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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Sep 28. 2023

도토리를 모으는 다람쥐처럼 너를 위해 하나씩

29주 쯤 되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아기용품 하나 둘 사모아도 되지 않을까?

솔직히 안정기라 불리는 12주가 지나도, 성별이 어느 정도 결정된 16주를 넘기고도 섣불리 아기용품을 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온라인쇼핑이 대세인 이 세상에서 버튼 몇 번만 누르면 결제가 얼마나 쉬운데 구매 하나에 “용기”까지 필요한 거냐 싶겠지만 정말 혹시라도 아기를 맞이하기 위해 신나하던 나에게 만약이라는 나쁜상황이 올 수도 있을까 봐.


헤밍웨이의 가장 짧은 소설로도 유명한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판매합니다. 한 번도 신겨보지 못한 아기신발) 처럼.


돌이켜보면 임신 중에 입덧과 임신성당뇨 재검사 외의 큰 이벤트는 딱히 찾아오지 않았으나 임신 내내 마음 푹 놓고 찾아온 아기만 반가워 할 수 없는 게 부모 마음이었다. 걱정이 많고 예민성이 있는 타입이라 그런지 기쁨도 억지로 억눌러보는 날이 있었다. 내게 있어 임신기간의 열달은 건강하게 만나는 그날까지 무조건적으로 들뜬 마음으로 기쁨만 누리기엔 너무나도 긴 레이스였으니.


인스타그램을 둘러보던 남편과 나의 알고리즘은 어느새 아기로 도배되어 있었다. 아기용품, 육아방법, 수많은 아기영상들 그리고 그걸 보며 흐뭇하게 웃고 서로가생각하는 육아방식을 공유하며 그렇게 곧 아기를 만나리라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는 우리 부부.


남의 아기도 너무 귀여운데 우리의 아기는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누구를 더 닮았을까 엄마아빠가 고심 끝에 준비한 아이템은 좋아하려나. 배를 쓰다듬으며 태명을 부르면 갈비뼈까지 통통 차는 만월이는 늘 신나게 놀기 바빠보였다. 그 태동반응에 힘입어 태담하는 시간도 부쩍 많아졌다.


아기용품은 귀여운 게 너무나도 많았다. 욕심내서 직구로 구할 수 있는 귀여운 장난감과 인형도 많았고 다양한 사이즈별 옷도 많았다. 젖병 브랜드가 이렇게 많을 줄도 몰랐고 아기들마다 맞는 젖병이 따로 있어 준비한아이템을 사용하지 못하고 재구매해야 할 경우가 있다는 것도 그 무렵에 알았다.


뷰티, 명품, 코디 등의 관심사로 가득하던 내게 우선순위는 아기용품계에서 유명한 브랜드들 이름, 사용후기들로 변모해 갔고 그렇게 하나 둘 딸랑이며 초점책, 아기병풍 등 나보단 태어날 만월이 위주로 쇼핑하게 되기시작하며 겨울잠을 대비해 도토리를 모아두는 다람쥐 같단 생각이 들었다


한껏 모아둔 식량을 바라만 봐도 배부를 그날처럼.

아기방을 채울 용품들을 하나씩 사모으다 보니 만날 날이 100일도 채 남지 않음이 실감 났다.


가을에 태어날 예정인 우리 아기.

태어나면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 엄마아빠의 마음이 잘 닿아주기를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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