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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Oct 21. 2023

마침내 우리는 눈 맞추며 인사를

만월아 안녕 엄마야


2023년 9월 16일. 유도분만 실패로 인해 응급제왕으로 세상에 나온 나의 아기.


진통을 6시간이나 하다 지쳐서 수면마취를 하였었기에눈을 뜨자마자 후처치를 하고 있는 선생님들에게 아기는요? 하고 물었다.


건강하게 잘 태어났고 아빠 먼저 만났어요,라는 대답에아기를 보지 못했음에도 안도감이 몰려왔다. 심신이

다 지쳐있던 시간이었지만 마취가 덜 풀린 탓에 감통 효과로 나른하기까지 했다.


나 진짜 출산한 거 맞나 싶게 모든 게 꿈같았다. 묵직한 모래주머니가 배 위를 누르고 있어 배를 만져볼 엄두는나지도 않았다.


전 날 질정을 투여하고 내진도 몇 차례나 했던 분만실에서 밤새 6시간이나 진통했음에도 무통을 맞을 수 없었다. 고작 3센티밖에 열리지 않은 자궁문. 진행속도가더뎠는지 간호사들이 내진을 세게 하며 양수를 터트렸는데 몸에서 물풍선이 터지듯 많은 양의 따스한 물이 흐르는 기분이 느껴졌고 이내 몸이 사시나무 마냥 떨렸었다. 제어할 수 없을 만큼 하체가 덜덜 떨리며 심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하자 아기 심박수가 급격히 낮아졌었다.


아기 심박수 확인을 위해 붙인 기계에서 삐삐 경고음이

들리고 140-150에 육박하던 심박수가 반절 가까이 낮아지는 모니터를 보며 정신을 차리려했다.


안돼, 정신 차리고 호흡해야 해. 아기가 위험해.


머리로는 그랬는데 숨은 여전히 쉴 수 없었고 간호사들이 나를 붙잡고 산소마스크를 씌워주며 진정되서야 심박수는 돌아왔다. 간호사들은 어딘가에 연락을 하더니 지금 수술해야 할 거같다고, 아기가 힘들어한다고 했다. 후에 남편에게 들은 이야기론 골반에 껴서 내려오지도 못하고 있었다고 했다.


아기가 힘들어한다는데 더 이상 자연분만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고 지친 탓에 그러자고 했다. 울면서 만월아 미안해, 라고 속삭였는데 심박수가 낮아져 아기를 힘들게 한 게 너무 미안했었다. 이렇게 만날 운명이였구나 우리아가. 이럴 거였음 38주쯤 제왕절개를할걸 싶기도했지만 진통도 수술의 고통도 다 겪어본 걸 후회하진 않는다.


천장을 바라보며 침대가 이동하는 게 느껴졌고 수술실에선 마취과 선생님이 하반신 마취 후 바늘로 가슴 쪽을 찌르며 아프냐 물었다. 따끔거리는 게 느껴졌고 지친 탓에 그냥 수면마취로 재워달라고 했다. 아기를 낳고 먼저 보고 싶었는데 그럴 체력이 다 갈려버린 탓에.


수술은 꽤 빨리 끝나서 출산은 금방 했다고 했다. 이걸 나는 순산이 아닌 그냥 출산이라 말하기로 했다. 이 세상에 순산은 없다. 다 적을 수 없지만 출산의 고통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이었다.


수축된 자궁에 맞게 그동안 자궁을 위해 비켜주었던 장기들이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며 뒤틀리는 기분이었다.수술부위가 아파서 옆으로 돌아눕는것 조차 쉬이 할 수없어 울면서 입원실 침대 난간을 붙잡아가며 옆으로 돌아눕는 연습을 해야만했다. 거울로 본 배는 바람빠진 풍선처럼 축늘어져 영 들어갈 생각이 없어보였고 속옷라인 아래로는 10센티 가까이 절개된 흉터가 보였다.

조리원에 가기 전 입원기간인 5박6일동안 나의 온 몸과 얼굴(은 울어서)은 붓기가 빠지지 않아 퉁퉁부어있었다.


그럼에도 육아를 하는 지금(36일차) 이 작은 생명을 낳은 일이 내가 한 일 중 가장 잘한거라 생각한다. 작고 여린 사랑스러운 존재 한 명에게 많은 주위의 관심과 사랑이 닿고 있음을 여실히 깨닫고있기에.


여하튼, 회복실에서 처음으로 아기를 만났는데 속싸개에 쌓여 양수에 퉁퉁 분 물만두같은 우리 만월이는 우렁차게 응애- 하며 울어대고 있었고 나는 왜인지 모르지만 다 쉬어버린 목소리로 안녕 만월아 울지 마 엄마야,라고 첫인사를 건넸다.


남편이 고생했다며 우는 얼굴을 닦아주고 장모님께 전화를 걸어주냐며 물었다. 응. 목소리가 쉬어 나오지 않았는데도 그 순간 우리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엄마는 엄마였다. 시댁과 아빠는 축하한다고 좋아하셨지만 친정엄마는 내가 고생했을걸 알기에 엄청 울었다고 들었다. 출산 전 분만실 들어가기 전에도 마지막으로 못 껴안아보고 보냈다며 아쉬워했다던데 내가 출산했다는 소식을 듣고 엄마가 엄청 울어서 동생이 나나 아기가 잘못된 줄 알았다고 했으니.


입원실에 있는 동안 멍한 기분이었다.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아기는 빠져나가 태동조차 느껴지지 않는 공허한 기분. 그리고 제왕절개의 통증은 무자비했다. 수술자국은 길게 찢겨 실밥으로 꿰매어져 있었고 피가 나는지 본다며 간호사들은 내 배를 꾹 눌렀다. 하반신은 발가벗겨진 채로 산모패드만 하고 있었고 남편은 며칠

내내 아파서 우는 내 멘탈을 관리해 주고 수발을 들어주며 나를 다독였다.


아기를 낳고 하루 내내 머리도 못 들고 수액을 꽂은 채로 누워만 있어야 했기에 꼬박 이틀째에 통증을 겨우내 참으며 배를 부여잡고 걸음을 내디뎌 신생아실 면회를 갈 수 있었다.


신생아실에서 면회팔찌를 보여주자 조로록 아기침대가 이동하며 신생아들이 창가로 나왔고 작은 아기침대에서 눈을 감고 곤히 자고 있는 내 아기를 보자마자 나는 또 울어버렸다. 수술부위가 당기고 힘들었지만 내내 부여잡고 면회시간 20분을 꽉 채워 사랑스럽고 작은 존재인 우리 아기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280일 남짓하는 임신기간 끝에 마침내 우리가 눈 맞추며 인사를 하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현재 나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만월이를 마음이 건강하고 바른 아이로 자라도록 키우는 중이다. 각오했지만 부모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엄마의 오랜 마음의 병까지 이겨내게 한 존재인 하나뿐인 나의 아가. 언젠가 네가 이 글을 읽을 날이 오기를 바라.


사랑을 담아서,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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