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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Aug 31. 2023

임신의 세계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임신을 하고 나서 초기에 제일 먼저 찾아온건 입덧이었다. 임신을 했다는 걸 뇌가 인지하자마자 훅 찾아온 내 인생 최악의 고역. 입덧.


내 경우는 입덧을 5주 차부터 18주 차까지 겪었는데 슬슬 줄여간 입덧약을 끊어보고도 더 이상 입덧을 하지 않아서 환호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직도 집에 처방받은 입덧약이 몇 알 남아있는데 산부인과를 통해 처방받은 입덧약 효과는 정말 좋았다. (2주 치가 삼만 원대로 비용이 좀 나가는 약이긴 했지만 임산부들에겐 바우처카드가 있으니 걱정말자)


입덧으로 느글거리는 속에 초기엔 오히려 2킬로가 빠졌었고 속을 달래기 위해 나는 매 순간 텀블러를 옆에 두고 디카페인 루이보스티나 찬 물, 이온음료를 연신 넘기곤 했다. 밤 중에 구토를 하고는 먹은 것도 없이 겨우 넘어오는 신물에 너무 힘들어서 울었는데 토덧은 다행히 드물게 몇 번 있었다. 후기엔 역류성 식도염처럼 목이 아파오던 증상까지 임신기간 내내 여러 이벤트가 많았지만 내게는 입덧이 제일 힘든 경험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증상 환도통증. 임신 6-7주 차 무렵 하루아침에 오른쪽 허리와 꼬리뼈 부근이 너무 찌릿하게 아파와서 걸음을 겨우 내딛으며 비명을 질러야 했다. 찾아보니 임신 후 겪는 일명 “환도 선다” 는 증상이었는데 아- 이걸 임신 내내 겪어야 한다면 난 못 걸어 다닐 거야, 싶을 정도로 큰 통증이었다.


다행인 건 일주일 내에 사라졌다는 거지만 며칠 동안 통증이 너무 심해 회사에서도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었고 집에서는 거의 누워있다시피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살 수밖에 없었다. 하다못해 파스라도 붙일 수 있으면! 파스가 너무도 간절했었지만 아가를 위해 파스도 참아야 하는 임산부의 삶은 꽤나 힘들면서도 내 안에 어디서 모성애가 뿜어져나오는걸까 신기하고 뿌듯했다.


토덧, 피로감, 환도 통증 등의 증상을 겪어내면서 우리 아기가 잘 크고 있다는 뜻이겠지,라고 생각하며 긍정적인 회로를 돌렸었다.


보통 2주마다 진료를 보러 산부인과를 방문하곤 하는데 인화해 주시는 초음파 사진을 통해  아기집-난황생성- 솟아난 귀여운 팔다리- 젤리곰형상으로 자라나는 만월이를 지켜보고, 매 검사마다 힘차고 빠르게 뛰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몽글몽글한 마음이었다.

9주쯤엔  탯줄도 생겼는데 나와 작은 탯줄로 연결된 이작은 생명이 애틋하고 귀엽게 느껴졌다. 그 후 나와 남편의 최대 관심은 아가의 성별이었다.

과연 아들일까 딸일까!


남편은 나보다도 더 간절히 딸을 원했었기에 우리는 흔히 나와있는 중국황실달력, 미국성별사이트, 태몽, 각도법 등을 다 따져보며 아기의 성별을 예측했고 어떤 결과는 딸, 또 다른 판별법으로는 아들이라 정확하지 않았다. 내심 딸이기를 바랐던 우리 부부.


가장 정확한 건 진료 후 “뭐가 보이네요”라는 의사 선생님의 힌트였는데 12주 때 이미 조금씩 성별이 판가름 나며 성기가 발달했던 것 같다. 그 후 매 진료 때마다 늘 뭐가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초음파상에서 다리 사이에 콕 무언가 보였다. 딸이라면 매끈하게 보여야 할 다리 사이였는데 명확하게 보이는 무언가에 아들임을 받아들였다.


아들이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남편은 성별은 바뀔 가능성이 있다며 20주까지도 딸이란 희망을 놓지 못했었지만 성별까지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자 나는 이때부터애기옷이나 용품을 찾아보게 되었다. 사실 12주가 되기까지는 혹시 아기가 잘못될 수도 있어 아기용품을 애써찾아보지 않았는데 안정기가 지나고 나는 마음껏 임산부임을 즐기기로 했다. 작고 예쁜 아기들을 위한 용품들은 또 왜이리 많은건지.


첫째를 임신한 산모는 초산모, 둘째아 이상을 임신한 산모는 경산모로 분류하는데 이런 단어조차도 살면서 임신 후 처음 들어본 내게 임신과 육아의 세계는 너무 어렵고 알아야 할 것도 많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10 달이라는 시간이 채워지기까지 시간은 많았고 남폌과 나는 인터넷이나 유튜브 등을 보면서 여러정보들을 하나하나 습득해 가며 엄마 아빠가 될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대화의 주제가 점점 아기에 관한 것으로 바뀌었고 교육관 육아가치관 등에 토론하면서 남편과 많은 곳에서 생각이 일치하는 걸 알았을 때 더 행복했다.


우리도 아기를 잘 키울 수 있을 거라는 믿음. 풋풋한 신혼부부일 때보다 예비 엄마, 아빠가 되므로 더 견고해지는 무언가가 생긴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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