화를 보다가도 드라마를 보다가도 난 웃음기 빠진 웃음으로 주변의 모든 공기를 채웠다.
과거를 하나씩, 조금씩 지워나가면서 미친 듯이 공부를 했다. 이상하게 사람들과의 관계가 단절되자 책하고 가까워진 것이다. 책은 그래도 거짓말을 안 하니까. 그 결과 꿈에 그리던 국어교육과에 입학을 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다. 과거 아픔을 지우기 위해선 최대한 많이 웃자, 행복해지자, 더욱 주변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사람에게 받은 상처 사람으로 치유해 나가자 등등의 다짐을 주문처럼 수첩에 메모하면서 본격적인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참 신기했다. 많이 웃으니까, 주변 사람과 교제를 많이 하다 보니까 어느새 주위에 친구들이 많이 생겨버렸다. 외면하고 싶었던 과거가 현재의 삶을 통해 잊히기 시작했다. 그저 평범한 대학 동기들이었는데 평범한 행복을 주는 사람들이었다. 삶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학과실의 테이블에 덩그러니 놓인 학과 방명록에서 인상적인 글귀 하나를 발견했다. 익명의 사람이 쓴 ‘카푸치노에 대한 단상’이라는 글이었다. 이 글, 왠지 나한테 건네는 글 같았다. 짧은 글이었지만 내 어두운 과거를 한 줄기 빛이 따스하게 감싸 안아주는 것 같았다. 짤막하게 꼬리글을 남겨 보기로 했다.
‘사랑의 의미에 대한 통찰. 꽤 인상적이야. ^^’
다른 동기들이 남긴 꼬리글을 보니 변수남이라는 남자 동기가 썼을 거라는 추측 같은 확신이 있었다. 하도 특이한 이름이라 변수남이라는 남학생이 내 동기인 것은 이미 알고 있었고, 새내기배움터 때 얼마나 술을 부어댔는지 테이블에 코를 박은 채 쓰러져 있던 모습도 얼핏 기억났다.
갑자기 그 아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 아이의 글은 메말랐던 내 감정에 생명의 은빛 물보라를 일으켰다.
<카푸치노에 대한 단상(斷想)>
진정한 사랑은 무엇일까.
내 앞에 놓인 카푸치노 한 잔이 사랑의 의미에 대해서 통찰해 보라고 재촉한다.
그럴싸한 하트가 그려진 거품에 속지 말아라.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금방 사라지고 만다.
거품 밑에 숨어 있는 본질을 보아라.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그 맛은 오래오래 입안에서 즐겁게 맴돈다.
표면을 보지 말고 내면을 보아라. 껍데기에 속지 말고 알맹이를 보아라. 사랑은 그런 것이다.
커피잔 위에 둥둥 떠 있는 거품은 사랑을 위장한 거짓 감정에 불과하다.
거품이 서서히 걷히는 순간 달콤 쌉싸름한 사랑의 감정이 당신을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